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여성, 폐경증상 오해하다 발견 늦어

이미지
박영석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5년 동안 복통과 소화불량이 반복돼 동네의원부터 큰 병원까지 다니던 중년 여성이 최근 필자에게서 췌장신경내분비종양 진단을 받았다. CT(컴퓨터단층촬영)와 피검사까지 해도 원인을 못 찾아서 그저 만성 소화장애로만 알다가, 암 진단을 받고 환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여성은 진단 당시 암이 간까지 퍼진 상태여서 담당 의사로서 몹시 안타까왔다.

이름이 다소 낯선 췌장신경내분비종양은 스티브 잡스가 걸렸던 암이다. 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을 만드는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해 발생하는 종양으로, 췌장에서 발생하는 종양의 1~2% 정도로 드물다. 일반적으로 췌장암은 수술 후 5년 생존율이 약 7.6%로, 암 중에서 완치율이 가장 낮다. 간으로 전이된 경우엔 6개월 정도 산다. 다행히 췌장신경내분비종양은 일반적인 췌장암과는 조금 달라, 초기 진행속도가 느린 편이고 간에 전이 되어도 5년 이상 생존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도 첫 진단을 받고 간 전이까지 진행되면서도 8년을 더 살면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세상에 내놓았다.

문제는 이 암이 진단하기 어려운 질환이라는 점이다. 췌장은 다른 장기들에 둘러싸여 있고, 암이 생겨도 초기에 증상이 거의 없다. 증상이 있더라도 복통이나 설사, 얼굴홍조처럼 흔한 증상 뿐이라서 다른 질환으로 오해하기 쉽다. 드문 질환이라 의사도 이런 증상일 때 처음부터 "췌장신경내분비종양을 의심해보자"고 말하기 어렵다. 최종 진단까지 통상 5~7년이 걸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췌장신경내분비종양은 초기에 수술로 종양을 제거하면 완치할 수 있다. 하지만, 진단 당시 대부분 다른 장기로 전이된 상태이기 때문에 수술 치료가 어렵고 사망 위험도 높다. 이 때는 증상을 조절하며 생존기간을 연장시키는 것이 중요한 치료 목표다. 다행히 최근에 종양이 성장하는데 핵심역할을 하는 'mT OR 단백질'만 공격하는 표적항암제가 개발돼 치료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이 표적항암제를 쓴 환자는 종양이 성장하지 않는 기간이 2배 이상 연장된다. 암세포를 공격하는 강한 약임에도 부작용이 심하지 않아, 약을 복용하면서 직장 생활도 계속할 수 있다. 이번 달부터는 건강보험도 적용돼 환자의 경제적 부담도 덜게 됐다.

췌장신경내분비종양은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가 중요한 만큼 복통과 설사, 얼굴홍조 등의 증상이 개선되지 않을 때는 검사를 받는 게 좋다. 또한 다른 수술이나 내시경 검사를 받다가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정기 건강검진을 빠뜨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50~55세 여성은 폐경기 증상으로 오해해 뒤늦게 진단받는 경우가 종종 있으므로 더 신경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