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가 발생한 지 3일이 지나면서 부상 정도가 경미한 탑승객 일부가 속속 귀국하고 있다. 사고 다음날인 8일 오후 3시경 11명이 입국한데 이어 9일에도 5명이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생명이 위급한 10여명에 비하면 외상 정도가 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모두가 건강하다고 확신해서는 안 된다. 침착하게 탑승자들을 구조해낸 승무원과 기장 역시 외상이 없다 해도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생명을 잃을 수 있었을 정도로 충격적인 사고를 경험한 만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길 수 있기 때문. 특히 평소 모든 일에 걱정이 많고 잠을 잘 자지 못할 만큼 예민한 성격을 가졌거나 추락사고 후에도 직업상 비행기를 타야 하는 승무원이라면 일을 할 때마다 사고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는 고통을 경험할 수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는 예상치 못한 사고나 상황을 통해 받은 정신적인 충격이 풀리지 않아 생기는 불안장애를 말한다. 참혹한 전장에서의 전투를 경험했거나 성폭행을 당했을 때도 많게는 25% 가량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에서 큰 외상을 입지 않았다 해도 자신이 근거리에서 사고를 목격했다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사고 직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없다고 해도 1주일 후부터 악화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병철 교수는 “지금은 눈에 보이는 상처가 얼마나 큰지에만 관심이 쏠려 탑승객과 승무원들의 정신적인 충격과 그 문제점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나타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며 “특히 사고 후에도 비행기를 타야 하는 기장과 승무원의 경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을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말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으면 자신에게 충격을 준 상황이나 사고 장면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고 당시 받았던 충격이 다시금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겪었던 장면이 꿈에 나타나는 것도 이의 일환이다. 반대로 있었던 일 자체를 무시하는 경향도 있다. 사고에 대해 언급하는 자체를 꺼리거나 애써 피하는 것인데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 이후 언론사 기자 또는 항공사 직원과 같이 사고를 연상시키는 관계자와의 만남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사고 이후 신경이 극심하게 예민해지는 이들도 있다. 심하게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도 잠을 깰 만큼 조그마한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밖에도 멍한 상태 또는 우울, 불안 증세가 오랫동안 이어지고 삶의 의미를 부재하거나 사회적 자극 박탈, 환각과 망상, 다중인격장애라고도 부르는 해리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치료는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한다. 환자가 편안하고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고 약물로 날카로워진 신경을 안정시킨 다음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공포의 대상으로부터 두려움을 떨쳐내도록 한다. 치료기간은 대개 한 달 정도면 좋아지는데 그 이상 지속되면 치료율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증상이 한 달 이상 지속된 환자 중 30%만 완전히 회복되고 10%는 좋아지지 않거나 오히려 악화된다.
가족이나 친구의 역할도 중요하다. 사고 당시를 떠올리기 꺼려하는 환자에게 억지로 기억해내도록 유도하거나 반복적으로 질문하면 증상이 악화된다. 사고 조사를 위해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묻는 것도 금물이다.
이병철 교수는 “외상 정도가 경미한 탑승객이라 할지라도 추락한 비행기에서 불이 나는 장면과 같이 사고를 부정적으로 연상시키는 장면을 여러 차례 접하면 당시의 충격이 극심해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길 수 있다며 ”당분간 사고 소식을 접하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