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모(8)군은 얼마 전 강원도의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갔다가 실수로 뒤뜰에 있던 제초제 그라목손을 마셨다. 박군 부모는 아들을 즉시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데리고 갔지만, 혈액 투석 장치를 아동에게 연결할 어린이용 기자재가 없었다. 박군은 구급차에 실려 소아용 응급기기를 갖춘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이송됐고, 음독 6시간이 지나서야 응급중환자실에서 투석을 시작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소아응급환자, 성인응급실에 뒤섞여 2차 감염되기도
지난해 응급실에서 치료받은 전체 환자 중 9세 이하의 어린이는 24.6%인 94만명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체 응급실 460여곳 중 소아병상이나 소아구역이 아닌 독립된 공간의 소아전용응급실을 갖춘 곳은 3곳에 불과하다. 응급실 내에 별도의 소아구역을 갖춘 곳도 57%뿐이며 소아중환자실 역시 전체 응급센터의 19.2%만 갖추고 있다. 소아응급환자에 필요한 장비나 전문인력도 미흡하다. 곽영호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소아응급환자의 심폐소생에 필요한 장비인 소아전용 기관 내 튜브, 소아용 응급키트 등을 구비한 병원은 절반도 안 된다"며 "소아전용 응급장비 구비와 함께 소아응급전문의 양성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소아 응급환자의 정서 안정을 위해 아이들이 좋아하도록 인테리어를 한 소아전용응급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소아 응급환자가 성인 환자와 한 응급실에서 뒤섞이면 2차 감염 및 소아의 정신적 충격 등의 문제도 크다. 곽 교수는 "응급실은 성인도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곳인데, 아이들이 출혈·감염·음주소란 등으로 아수라장인 성인 응급실에서 받는 심리적 충격과 공포는 상상을 초월한다"며 "신체적으로 위급 상황인 어린이 환자가 정신적인 충격까지 받으면 치료가 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김원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는 응급실에서 다른 질병까지 감염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며 "응급실에서 수두나 독감 등에 감염되는 어린이가 꽤 있다"고 말했다.
◆내년까지 5개 병원에 소아전용응급실 개설
보건복지부는 '차세대 응급실 모델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소아전용응급센터를 지속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지난 23일 서울아산병원이 소아전문응급센터를 처음으로 열었다. 이정신 서울아산병원장은 "소아전문응급센터는 소아만을 위한 독립 공간에 소아과 전문의가 24시간 상주한다"고 말했다. 허영주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과장은 "내년 상반기 공모를 통해 4개 병원을 추가로 선정해 소아전용응급센터 설립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