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치료, 약물치료 다 효과 없을 때 정신질환도 뇌 수술 한다?

이미지
현재 일부 정신질환이 수술로 치료되고 있지만, 뇌 수술로 정신적 장애를 치료하는 ‘사이코서저리(Psychosurgery)’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사이코서저리는 치료 효과 대비 시술 위험도나 비용이 약물치료나 정신치료에 비해 높다. 때문에 현재 국내에서는 우울증, 강박장애, 정신분열병 등에 제한적으로 적용해 일반에 알려질 기회가 적었다. 보통의 방법으로 치료가 어려울 때 마지막 대안으로 쓰는데 효과가 좋다. 우울증, 강박장애 등 정신질환 발병률이 높아지는 요즘, 사이코서저리에 대해 알아본다.

1. 전두엽절제술로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첫 치료
사이코서저리는 포르투갈의 신경외과 의사 에가스 모니스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심한 충격을 받고 돌아온 상이군인에게 처음 실시하면서 알려졌다. 전두엽과 시상을 연결하는 신경섬유를 절단하는 전두엽절제술을 통해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증상이 개선되는 효과가 확인되었다. 이 시술로 에가스 모니스는 194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사이코서저리가 세계 각국으로 전파됐으며, 국내에도 도입돼 정신질환 치료에 사용돼 왔다.

실제 국내에서는 1990년대 초까지 주요 정신병원에서 매주 수십 건씩 사이코서저리를 시행했다. 이후에는 정신과 약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약물 부작용이 심하거나 약물치료가 아예 듣지 않는 심각한 우울증, 정신분열병 환자 등에게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심각한 우울증이나 정신분열병에는 약보다 수술이 오히려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로 알려졌다. 2000년엔 국내 최초로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장진우 교수가 사이코서저리의 하나인 뇌심부자극술(Deep Brain Stimulation)을 도입하면서 사이코서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국내외에서 정신질환에 뇌심부자극술이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됐다. 미국에서는 2009년 일부 난치성 강박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사이코서저리에 대한 제한적인 FDA 승인이 이뤄졌다.

현재는 CT(컴퓨터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와 같은 정밀진단 기기들이 발달하고, 뇌과학에 대한 실마리가 하나둘씩 풀리면서 사이코서저리는 기존보다 진일보한 상태다. 약물로 조절되지 않는 심한 강박증, 공격성, 우울증 등의 증상이 있는 정신질환자의 치료에 사이코서저리가 중요한 치료법이 되고 있다.

2. 정신분열병, 피막절개술로 증상의 40% 정도 감소
정신분열병을 앓으면서 공격적 성향이 강해져 가장 높은 단계의 약물치료를 받았지만 전혀 조절되지 않던 27세 남성 A씨의 증상 감소를 위해 서울아산병원과 국립서울병원 연구팀이 사이코서저리를 한 결과, 공격성 등이 40% 정도 감소했다.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이정교 교수는 이 환자에게 전극을 부착한 바늘을 뇌 신경섬유의 일부에 넣어 고주파 전류를 흐르게 해 파괴하는 ‘양측 전방 피막절개술’을 했다. 전신마취 후 정확한 수술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에 프레임을 장착한 후 CT와 MRI 촬영을 하고, 이 영상을 활용해 전극을 부착한 바늘을 정확하게 뇌의 신경섬유에 넣어 고주파 전류로 파괴하는 사이코서저리였다. 이정교 교수는 “도파민 이상 분비는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로 알려졌는데, 사이코서저리는 도파민이 이동하는 변연계 연결통로의 일부분을 제거하는 원리다”라고 말했다.

A씨는 수술 전 통제되지 않던 공격성이 수술 후 자취를 감췄다. 대화가 힘들었던 수술 전과 달리 상대방이 물어보는 질문에 정확하게 답했다. 정신병리 측정도구에서 병적 증상을 나타내는 점수가 수술 전 99%에서 수술 후 60%로 40% 가까이 낮아졌다. 측정한 점수가 낮을수록 좋은 결과다. 국립서울병원 정신과 이태경 박사는 “이 환자는 국제정신과학회 기준에 따라 수술 다음날부터 정신과 약물의 용량을 절반으로 줄였다”며 “강박적 행동과 충동조절 문제 등이 현저히 개선돼 매우 긍정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정교 교수는 “사이코서저리는 약물로 치료되지 않는 강박증과 공격성이 심한 정신질환자들에게 효과적인 수술법이다. 유사한 상황에 놓인 정신과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3. 뇌심부자극술로 난치성 강박장애·우울증 치료
우울증이 심한 경우 미주신경자극수술(Vagal Nerve Stimulation)과 뇌심부자극술과 같은 사이코서저리가 쓰인다. 보통 목 아래에 작은 기계를 심어 주기적으로 뇌에 자극을 가하는 원리다. 난치성 강박장애의 치료에도 뇌심부자극술이 효과가 있다. 세브란스병원 연구팀은 뇌심부자극술을 이용해 난치성 강박장애 환자 4명을 치료하고 2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4명 모두에서 수술 전보다 강박 및 우울 증상이 호전됐다.

뇌심부자극술은 볼펜심 정도(1.27mm)의 가는 전극을 뇌 병소 부위에 삽입해 컴퓨터 프로그램된 자극장치가 지속적인 전기 자극을 주어 신경회로를 복원하는 치료이다. 세브란스정신건강병원 김찬형 교수는 “뇌심부자극술에 반응을 나타내는 환자가 44~66%에 머물던 외국의 결과에 비해 수술한 4명의 환자 모두 증상이 호전됐다”며 “모두 심각한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고, 일상생활이나 대인관계의 전반적인 기능도 상당히 좋아졌다”고 말했다. 김찬형 교수는 “그동안 수술적 방법으로 강박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시도가 많았지만 외과적 수술이기 때문에 위험요소가 있었다”며 “뇌심부자극술은 조직손상 없이 치료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뇌심부자극술 외에 국소적 뇌수술인 대상회전절제술. 피막절개술, 하미상부신경로절제술(Subcaudate Tractotomy), 변연계백질절제술(Limbic Leucotomy) 등이 난치성 강박장애 치료에 효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