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1 '아테나' 의 여전사 윤혜인 - 해리성 자아 정체성 장애
의심되는 병명 >> ‘해리성자아정체성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라는 병명이 있다. 한 사람이 몇 가지의 이질적인 자아 정체성이나 인격을 지니며, 이런 인격이 외부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데 독립적인 특이성을 지니는 증상을 말한다. 다른 말로‘다면성인격장애(Multiple Personality Disorder)’라고도 한다.
하나의 인격 상태에서 다른 인격 상태로 전환될 때 통상 이전 인격과 관련된 기억의 소실 등이 동반된다. ‘아테나’의 윤혜인(수애 분) 에게는 이런 특징이 없어, 엄밀히 그녀가 이 장애에 해당되는 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에 따라 온순한 초식동물의 모습에서 냉정한 사냥꾼의 모습으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분명 서로 달리 개발된 두 가지 정반대의 자아 모습이 존재한다. 윤혜인이 필요에 따라 한 인격에서 다른 인격으로 옮겨 다니는 것은 생존을 위해 개발된 적응능력 때문이다.
증상 >> 해리성 자아 정체성 장애의 증상은 각각의 인격에 어울리는 특유의 습관·태도·신념체계의 존재, 이유 없는 분노의 폭발, 잦은 불안과 공황의 엄습, 사람에 대한 친밀감의 부재, 피해적 사고, 이인화, 기억상실 등이다. 윤혜인은 엄밀히 분석하면 해리성 자아 정체성 장애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드럽고 여성적이며 모성적인 안보 전시장의 친절한 가이드가 냉정하고 냉철하며, 단호하고 냉혈한적인 국정원 이중 스파이로 온전히 전환된다는 점에서 자아 정체성에 해리적 균열을 지니고 있다. 다만, 마음 한구석에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남은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연민으로 괴로워한다는 점에서 모성적 자아상과 사냥꾼적 자아상이 부분적 통합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
치료법 >> 치료 없이 저절로 호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개인마다 치료반응은 다양하다. 해리성 자아 정체성 장애에 물질남용, 우울, 다른 인격 장애, 또는 섭식장애가 동반되는 경우 회복이 어려운 편이다. 하지만 이전의 정신적 충격이나 외상으로 해리성 자아 정체성 장애가 발생한 경우는 치료를 통해 회복이 가능하며 치료율도 높다.
Case 2 ‘시크릿 가든’의 까도남 김주원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폐소공포증
의심되는 병명 >> 남자 주인공 김주원(현빈 분)은 20대 초반 엘리베이터 사고 이후 사고에 대한 기억은 잃어버렸지만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숨이 막히고 식은땀을 흘리며 심지어 죽음의 공포에 질려 기절하기도 한다. 이런 증상은 폐소공포증이라 한다. 김주원의 폐소공포증은 원래 숨어 있는 정신적 곤란함의 일부다.
죽음과 관련된 정신적 충격에 노출된 사람의 10~30%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병한다. 사고 장면이 밤에는 꿈으로, 낮에는 외상적 기억의 침습으로 떠오르고, 몸은 긴장되고 각성되어 사소한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신경이 곤두선다. 종종 짜증이 나서 폭발하며, 세상의 모든 것이 위협과 위험으로 느껴지고 사람에 대한 사랑과 열정, 관심도 없어져 결국 모든 것에서 도망가 혼자 있으려 한다. 이를 각각 외상적 기억의 침습, 과다각성, 그리고 회피현상이라고 하며 이 현상이 모두 존재할 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 한다.
회피현상으로 혼자 된 지 오래되면 심한 경우 헛것·헛소리 같은 환각 상태를 경험한다. 김주원은 큰 범주에서 숨겨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폐소공포증을 지니고 있다.
증상 >> 김주원은 일과 관계된 상황이 아닌 사적인 자리에서는 늘 목을 깊숙이 감싸는, 한땀한땀 정성 들여 만든 명품 트레이닝복을 입는다. 무늬와 색깔만 바뀐다. 이는 죽음 직전의 상황을 경험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에게 자주 발견되는 현상인데, 금방이라도 이전의 사건과 같은 일이 생길 것 같고 자신을 보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 같은 공포감과 관련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 환각은 자신의 외상적 경험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김주원이 상대역 길라임의 환상을 보고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 혼자 감정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경우 가상 친구 또는 보호자 등을 환각적으로 만들어 내는 일이 드물지 않다. 한편, 극중에서 회피증상 이외에 김주원의 다른 각성 증상과 외상적 기억의 침습 증상은 충분히 묘사되지 않았다. 사고 당시의 기억은 완전히 의식 내에 묻혀 있으며,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듯 지나치게 차분하고 냉정하다. 김주원의 이런 모습은 그의 내적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반증하고 있다.
치료법 >> ‘시크릿 가든’은 상반된 두 영혼이 김주원의 정신에서 서로 전환되는 과정을 통해 메말라 버린 영혼에 애절한 눈물과 슬픔이 더해져 따스한 생명력을 얻는 치유의 드라마이다. 실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치료과정은 이와 다르지 않다. 정신적 충격으로 깨져 버린 세상과 사람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자신의 공포와 분노, 그리고 죄책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치유되기 때문이다.
Case 3 ‘욕망의 불꽃’의 악녀 윤나영 - 반사회성 인격 장애
의심되는 병명 >> 윤나영(신은경 분)에 대해 굳이 정신과적 진단을 내리라면 정신과 의사로서 난감하기 짝이 없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은 어떤 지속적인 인격 특성을 지닌 인물이 아니며, 우리의 굶주린 욕망이 만들어낸 허상이기 때문이다.
꿈이 기억과 감정의 찌꺼기들을 정화해 내듯, 드라마 ‘욕망의 불꽃’은 우리 사회의 욕망의 찌꺼기를 모두 태우려는 듯이 밑도 끝도 없고 때로는 생뚱맞게, 그리고 집요하게 막장을 향해 달려간다. 윤나영은 시청자인 현대인의 욕망 분출 대상이 아닌 실제 인물로 보았을 때, 그녀의 성인기 행동은 반사회성 인격 장애에 해당된다.
증상 >> 반사회성 인격 장애 환자는 생존과 힘의 쟁취라는 목적만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에 오히려 미래에 대한 기획력이 떨어지는 특성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사기나 거짓말, 폭력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사회규범은 자신이 넘어야 할, 그리고 극복해야 할 방해물쯤으로 인식한다.
자신의 행동에 의해 타인이 겪게 되는 고통의 울음소리는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잡음에 지나지 않는다. 성인이 된 나영의 모습이 바로 이렇다. 힘의 쟁취를 위해 온갖 술수를 부리고 계획하지만 그 계획은 충동적이며, 선과 양심은 약한 이들의 자기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치료법 >> 윤나영 부류의 인격에 대한 치료법은 진단을 내리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다. 치료가 어렵기 때문이다. 반사회성 인격 장애는, 병이라기보다는 어떤 의미에서 생존전략이다. 병은 자신에게 불편함, 고통, 기능의 장애를 초래하지만, 반사회성 인격을 지닌 사람에게는 그 어떤 감정적 고통도 없다. 자신의 전술이 실패했을 때 분노하지만, 타인에게 고통과 좌절을 가져다 준 자신의 육체적 힘과 지력에 대해서는 은밀히 자부심을 느낀다.
감정적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감정을 회복하는 것이 치료의 목적이라면 당사자는 자신이 치유되어야 할 그 어떤 이유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들을 포기하지 않고 치료할 방법은 무엇일까? 소극적이지만 예방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반사회성 인격이 만들어질 필요가 없는 사회환경을 만든다. 아이들이 버려지고 상처받지 않게 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반사회성 인격의 치료는 정신과 의사의 몫이 아닌 우리 사회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