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운전 중 교통사고로 중상을 당한 김모(23)씨는 작은 병원 응급실을 경유해 사고를 당한 지 1시간 만에 서울의 종합병원 응급실에 실려왔다. 의식을 일시적으로 잃은 상태였고, 혈압은 90/60㎜Hg로 떨어져 있었으며 맥박은 106으로 정상보다 빨리 뛰었다. CT 촬영 결과 비장 파열로 복강에 피가 차고 대동맥 손상이 의심돼 응급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어느 진료과에서 수술을 담당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대기하다가 응급실에서 20시간 만에 숨졌다.
국내에서 사고를 당한 직후에 적절한 응급 치료를 받지 못해서 목숨을 잃는 외상 환자가 매년 3500명에 이른다.
◆살릴 수 있는 외상환자 3명 중 1명은 숨져
중증 외상환자는 사고 후 1시간 안에 긴급 수술 등 필수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면 상당수가 목숨을 잃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각종 사고로 12만5000여명의 중증 외상환자가 발생해, 이 가운데 1만1000여명이 사망한다(보건복지부 자료).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 응급의료지원팀장은 "이 중 3500여명은 골든 타임(golden time)인 1시간 안에 응급 치료를 받았으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사람"이라며 "이들은 중증 외상환자를 전담 치료하는 병원과 전문 의료진이 부족하고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응급처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기 때문에 숨진 경우"라고 말했다. 2008년 말 현재 우리나라의 외상환자 예방가능사망률(신속한 응급조치를 취했으면 살릴 수 있었던 사망자의 비율)은 33%다. 1998년 50%에 비하면 나아졌으나, 미국·일본(10~15%)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OECD 회원국 중 중증 외상환자를 신속하고 전문적으로 치료할 거점센터가 없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며 "외상은 암·심혈관 질환에 이어 국내 사망 원인 3위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없다"고 말했다.
◆전국 6개 병원에 24시간 권역외상센터 설치 계획
보건복지부는 중증 외상환자의 응급 수술이 24시간 가능한 '권역외상센터'를 2011년 전국 6개 병원에 설치하고 외상외과 전문의를 확충할 계획이다. 김윤 서울대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현재 국내 응급실 중 환자의 최종적인 치료를 위한 응급 수술이 24시간 가능한 곳은 24%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허영주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과장은 "2014년까지 '중증외상환자 개인별 등록제도'를 도입해 각 병원에 분산되어 있는 중증 외상환자의 발생, 치료, 진료비 등 자료를 통합 관리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2015년까지 외상환자 예방가능사망률을 20%까지 낮추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