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준(78·전북 전주시)씨는 1년 6개월 전 어느 날 창밖을 내다보는데 창틀이 휘어져 보이는 증상이 나타났다. 박씨는 "처음에는 '나이가 들어서 어지럼증이 생겼나'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증세가 점점 심해지더니 나중에는 전화기 버튼도 일그러져 보이더라"고 말했다.
2008년 말 동네 안과를 찾은 박씨는 황반변성 진단을 받았다. 황반은 망막의 중심부에 물체의 상이 맺히는 곳으로, 황반변성은 이곳을 지나가는 혈관에 이상이 생겨서 발병한다. 처음에는 사물의 중심부가 뒤틀려 보이다가 결국 까맣게 보이거나 실명한다. 황반변성은 노화 과정에서 생길 수 있으며, 지방이 많은 음식을 자주 먹거나 흡연을 하면 발병 가능성이 높아진다.
박씨는 지난해 3월 조남천 전북대병원 안과 교수에게 진료받았다. "황반 주위에 새로운 혈관이 자라고 있어 주사제 치료를 받아야 실명을 막을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비를 마련할 수 없었다. 박씨는 "회사에서 퇴직한 뒤 사업을 하다가 실패해 자식들에게 큰 빚만 남겼다. 노령연금과 그나마 빚더미인 자식들에게 받는 용돈을 합쳐 30만원으로 한 달을 산다"고 말했다.
자포자기했던 박씨에게 뜻밖의 소식이 날아왔다. 헬스조선과 한국망막학회가 형편이 어려운 황반변성 환자의 무료 치료를 위해 공동 진행 중인 '심청이 캠페인' 기사를 본 친구가 박씨 모르게 사연을 신청한 것.
박씨는 '심청이'가 된 친구 덕분에 조남천 교수와 11개월 만에 다시 만났다. 박씨는 지난 5일 전북대병원 안과에서 황반에 비정상적인 혈관이 생성되는 것을 막는 주사제인 루센티스를 맞았다. 루센티스는 환자 상태에 따라 보통 3~5회 정도 주사한다. 조 교수는 "초진했을 때보다 병이 많이 진행돼 이미 앞을 잘 못 보는 상태가 됐다. 그냥 두면 몇년 안에 완전 실명할 상황이었다"며 "박씨는 현재 루센티스를 1회 주사맞았으며, 이것만으로도 신생혈관이 생기는 속도가 크게 느려졌다. 몇 차례 더 주사하면 시력도 일부분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를 포함해 6명이 심청이 캠페인을 통해 치료받고 있다. 현재 루센티스를 4번 주사맞은 김한기(80·서울 마포구)씨는 시력이 0.4에서 0.7로 좋아졌다. 김씨 주치의인 김하경 강남성심병원 안과 교수는 "황반변성의 증상 중 하나인 망막의 상피가 벗겨져 나가는 증상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김한기 씨는 "치료를 받기 전에는 TV에 나오는 사람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사물이 또렷하게 보여 신문이나 책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2회차 루센티스 치료를 받은 권태규(76·서울 노원구)씨는 사물이 휘어보이는 증상이 크게 개선됐다. 권씨는 황반의 두께가 정상 수치인 100㎛(마이크로미터)보다 5배 이상 두꺼워진 상태였다. 황반변성에 걸리면 각종 이물질이 황반에 쌓이며 두께가 급격히 증가하고 사물이 휘어지거나 구부러져 보이는 증상이 더 심해진다. 유승영 경희대병원 안과 교수는 "권씨는 치료 전 황반 두께가 513㎛였으나 치료 뒤 216㎛로 얇아져 사물이 휘어 보이는 증상이 상당히 개선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각자의 상태에 따라 증상이 확실히 좋아질 때까지 망막학회 소속 안과 교수들에게 계속 진료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