한성구의 명화와 의학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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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벗 핸더슨 세이어 <천사>

이 아름다운 천사는 어떤 사연이 있기에 우울한 것일까?
우선 눈에 보이는 대로 한번 훑어 보자. 갸름한 얼굴이니 요즘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V라인의 모습이다. 약간 창백하면서 투명한 피부에 갈색 눈동자의 초점은 먼 곳을 향하고 있어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우수가 깃들어 있다. 초승달 모양의 눈썹은 가늘고 길어서 섬세하고 고운 선이다. 전형적인 미인의 눈썹이라 가히 ‘아미(蛾眉)’라고 부를 수 있다.

힘을 주지 않았지만 단정하게 닫힌 입은 작아 참 단아하다. 하지만 입술의 혈색은 앵두빛이 아니어서 젊은이의 싱싱함이나 건강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몸이 약한 것이다. 어깨선은 아름답지만 어깨가 좁아 역시 기운이 충만할 것 같지 않다. 어깨가 좁고 얼굴이 갸름하니 전체적으로 날씬한 모습인데, 이를 옛날부터‘선병질’이라고 했다. 이런 체질은 결핵에 잘 걸리는 체질로 여겨 왔다. 이 천사에게 말을 건다면 목소리는 어떨까? 아마 조용한 목소리로 조근조근 얘기할 것이다.

이 작품은 미국 화가 애벗 세이어(1849~1921)의 대표작이다. 모델은 작가의 딸인데, 붓을 잡게 된 동기는 막상 아내의 결핵이었다. 아름답고 가냘픈 화가의 아내는 결핵을 앓고 있었다. 이 그림을 그리던 시절에는 결핵에 대한 치료 방법이 없었다. 기껏해야 좋은 공기, 영양, 안정이 결핵의 3대 치료였다. 결핵약이 개발된 것은 그로부터 한 60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그러니 결핵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인 환자는 이제 명이 얼마 남지않은 지경이 되었다. 부부 금실이 각별한 화가는 슬픔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아내의 죽음을 앞두고 화가는 옛 추억을 곱씹으며 사랑하는 아내와 곧 이별하게되어 심란함을 숨기기 힘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화가는 무심코 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얘가 어느 새 이렇게 컸단 말인가? 젊은 시절의 아내를 빼 닮은 것이 아닌가? 자신의 가슴을 두근대게 하던 천사의 모습이 아닌가? 딸은 어머니를 닮아서 선병질적이었다.
화가는 딸의 모습을 천사로 그렸다. 평생 자신의 인생을 인도해 주던 슬기롭고 따뜻한 천사 같은 아내, 임종을 앞두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딸을 빌려 영원하기 바랐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아내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해 줄 천사가 이런 모습으로 와 주었으면, 하는 애틋한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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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프랑수아 밀레 <폴린느 오노의 초상>
천사는 몸이 약해 보이고 얼굴이 창백하고 우울한 데 반해 날개의 깃털은 아주 풍성한 것이 대조적이다. 몸이 약한 딸을 위해 이불을 덮어 주려는 듯한 부성일까? 아니면 몸은 약해도 영혼은 누구 못지 않게 풍요로움을 날개가 보여 주는 것일까? 이 날개로는 쉽게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다. 보는 사람의 상상에 맡길 일이다.

또 하나, 천사의 머리카락이 눈에 띈다. 단정하게 빗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몇 올은 흐트러져 있다. 보통 아버지라면 딸의 머리가 흐트러지면 단정하게 빗어 줄 텐데, 화가는 왜 이렇게 그렸을까? 이 천사는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인도하는 데 바빠서 자신의 몸 매무시는 가다듬지 못한 것일까? 단정한 얼굴과 달리 머리가 조금 부스스한 것은 아마 병상에 오래 누워 있는 화가 아내의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또 다른 전형적인 선병질적 여인을 보자. <만종>, <이삭줍기>로 유명한 장프랑수와 밀레의 첫 번째 아내 초상화를 보자. 애처로울 정도로 약해 보이는 미인이다.
타고난 선병질에다 영양결핍이 더하니 그만 결핵이 발병했고, 결국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오늘날 과도한 다이어트로 젊은 여성이 결핵에 꽤 걸리는데, 그들의 외양은 그림 속 밀레의 아내와 다르지 않다.

아무튼 밀레는 사랑하는 아내를 제대로 먹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심했지만 결국 몇 년 뒤 재혼하게 된다. 두 번째 아내는 전처와는 달리 소처럼 튼튼했으며, 슬하에 9남매를 두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밀레의 그림이 점점 인정을 받아 가난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되었으니, 죽은 이만 불쌍하지 않은가.

19세기에서 20세기 중반까지 결핵은 가장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간 병이다. 결핵은 페스트나 천연두처럼 단기간에 목숨을 잃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병들다 죽는 것이 특징이다. 환자는 자신이 죽어 간다는 것을 인식하고 산다.

그러니 몸도 고달프지만 우울증에 시달린다.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을 아니까 온몸을 불사르는 사랑에 빠지기도 쉬웠을까? 결핵은 가냘픈 사람이 잘 오는데, 청초하고 우아해 보이는 여인이라면 연민이 생길 것이다. 20세기의 아름다운 여배우 비비안 리가 결핵 환자였고, 오페라나 문학에서 비련의 여주인공들이 결핵 환자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라 보엠>의 미미가 그런 비련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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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구 교수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 질병을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 의사로 유명하다.
《그림 속의 의학》이라는 책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그림 속 질병 이야기를 쉽고 흥미롭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