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처럼 살아라 ④ 이학준·노정은 부부의 제주도 귀농기
귀농 열풍이 거세다. 귀농하지 못하는 이들은 주말농장이나 베란다 텃밭을 가꾸며 아쉬움을 달랠 정도이다. 많은 이들이 자연에서 사는 삶을 꿈꾸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아이 교육 문제부터 직업이 바뀌는 것에 대한 부담도 적지 않다. 2년 전 제주도로 귀농한 이학준·노정은 부부는 어떻게 귀농에 성공했을까? 귀농이 주는 즐거움과 귀농을 통해 달라진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Talk About 1 제주도 귀농 입성기

이학준 씨(37세)는 서울 연희동에서 태어난 도시 남자다. 2년 전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제주도로 내려오기 전까지 편집 디자이너였다. 지금은 제주도 애월읍에 귤밭 700평을 빌려 귤농사를 짓고 있다. 그가 귀농을, 그것도 제주도를 선택한 계기는 무엇일까?
“바쁜 직장생활로 도시의 삶에 서서히 지쳐 갔어요. 직업이 편집 디자이너인지라 밤을 많이 새우는데다 바쁜 일과로 문화생활도 거의 할 수 없었거든요.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지치니까 정서적으로 피폐해졌어요. 그러다 우연히 전국귀농운동본부를 알게 되었죠.”
이학준 씨는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도시 농업 간사로 일하면서 농사를 배웠다.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사릉에서 텃밭을 5년 동안 일궜다. 아내에게도 결혼 전부터 “귀농해서 살자”는 말을 자주 했고, 데이트 역시 주로 텃밭에서 했다. 전국귀농운동본부가 발행하는 계간지를 만들면서 전국 곳곳에 있는 귀농자를 만나며, 자연스레 정보를 모았다. 주말마다 귀농지를 물색했다. 처음엔 전라남도 장흥을 염두에 두고 땅값부터 아이들 학교, 문화시설 등을 꼼꼼히 살펴봤다. 그러던 중 제주도로 떠난 가족여행에서 마음이 바뀌었다.
“우연히 가족여행으로 제주도를 갔는데 농사 짓기도 좋고, 아이 교육에도 좋은 환경이 마련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내에게 ‘제주도에 와서 살까’ 하고 물었더니 ‘그래’라고 즉답이 왔어요. 귀농을 결심하고 준비기간이 길어지면서 더 미루면 안 되겠다 싶었는데, 이때다 싶어 바로 내려왔습니다. 집 구하고, 짐은 배로 옮기는 대신 택배로 붙였어요. 그렇게 제주도민이 되었습니다.”
제주도는 요즘 ‘제주도 이민’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귀농자가 많고, 제주도에서의 삶을 꿈꾸는 이들도 많다. 도시를 떠난 직장인은 물론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한 외국인까지 합세해 연령대와 인종까지 다양하다. 제주도는 전원생활의 여유로움과 도시의 편리함을 동시에 누리는 장점이 있다. 저가항공이 생기면서 교통비도 많이 줄었다. 국제학교가 생기는 등 아이 교육 여건도 좋아졌다.
“제주도는 섬이라 외부 사람에 대해 경계심이 많고 폐쇄성이 짙은 것이 특징이에요. 섬사람은 친척 간에 정보교환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친해지기가 쉽지 않았어요. 이사 왔다고 떡을 돌리는데 ‘뭘 이런 걸 하냐’며 싫어하더라고요. 그런데 동네사람과 친해지는 방법은 따로 있었어요. 농사 지을 때 일손을 도와주는 거죠. 텃밭에서 농사 지을 때는 여러 명이 한 번에 함께 일해서 몰랐는데, 시골에는 할머니 혼자 쉬지 않고 일하는 경우가 많아요. 시골에는 두레가 아직 존재합니다. 특히 친환경 농사는 타이밍이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수확기나 씨를 뿌릴 때는 ‘강아지 손이라도 빌린다’고 할 정도로 일손이 절실해요. 저도 옆집 사는 할머니가 ‘오늘 무슨 일 있나? 없으면 일 좀 도와줘’ 하시기에 도와드리다 친해졌어요.”
이제 이학준 씨는 제주도에서 귤을 재배하는 어엿한 농부다. 비싼 한라봉이나 천혜향 등 ‘돈 되는’ 작물이 아닌 감귤을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쉬워서 선택했어요. 제주도민은 감귤농사를 부업으로 하더라고요. 5~8월까지 한 달에 1~2번 풀을 베면 농사가 된다고 할 정도로 다른 농사에 비해 할 일이 적은 편이에요. 귀농자가 선호하는 농작물이 있는데, 감귤도 그중 하나예요. 귀농 초창기에는 콩농사를 많이 지었대요. 콩은 별다른 병치레 없이 잘 자라거든요. 보통 자신한테 맞는 농작물이 있다고 이야기해요. 밭도 주인 성격대로 만들어지고요. 과수나 채소는 귀농 초보자가 하기에 어려움이 많고 노하우가 필요해서 힘들어요.”
Talk About 2 귀농을 통해 얻는 것들
제주도에 산 지 어언 3년째지만 이학준 씨는 아직도 적응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도시에서 살다가 내려왔으니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았을 텐데, 도시의 삶과 지금의 삶에서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몸이 건강해진 것과 삶의 질이 높아진 점이에요. 도시에서 살 땐 청결에 신경을 썼어요. 큰아이 서진이는 아토피가 심했고, 저는 천식이 있었거든요. 매일 이불을 털고 화장실을 세제로 청소했어요. 서진이는 아토피가 심해서 2차 감염으로 인해 뼈에 염증이 생기고 수술을 받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제주도에 오니까 아토피가 사라졌어요. 제주도에서 태어난 작은아이 규석이는 아토피가 아예 없어요.”
그러고 보니 규석이는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다. 서울에선 맨발로 걸어다니는 아이를 보기가 쉽지 않은데, 맨발로 다니는 규석이에게 자꾸 눈이 갔다.
“서울에서는 아이가 다칠까 봐 노는 모습을 계속 지켜봐야 하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어요. 아파트 놀이터 대신 바다에서 놀고, 맨발로 뛰어다니죠. 이번 여름에도 해수욕장에서 살았어요.”(노정은)
“도시에서도 산책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산책을 바다에서 하니까 삶의 질이 엄청 높아졌죠. 귀농 1년차엔 오름을 하나하나 오르면서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어요. 그런 점은 참 만족스러워요.”(이학준)
또 다른 변화는 무엇이 있을까? 이학준 씨 가족은 식습관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텃밭을 가꿀 때는 텃밭에서 자란 채소도 많이 먹지만 치킨 같은 가공식품도 즐겨 먹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별다른 반찬 없이 오이, 상추, 호박잎 등을 따서 비빔밥을 해먹어요. 간도 따로 하지 않아요. 밥상이 참 간단해졌어요. 봄에는 채소를 먹고 겨울엔 무청, 시래기, 참나물을 말려 먹어요. 제가 간단하게 만든 화덕에서 고기도 가끔 구워 먹어요. 어느 날은 치킨이 먹고 싶어서 시켰는데 아내랑 저랑 딸아이 3명이서 한 마리를 다 못 먹었어요. 맛이 너무 자극적이더라고요. 얼마 전에는 집에 있는 텃밭에 멧돌호박이 열렸기에 ‘먹어도 되지 않을까’ 하면서 삶아 먹었는데 작을 때 먹으니까 쫄깃쫄깃하고 고기 같은 맛이 나더라고요. 이런 걸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제법 쏠쏠해요. 채소맛을 알게 되니까 미각도 살아나고요.”
서울에선 주로 대형마트에 갔다면 여기서는 5일장에 간다. 제주도 애월읍에는 2일과 7일에 열리는 이칠장, 4일과 9일에 열리는 사구장이 있다. 도시에서는 재래시장의 물가가 대형마트보다 저렴하지만 제주도는 재래시장도 싸지 않다. 이학준 씨는 그것이 제주도의 단점이라면 단점이라고 말한다.
Talk About 3 귀농, 참 어렵지만 할 만해
제주도에 귀농한 이후 많은 친구들이 이학준 씨를 방문했다. 그들 중에는 귀농 계획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귀농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이학준 씨는 귀농을 고단한 도시 생활의 탈출구로 생각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귀농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해요. 친구가 없어 외롭고, 커피숍이나 24시간 편의점과 같이 당연히 누려 오던 환경을 포기해야 해요. 내 생활을 통째로 바꿔야 하는 거죠. 게다가 생활비나 이사비 등 금전적인 손실도 만만치 않아서 신중히 생각해야 할 문제예요.”
제주도라서 어려운 점도 있다. 텃밭농사는 2명, 4명 팀을 이루어 일했지만 지금은 혼자 농사를 짓는다.
“귤농사를 생계로 하니까 스트레스 받아요. 또 감귤농사는 혼자 하는 일이 많아서 외로워요. 다른 농장에 비해 적은 700평 부지를 임대해 농사 짓고 있는데 농지에 투자를 많이 하면 할수록 타격은 더 커져요. 매스컴에 보도되는 귀농 사례는 대부분 성공한 사례고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귀농자들 중에 월수입이 100만원도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해요. 농사로 생계가 유지되지 않으니까 다른 일도 해야 해요. 귀농 후 생계유지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직업이 여러 개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농사 지으면서 냉동창고, 막일 등을 하는 거죠. 어떤 사람은 직업이 30개라는 얘기도 들었어요.”
일정 소득을 유지하는 귀농자는 주로 직거래를 한다. 유통비를 줄이고, 한살림 등 생협에 농작물을 판매하고, 인터넷 카페나 문자 메시지를 통해 소비자와 직거래를 한다. 직거래는 부지런해야 수입이 창출된다. “상주에서 곶감 농사를 짓는 어떤 귀농자는 감 수확 외에 곶감을 만들고, 효소·감식초 등의 가공식품을 만들어 판매하더라고요. 현재 귀농은 농사 지어서 농작물을 수확하고, 이를 이용한 가공식품을 만들어야 수익이 나는 구조예요. 저도 지금은 여러 일을 하고 있지만,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미래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끝으로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절대로 귀농을 쉽게 생각하면 안 돼요. 3년 이상 준비기간이 필요합니다. ‘시골이니까 몸만 있으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은 버리세요. 사실 농사일은 막일보다 더 힘이 듭니다. 귀농 계획이 있다면 그곳에서 한달 정도 살아볼 것을 추천해요. 텃밭을 가꿔 보는 것은 필수고요. 텃밭으로 농사를 미리 경험하고 농사문화에 적응할 수 없다면 귀농으로 인한 손해는 클 거예요. 행복한 귀농생활을 꿈꾼다면 텃밭을 경험해 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