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째 취업 재수생의 길을 걷고 있는 박모(29·서울 동대문구)씨는 지나칠 정도로 잠을 많이 잔다. 반나절은 기본, 쉬는 날은 하루 종일 잘 때도 있다. 박씨는 졸업 당시만 해도 의욕적으로 이력서를 작성하고, 몇 군데 면접을 봤지만 수십차례 탈락의 고배를 마신 뒤 점차 자신감을 잃어갔다. 고시원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외에는 자는 일 밖에 없는 박씨.
직장인 이모(33·인천 서구)씨도 박씨와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쉬는 날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 밥을 먹고, 가끔 TV 예능 프로그램을 챙겨보는 것 외에는 이불 속에서 살다시피 한다. 이씨는 “매년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은 그대로고‥.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고 있다”며 “그러나 매사 재미가 없다보니, 차라리 꿈이나 꾸는 게 낫다는 생각에 일부러 잠을 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영화 ‘인셉션’에 나올 법한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인셉션은 꿈 속 현실과 실제 현실을 오간다는 내용을 모티브로, 영화 중간에는 실제 현실을 피해 일부러 잠을 자는 사람들이 나온다.
이에 대해 한국정신건강연구소 황원준 원장은 “수면에만 의존하는 것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노력해도 이뤄질 것 같지 않은 무기력감이 수면중독을 만든다”고 말했다. 깨 있으면 뭐라도 해야할 것 같지만, 끝없는 불황 속에 많은 사람들이 자포자기 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황 원장은 “잠을 자는 것은 ‘퇴행 욕구’ 이기도 한데, 아이들이 많이 자는 것처럼 어른들은 ‘어른이 되기 싫은 마음’이 강해 잠에 취한다”며 “어른이 되면 많은 책임과 의무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에 이를 즐기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고 싶은 욕구가 들어 잠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수면중독은 대개 우울증인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불면증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수면과다증’이라고 부른다. ‘잠이 안 오거나, 잠이 너무 쏟아지거나’ 둘 모두 현실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생기는 증상이다. 잠을 많이 자면 체력이 보충될 것 같지만 이런식의 수면은 오히려 체력이 떨어지고, 더 피곤해진다.
황 원장은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이유를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데, 자신이 현실을 싫어하는 이유마저 도피하는 경향이 있어 남들과 어울리기를 꺼려한다”며 “이럴 땐 종이에 직접 손글씨를 써가며 자신이 잠을 자려는 이유에 대해 짚어보면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아침에 일어 났을 때 ‘너무 잘 잤다’고 소리내 말하면 정말 잘 잤다는 인식이 무의식중에 들어 다시 잠이 오는 것을 어느정도 덜 수 있다”며 “잠을 청하는 시간과 상관 없이 기상 시간을 일정하게 만드는 습관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오후 3시 이후에는 카페인이 든 음료는 가급적 피하고, 잠이 올 때마다 햇빛을 쬐며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운동하면 잠이 달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