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포커스] 생활 안 될 정도의 피로·복통… 건강보험 적용 어려워 치료제 있어도 못 써

적혈구 파괴되는 희귀병 '발작성 야간혈색소뇨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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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욱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
"선생님, 피아노를 칠 때마다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 이제는 칠 수가 없어요."

발작성 야간혈색소뇨증(PNH)라는 희귀질환으로 극심한 통증을 겪고 있는 10대 소녀 환자가 진료실에서 필자에게 한 말이다.

PNH는 혈관 내에서 적혈구가 파괴되면서 발생하는 희귀한 질환이다. 발병 원인은 모른다. 모든 연령대에서 발생하는데, 전체 환자의 10% 정도는 이 소녀처럼 20세 미만의 미성년자이다. 환자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피로와 복통,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증상 등이 나타나기 때문에 병원이나 응급실을 찾아온다. 하지만 PNH는 일반인과 의료진 모두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병이라, 유사한 증상을 유발하는 다른 질병만 의심하다가 병을 발견할 때까지 1년에서 10년까지 걸리기도 한다.

환자에게 나타나는 지속적인 용혈(적혈구 파괴)은 혈전증, 신부전증, 폐고혈압 등 생명을 위협하는 합병증을 동반한다. 환자 3명 중 한 명은 이런 합병증 때문에 5년 이내에 숨진다. 필자의 환자 한 명은 "내 몸이 하루하루 움직이는 시한폭탄 같다"며 불안해 한다.

PNH 환자는 정기적인 수혈이나 스테로이드 요법으로 증상을 완화하는 임시방편에 만족해야 한다. 하지만 환자가 필요할 때마다 빠르고 충분하게 수혈받기는 힘들고, 스테로이드 요법은 오래 받으면 골다공증, 당뇨, 감염 위험 증가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난다. 피아니스트가 꿈인 소녀 환자도 수년간의 스테로이드 복용이 일으킨 골다공증이 심각하다. 그래도 스테로이드를 끊을 수는 없다. 이 소녀는 손가락 마디마디를 찌르는 고통을 진통제로 참으며 연명하고 있다.

그러나 PNH 환자에게 더욱 안타까운 현실은 따로 있다. 이 질병을 가진 환자의 생명을 보장하는 유일한 치료제가 최근 개발되었는데, 눈앞에 두고도 쓸 수 없는 것이다. PNH 같은 희귀질환의 상당수는 환자의 정상적인 생활을 불가능하게 하고 생명까지 위협할 정도로 중증도가 높다. 그렇지만 질병마다 환자 수가 적기 때문에 치료제 개발이 쉽지 않고, 개발되더라도 약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 적용에 어려움이 따른다.

"제한된 규모의 건강보험을 모든 질환에 적용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PNH 환자는 200명 정도이다. 치료제가 필요할 만큼 상태가 심각한 환자는 이보다 훨씬 적다. 우리 건강보험은 보장의 폭을 꾸준히 넓혀가고 있다. 이에 따라 더 많은 사람이 적은 부담으로 예전에는 쉽게 누리지 못하던 의술의 혜택을 보고 있다. 필자의 소녀 환자도 피아노를 즐겁게 두드리면서 꿈을 키워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