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골이 방지 조끼 개발의 주인공은 고려대 안산병원 수면호흡장애센터 신철(호흡기내과) 교수. 이 조끼는 코골이 문제 해결의 새로운 대안으로 국내외 의료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겉보기에 별 게 아닌 것 같은 조끼가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이유는 뭘까?
#1.
우선 코골이의 심각성에 대해 알아보자. 코골이는 성인의 25~40%가 갖고 있을 정도로 흔하다. 평소에는 코를 골지 않지만 술을 마시거나 심하게 피곤하면 코를 고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더 많다. 물론 가벼운 코골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심한 코골이는 단순히 배우자나 가족,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소음 피해를 주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심장병이나 고혈압, 뇌졸중, 성욕 감퇴 등 수많은 문제를 불러오는 원인이 된다. 이런 사람들을 수면무호흡증이라고 하는 데 코골이가 있는 사람 중 5~10%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수면무호흡증은 수면 중 1시간에 호흡장애(무호흡 또는 저호흡)가 5회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다만 무호흡이나 저호흡은 코를 골다가 호흡이 끊기는 현상이다. 이 현상이 나타날 때는 호흡을 통한 산소공급이 중단 또는 크게 떨어져 인체의 모든 기관이 비상에 걸린다고 한다. 수면무호흡증이 있으면 몸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물론 일상생활에서 불편함도 많다. 밤에 숙면을 취하지 못해 낮에 심한 졸림증에 시달려 운전이나 업무 중에 잠드는 경우까지 나타난다.
#2.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증이 심각하다고 얘기하면 “그까짓 것 수술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런 것처럼 수술이 코골이의 완벽한 해법이 아니라는 데 고민이 있다. 입 천장과 목젖, 편도 등을 레이저 등으로 부분 절제하는 코골이 수술은 현재 크게 줄었다. 수술 직후에는 코골이 개선 효과가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재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치과 장치를 부착하기도 하고, 지속적 양압호흡기(CPAP)란 장비를 잠잘 때 입에 붙이기도 한다.
지속적 양압호흡기란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 헬멧에 붙은 것과 비슷한 장비를 입에 부착하는 것으로 잠자는 동안 일정한 압력을 가진 공기를 계속 코와 기도로 불어넣어 입안 또는 목 부위가 좁아져 생기는 코골이가 생기지 않도록 해준다. 현재로서는 지속적 양압호흡기가 수면무호흡 해결의 최선책으로 꼽힌다. 하지만 250만~300만원으로 장비 구입 비용이 만만치 않고, 매일 밤 잘 때마다 거추장스런 장비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번거롭다는 단점이 있다. 수면무호흡증의 원인과 치료법을 찾기 위해 연구하는 전 세계 전문가들의 고민은 끝이 없다.
#3.
신철 교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신 교수는 호흡기내과 전문의로 국내에서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 환자 실태 연구를 오래 전부터 해오고 있다.
“코골이가 심한 사람들에게 잠옷 등 쪽에 작은 주머니를 만들어 그 안에 테니스공을 한 개 넣고 잠자는 방법을 예전에는 의사들도 권했습니다. 바로 누우면 공이 등에 배겨서 옆으로 돌아 눕게 만들어 코골이를 줄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신 교수는 “테니스 공을 이용한 방법은 코골이 치료의 대안은 아니지만, 바로 눕지 않고 옆으로 돌아 누우면 코골이 증상이 줄어든다는 개념은 의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여기서 코골이 방지 조끼의 아이디어를 얻는다. 아이디어는 단순해 보였지만 풀어야 할 숙제는 적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점이 잠자는 동안 코를 고는 순간을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와 어떻게 옆으로 돌아눕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신 교수는 고려대 안산병원 수면호흡장애센터의 수면 전문가들은 물론, 고려대 공대 제어계측공학과 홍정화 교수팀과 손을 잡았다.
이렇게 해서 개발된 것이 ‘스마트 웨어’이다. 원리는 이렇다. 조금 큰 구명조끼처럼 생긴 조끼를 입고 잠을 자다 코를 골면 몸에서 나오는 코골이 진동을 센서가 감지한다. 그러면 초소형 펌프에서 조끼의 등 부분에 있는 공기 주머니로 공기를 주입, 부풀어 오르게 한다. 공기주머니는 오른쪽과 왼쪽에 나눠 2개가 들어 있다. 만일 오른쪽 공기주머니가 팽창하면 잠자는 사람은 왼쪽으로 돌아눕게 된다. 옆으로 눕는 각도는 거의 90도. 옆으로 돌아누운 뒤 코고는 현상이 없어졌는지를 센서가 감지하면 공기주머니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면서 바로 눕게 해준다. 그러다가 또 코를 골면 다시 공기주머니를 부풀게 해 옆으로 돌아눕게 한다. 이런 과정이 잠자는 동안 여러 차례 반복된다.
#4.
스마트 웨어 개발에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지난 2005년 10월에 개발을 시작하여, 제품화되기까지 신철 교수는 연구팀을 이끌고 서울 청계천부터 동대문시장을 샅샅이 뒤지기도 했다.
“조끼는 입기 편하고 탄력성도 있는 천을 사용해야 하거든요. 여러 종류의 천을 구해서 수십 번씩 실험을 했습니다.”
조끼에 공기를 주입하는 기술 개발도 난제 중의 난제였다. 처음에는 횟집 수족관에 사용되는 소형 전기모터를 사용했는데, 소음이 200dB까지 나와 포기했다. 공기를 주입할 때 소음이 너무 크면 잠자던 사람이 깰 수 있기 때문이다. 소음이 30dB 이하이고, 크기가 작으면서도 체중 100㎏을 넘는 사람을 들어 올릴 만큼 힘이 좋은 에어펌프를 찾아 국내는 물론 일본까지 뒤져야 했다.
스마트 웨어가 모든 코골이, 수면무호흡증 환자들의 고민을 해결해줄 장비는 아니다. 다만 지속적 양압호흡기 등 기존의 치료법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던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고, 사용도 편리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신 교수는 “스마트 조끼는 누구나 구입할 수는 있으나, 대학병원 수면센터를 먼저 방문해 정확한 검사를 받고 적용 대상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 사용하는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스마트 웨어는 코골이를 치료하는 의료장비는 아니다. 이를 사용하면서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의 주요 원인이 비만 치료를 꼭 병행해야 효과가 확실하다”고 말했다.
#5.
신철 교수가 코골이 방지 조끼를 개발해 제품으로까지 내놓았다는 얘기를 들은 의료계 인사들은 “그 양반이라면 남들이 못하는 뭔가를 해내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말이 나온다. 특이한 아이디어를 제품으로까지 만든 신 교수는 대부분 의사들과는 다른 이력의 소유자.
전북 부안에서 3남 3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아홉 살 때 부친이 돌아가신 뒤부터 시련의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어머니는 생계를 꾸리느라, 형과 누나들은 공부에 매달리느라 막내를 챙길 사람은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인천에서 비인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알아주는 싸움꾼이었다. 반항아 기질이 다분했던 10대의 신철을 구한 것은 기타였다. 고교 2학년 때 입문한 기타 솜씨가 늘면서 고3 때는 미군 부대에서 순회공연을 하는 수준까지 올랐다. 하지만 폐결핵에 걸려 밴드를 그만두고, 병역도 면제됐다.
세월을 보내던 그는 간호학을 전공한 셋째 누나(신경림 간호협회장)를 따라 1980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플로리다에서 대학을 다니다 1983년 뒤늦게 고려대 의대에 편입, 어렵게 공부한 끝에 의대를 졸업했다. 1992년 미국 뉴욕의 브롱크스 레바논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과정을 밟고 호흡기내과학, 노인의학, 수면의학 등의 전문의가 됐다. 1999년 모교인 고려대 의대 교수로 컴백한 그는 지금까지 40여 편의 SCI급 논문을 발표하면서 손꼽히는 수면 전문가로 떠올랐고, 대한수면학회 제2대 회장도 맡았다.
#6.
진료ㆍ연구에 코골이 방지 조끼 개발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서도 그는 아침 7시 병원에 출근하자마자 지하에 있는 연구실에서 앰프를 켜고 기타 코드를 꼽는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외국 유명 록?블루스밴드의 연주실황을 보면서 기타 연습을 한다.
뜻이 맞는 의사들과 록 밴드를 결성, 자선 콘서트를 열어 그 수입으로 가정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돕는 것이 그의 소박한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