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유전자에 영향을 미치며, 변형된 유전자 체계가 자식들에게 대물림돼 정신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주장이 주목받고 있다. 본래 스트레스에 취약한 성격이 아닌데도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정신질환에 취약한 유전자 체계를 만들어내고, 이것이 자녀에게 전달돼 자녀가 스트레스에 취약한 성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독일 트리어대학 디르크 헬람머 교수는 임신 후기(임신 28주차~출산)에 스트레스를 크게 받은 산모가 낳은 아이는 섬유 근육통 같은 스트레스 질병에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헬람머 교수는 "이런 아이들은 스트레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우울증, 불면증, 심근경색, 섬유근육통, 알레르기 같은 스트레스 관련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부모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유전자 체계가 ‘스트레스에 취약한’ 상태로 변하고, 변한 체계가 그대로 대물림돼 자녀가 정신질환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스트레스 경험, 유전자 체계 변형
후성유전학(유전학의 일종으로, 선천적인 유전자 체계를 후천적인 경험이 바꿀 수 있다는 학문) 연구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스트레스는 유전자의 표현 방식을 변화시켜 인체의 성질 자체를 변형시킬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우리 몸에 있는 수많은 유전자 중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심하게 불안해하라'는 정보를 가진 것도 있고 '약하게 불안해하라'는 정보를 가진 유전자도 있다. 스트레스 상황은 똑같은데 비교적 덜 불안해하는 사람은 '약하게 불안해하라'는 유전자가 밖으로 표현되고 '심하게 불안해하라'는 유전자는 숨어 있는 경우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트레스 자체가 유전자의 표현 방식을 바꿔버린다. '약하게 불안해하라'는 유전자가 숨고 '심하게 불안해하라'는 유전자가 표현된다는 것이다. 결국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정도,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을 분비하는 체계 자체가 변할 수 있다. 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조정진 교수는 "스트레스로 인해 변형된 유전자 체계가 생식세포를 통해 자녀에게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전된 스트레스, 정신질환 위험
부모의 스트레스로 인해 변화된 유전자를 받은 자녀는 정신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전쟁을 경험한 사람의 자녀는 스트레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불안·분노·우울 등을 겪는 정도가 평균보다 월등하게 높았다는 미국 뉴욕의 마운트시나이병원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조정진 교수는 "수컷 쥐에게 강한 스트레스를 가한 후에 암컷 쥐와 교배를 시켜 자녀를 낳게 했는데, 자녀 쥐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일반 쥐보다 교감신경계(스트레스를 받으면 맥박을 빠르게 만들고 혈압을 높이는 등 몸을 '흥분'시킴)가 더 크게 반응했다는 연구 결과도 최근 나왔다"고 말했다.
◇평소 '회복력' 키워서 대비해야
유전자에게 영향을 미칠 만큼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지 않으려면, 평소에 '회복력'을 키워야 한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는 "나쁜 일을 당했더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아서, 나쁜 일을 당하기 전과 같은 마음 상태로 빨리 돌아갈 수 있는 힘"이라며 "종교활동·명상 등을 하면 매순간 감사하는 마음, 자신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긍정적인 마음 등이 생겨서 회복력이 길러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