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성 진통제 사용, 오히려 적극적으로 써야?

입력 2010.04.05 08:52 | 수정 2010.04.05 08:52

서울시 서초동에 사는 김모(65)씨는 날씨가 궂은 날이면 앉아있기도 힘들 정도로 참을 수 없는 요통에 시달린다. 10여 년 전 이삿짐을 나르다 허리를 ‘삐끗’한 이후 통증이 심하면 진통제 정도로 버텼지만 얼마 전부터 진통제도 별 효과를 못보고 있는 것. 의사는 “마약성 진통제를 줄 테니 한번 사용해보라”고 했다. 김씨는 아무리 의사가 처방한 약이라도 ‘마약’이란 말을 들으니 덜컥 겁부터 났다. 주변에서는 “마약성 진통제를 먹으면 중독이 되거나 정작 아플 때 진통제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고 말리고 있다. 김씨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요즘 고민이 많다.

◆ 마약성 진통제 사용을 늘려라

한국은 마약성 진통제 사용에 유독 보수적이다. 지난 3월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마약통제위원회(INC)는 “한국은 마약성 진통제를 너무 적게 사용하므로 마약성 진통제 사용의 방해요인을 제거하고 소비를 늘려야 한다”고 권고했다. 2005년 기준 한국의 인구 당 모르핀 사용량은 호주의 152분의 1, 일본의 11분의 1로 사용량이 선진국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신진우 서울아산병원 통증클리닉 교수는 “환자나 보호자 열에 아홉은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의사들조차 마약성 진통제를 쓰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현실이다”고 말했다.

문동언 강남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도 “과거에는 거의 분만수준의 참을 수 없는 통증을 느껴도 비마약성 진통제부터 투입했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통증 강도에 따라 치통 이상의 중등도 통증(VAS 5점 이상) 이상이면 처음부터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난 10년간 마약성 진통제 사용량은 전세계적으로 2배나 증가했다. 그러나 전세계 소모량의 89%를 북미와 유럽 등 선진국이 차지하고 있다. 반면 전세계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개발도상국에서는 단지 전체 소모량의 6%만 사용되고 있다.

◆ 중독 걱정보다 잘못된 진통제 사용이 더 위험

마약성 진통제 사용 시 가장 걱정되는 것은 다름 아닌 ‘중독’이다. 문동언 교수는 “마약성 진통제를 써야 하는 만성통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마약수용기(opioid receptor: 마약성 진통제가 작용하는 부위)의 기능이 이미 감소돼 있어 중독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마약성 진통제의 용량을 너무 적게 투여하거나 너무 늦게 투여하면 중독이 생길 수 있다고 문 교수는 설명했다. 학계에서는 마약성 진통제의 중독율을 0.0001~0.19%로 보고하고 있다. 이 수치는 의학적으로 중독 가능성이나 부작용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본다.

또한 통증이 지속되면 신경계가 변형돼 통증이 만성화될 수 있어 초기에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한다. 신진우 교수는 “통증 자체가 병이므로 참지 말고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며 “또한 통증은 면역력을 감소시켜 암 등 각종 질병에 잘 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고 말했다.

오히려 비마약성 진통제 중 관절염 등의 치료에 흔히 쓰이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사용이 위장관 부작용, 신장 독성, 간 독성 등 수년 전부터 안전성에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는 심장병과 뇌졸중 위험이 없는 노인에 한해서 단기간 동안 적은 용량만 사용하고, 장기간 진통제가 필요한 노인은 대신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라고 권고했다. 최근 ‘순환(Circulation)’지에서도 고혈압 등 심혈관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오랫동안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를 쓰면 심장과 뇌에 허혈을 초래해 심장마비, 뇌졸중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으므로 이런 사람은 마약성 진통제를 쓰라고 밝히고 있다.

잘못된 진통제 사용도 문제다. 2004년 전세계 의약품전문 조사기관인 IMS데이터에 따르면 신경병증 통증에 사용돼야 하는 마약성 진통제의 사용은 1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신경병증 통증에는 효과가 없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는 44%가 사용하고 있었다.

◆ 원인질환 치료 우선, 정확한 진단 후 사용해야

마약성 진통제를 써야 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다. ▲수술 후나 분만 후 통증 등 심한 급성통증이 있을 때 ▲3~6개월 이상 지속된 만성요통, 만성 관절통, 대상포진 후 신경통,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나 수술 후 통증이 있을 때▲심한 통증은 아니나 다른 계열의 진통제에 부작용이 있을 때 ▲65세 이상 노인에서 장기간 진통제 투여가 필요할 때 마약성 진통제를 쓴다. 꼭 극심한 통증에만 쓰는 약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마약성 진통제를 쓰기 전에 통증을 느끼는 원인 질환부터 치료하고, 환자의 우울, 불안 등 심리적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

강웅구 서울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마약성 진통제는 정해진 용량을 규칙적으로 투여해야 한다. 최근에는 약이 서서히 방출되는 패치제가 약효도 3일 정도로 길고, 혈중 농도가 일정하게 유지돼 중독 위험이 적어 주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거 중독 경험이 있는 사람은 마약 중독 가능성이 높으므로 전문가의 세심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마약성 진통제의 가장 흔한 부작용은 변비, 오심 및 구토 등이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