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1.05.30 09:05

地水火風의 조화 속에 영그는 소금, 천일염

물 오른 보리밭이 물결처럼 일렁이고, 송홧가루 노랗게 날리는 오뉴월. 전남 신안군, 신의도 소금밭에 희고 고운 소금이 온다. 짠맛 끝에 단맛이 돈다는 서해안 천일염 중에서도 가장 깨끗하고 맛있다고 한다.

지루한 황사가 물러가자 하늘이 푸른 제 색을 찾는다. 남풍 부는 계절, 여름이 다가온다. 제철 만난 신의도 염부들은 눈꽃보다 더 하얀 소금 긁는 재미에 하루하루를 신명으로 맞는다. 소금은 바닷물에 녹아 있는 풍부한 미네랄을 담뿍 담고 있는 결정체다. 소금밭은 모래가 아닌 갯벌 위에서 만들어진다. 좋은 갯벌에서 좋은 소금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세계 3대 갯벌에 드는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질 좋은 소금이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바닷물의 들고 나는 폭이 유독 큰 서해안, 그중에서도 신안군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천일염 산지이다.

‘전남의 섬 개수는 귀신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큰 ‘사리’와 가장 작은 ‘조금’이 각각 한 달에 두 번, 하루 중 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간조와 물이 가장 많이 드는 만조는 각각 하루에 두 번 있다. 어느 시기, 어느 시각에 재느냐에 따라 같은 장소가 때로 바다 속에 잠기기도 하고, 불현듯 섬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어림잡아 2000개에 달하는 섬 중에 소금으로는 제일가는 보물섬으로 꼽히는 곳이 신의도이다.

전국 소금 생산량의 70%를 전남에서 차지하는데 신의도 한 군데서만 20%를 차지할 만큼 소금을 많이 낸다. 하지만 생산량만으로 유명해질 리 없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두 시간은 족히 가야 할 만큼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에 대기오염, 토양오염의 가능성이 특히 낮은 것도 한몫한다.

#1 이웃 나라 지진이 불러온 때아닌 소금 열풍
염도가 낮고 미네랄이 풍부한 우리나라 갯벌 천일염의 진가는 이미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세계 소금 생산량의 0.1%에 불과한 갯벌 천일염 중 86% 정도인 약 37만여t이 우리나라에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이 천일염은 우리나라 전체 소금 필요량의 반밖에 충당이 안 된다. 한마디로 우리 먹기에도 모자라는 수준이다.

예전 어머니들은 소금을 귀하게 여기고, 소금을 맛있게 만들어 내는 방법을 알았다. 초여름이면 으레 소금을 가마니채 사들여 뒤꼍에 부려놓는 일부터 했다. 집안 형편이 좀 넉넉하다면 그해 들인 소금이 아닌, 적어도 석삼 년은 묵힌 소금을 꺼내 쓰는 것을 당연지사로 알았다. 간수가 충분히 빠진 보슬보슬한 소금이라야 떫고 쓰지 않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았다. 소금을 들이는 오뉴월은 조기가 흔한 계절이다. 가마니채 마당에 들이는 것은 소금만이 아니었다. 잔조기는 노란 기름이 뜨는 조기젓을 담그고, 씨알이 굵은 놈은 따로 골라 새끼줄로 엮어 바람에 말리면 여름 한철 잃어버린 입맛을 단박에 잡아줄 굴비가 된다. 조기젓을 담그든, 굴비를 말리든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간수 빠진 소금이다. 내친김에 황석어젓이며 멸치젓을 담가 가을 김장 준비를 일찌감치 해두는 것도 모두 같은 시기다.

지금은 집집마다 젓갈을 담그는 어머니도, 간수를 빼가며 지극 정성을 기울이는 어머니도 드물다. 그런데 올여름은 이상하리만치 소금 걱정을 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봄,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 때문이다. 원전사고로 방사능 물질이 바닷물로 흘러들어 갔다는 얘기가 들리고, 바람을 타고 서쪽으로 날아오면 우리나라 서해가 오염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지는 것이다. 집에서 밥을 해먹는 일이 적으니 500g 남짓 포장된 소금을 사면 1년을 먹어도 남을 텐데 대형마트마다 소금이 동이 난다. 어릴 적부터 들어온 우리나라 사람들의 ‘묵은 소금’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강한 탓일 게다.

#2 때깔 곱고 끝맛 달기로 이름난 오뉴월 소금
소금 농사는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큰 사리 기간인, 매달 보름과 그믐을 기준으로 시작된다. 바닷물이 많이 들고 나는 시기에 맞춰 저수지에 바닷물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염전’은 말 그대로 소금밭이다. 하지만 모든 소금밭에서 소금 결정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염전은 크게 저수지, 증발지, 결정지의 세 단계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또 다양한 단계로 이루어진 밭이 증발지이다. 저수지에서 내려보낸 바닷물은 염전 전체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증발지에서 오랜 시간 머무르며 염도를 높여 간다. 염도가 가장 낮은 3%의 해수부터 소금 결정이 생기기 직전까지 가둬야 하므로, 경사가 조금씩 낮아지도록 판을 만들고 수로를 내서 물꼬를 트면 자연적으로 다음 단계로 염수가 흘러내려 간다. 마지막 결정지는 그야말로 소금 결정이 영그는 곳이다.

23% 이상 염도가 올라가면 서서히 소금결정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시기와 날씨에 따라 결정 속도에 차이가 난다. 저수지에서 내려보낸 바닷물이 증발지를 거쳐 결정지까지 내려가서 바짝 말라 소금으로 만들어지기까지는 20~25일이 걸린다. 한 해의 첫 소금은 대개 3월 초에 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날이 춥고 햇빛이 강하지 않아 채렴을 하려면 제법 시간이 걸린다. 봄·가을 소금은 쓴맛이 난다는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염수물에 오랜 기간 잠겨 있으면서 천천히 증발된 소금은 맛이 쓰고 결정이 딱딱한 것이 특징이다. 4월 20일 이전에 얻는 봄 소금은 결정지에서 적어도 4~5일 이상 지나야 얻는다. 9월 20일 이후에 얻는 가을 소금 역시 마찬가지다.

4~9월, 약 5개월에 걸쳐 채렴하는 여름 소금은 이틀 정도 되는 짧은 시간 안에 물을 증발시켜 얻기 때문에 때깔이 좋고 달보드레한 맛을 낸다. 바람이 좋고, 볕이 좋으면 증발지에 가둔 물이 하루 만에 최고급 소금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3 송홧가루 날리는 날, 신명나게 떠내는 소금꽃
“소금은 만월 소금이 좋아요. 맛이며 때깔이며… 또 비온 뒤 첫 소금도 좋지. 염전 바닥이 깨끗하거든.”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소금밭을 일구는 고승옥 씨의 하루는 캄캄한 새벽에 시작된다. 증발지를 일일이 돌아보며 바닥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물꼬를 터서 물을 대야 하기 때문이다. 전날 비가 오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면 염수를 ‘해주’라는 물창고에 모두 가둬 두기 때문에 이른 새벽부터 다시 물을 댄다. 전날 채워둔 결정지가 온전한 지 살피고 빈 결정지에는 가장 진한 염도의 물을 내려보낸다. 하루 종일 물꼬를 막거나 트면서 염전을 돌본 뒤, 오후 3~4시가 되면 본격적인 소금 채취에 들어간다.

염전에서는 소금 결정이 생기는 것을‘소금이 온다’고 표현한다. 결정지에 자작자작 물이 들어찬 상태에서 물 윗부분부터 ‘소금꽃’이라고 부르는 ‘뜬 소금’이 영그는데, 그때가 바로 ‘소금이 오는 때’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게랑드 소금 중에서도 가장 비싸다는 ‘소금꽃(Fleur de Sel)’이 바로 ‘뜬 소금’이다. 우리나라도 ‘뜬 소금’ 가격은 일반 천일염의 20배에 가깝다.“아직도 어르신들은 송화염을 최고로 쳐요. 1년 중 송홧가루 날릴 때 건진 소금인데 5월 20일을 전후로 생산되지요. 송홧가루 맛이 섞여서라기보다는 햇볕 좋고, 바람 좋은 때라 보슬보슬한 소금이 만들어지거든요.”

이 시기에 염전을 살펴보면 유독 노란 거품 같은 것이 떠 있다. 섬 주변에 흔한 해송에서 날아온 송홧가루이다. 실제로 소금을 채취해도 노란색이 도는데, 문제는 간수가 빠질 때 송홧가루도 함께 빠져 버리는 것이다. 따로 모아둔 송홧가루를 소금 결정지에 뿌리면 결정체 사이에 박혀 색이 예쁜 소금을 얻을 수 있지만 품이 많이 들고, 많은 양의 송홧가루를 따로 채취할 수 없어 실제 만들어 내기 어렵다.

#4 요리에 진가를 발휘하는 천일염
염전에서 실어낸 소금은 창고에 쌓아 두었다 적당한 시기에 포대에 담아 육지로 내보낸다. 대부분 중간 유통업자가 포대를 가지고 와서 퍼 나르는데, 요즘 한창 문제가
되는 ‘포대갈이’가 생기는 것은 이런 유통구조 때문이다. 염전마다 고유의 포대에 소금을 담아 내놓으면 산지 추적이 되므로 문제가 없으련만, 유통업자가 포대를 관리해 육지로 내보내면 가격이 싼 중국 소금과 섞여도 구별해낼 방법이 없다.

고승옥 씨가 채취하는 소금은 창고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다르다. ‘톤백’이라고 불리는 대형 포장 포대에 담아 창고에 쌓아 두었다가 전용 공장에서 1차 가공한다. 깨끗한 물에 1차 세척한 후 소금에 남아 있는 수분을 강제로 빼내는 탈수 과정을 통해 간수 성분이 대부분 빠져나가서 더욱 희고 보슬보슬한 감촉이 살아난다. 불순물을 제거하는 선별작업이 끝나면 소금 그대로 포장하거나 함초, 마늘 등의 성분을 첨가해 2차 가공한 상품을 만들어 낸다. 1년 묵혔다 포장하는 1년 천일염, 3년을 묵혔다 포장하는 3년 천일염 상품도 따로 갖추었다. 이런 포장을 하는 소금은 ‘신안메이드’라는 브랜드로 유통되는데, 백화점은 물론 대형마트에서 인기다. 또한 해외에 비싼 가격으로 수출한다.

‘신안메이드’는 신의도에서 생산되는 소금만 따로 가공하는 제품으로, 미리 계약된 염전에서 채취한 것만 사용한다. 신안메이드 소금이 유명해진 데는 ‘토판염’도 한몫했다. 토판염은 흙바닥에서 바로 건져낸 소금이다. 천일염은 장판이 깔린 염전에서 채취한 장판염과, 갯벌 바닥을 그대로 다져서 만든 염전에서 채취한 토판염으로 나뉜다. 천일염 채취는 모든 공정을 기계의 도움 없이 사람의 힘으로만 작업한다. 토판을 판판하게 다지는 일이 워낙 힘들고, 갯벌에 포함된 미네랄이 좀더 많이 섞여 있어 장판염보다 토판염 가격이 월등히 비싸다.

조금 더 힘들게 얻어낸 소금인 만큼 가격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천일염 자체가 미네랄이 풍부한 갯벌 소금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좋은 소금은 손에 쥐어 보면 알아요. 손바닥으로 비볐을 때 쉽게 부서지는소금이 좋지요. 좋은 계절에 채취해 결정이 딱딱하지 않고 간수를 충분히 뺐다는 얘기지요. 국이나 찌개를 끓이다가 맛을 보아 뭔가 허전하다 싶을 때 조미료 대신 천일염을 쓰세요. 맛이 한결 깊어집니다. 생선 절일 때도 마찬가지인데 이왕이면 절인 생선을 사지 말고 물 좋은 생선을 사다 집에서 절이면 생선살도 단단해지고 잡맛 없이 고소하고 달착지근한 맛을 볼 수 있어요.”

지금은 소금의 계절이다. 산지에 묵혀둔 소금은 이미 동이 났다. 하지만 청정지역에서 깨끗하게 선별해낸 소금만으로도 충분하다. 송홧가루 날릴 때 채렴하는 오뉴월 소금을 가져올 때이다. 뽀얀 소금을 넉넉하게 구입해 올가을 김장 준비를 미리 해두거나 3년 간수 빼는 수고로움을 즐거움으로 알고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월간 헬스조선>에서는 푸드 칼럼니스트 모정소반(母情小盤)과 함께 조상들이 물려준 한식의 절기별 지혜로운 조리법과 그 대표적인 식재료 기행을 2011년 2월호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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