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아동인 초등학교 3학년 이모(10)군은 올봄 과체중 때문에 지방간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고 혹독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이군 부모는 '살을 빨리 빼야 한다'는 생각에 간식을 끊고 식사량을 줄인 것으로 모자라 급기야 굶기기 시작했다. 이군의 체중은 두 달 만에 10㎏가 줄었지만, 지방간은 오히려 악화돼 간경화로 진행될 수 있는 지방간염으로 발전했다.
고홍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지방간이 있다고 하면 부모들은 무조건 굶기는 등 체중부터 줄이려고 한다"며 "그러나 지방간 어린이가 적절한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하지 않으면 지방간은 더 악화되면서 성장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만 18세 미만 청소년 중 비만 비율은 1997년 5.8%에서 2007년 10.9%로 증가할 정도로 크게 늘고 있어(보건복지가족부 자료), 어린이 지방간도 크게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만 아동이 급증하면서 어린이 지방간도 크게 늘고 있다. 어린이 지방간은 다이어트를 시켜 무리하게 살을 빼게 하는 대신 운동으로 치료하는 것이 좋다./서울백병원 제공
◆술 안 마시는 아동도 지방간 생겨
어린이 지방간은 성인과 달리 술이 아니라 대부분 비만 때문에 생긴다. 비만 어린이의 약 70%가량이 지방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한재준 고대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의 설명이다. 한 교수는 "미국은 19세 이하 어린이 10명 중 1명이 지방간이 있다. 우리나라도 미국과 비슷하거나 조금 적은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소아 지방간은 방치하면 성인이 되기 전에 간경화로 악화할 수 있다. 또, 지방간이 생겼다는 것은 당뇨병, 고지혈증, 심혈관 질환 등 만성 질환의 문을 연 것과 다름없다.
◆뚱뚱하면 지방간 의심해야
어린이 지방간은 부모가 "설마" 하기 때문에 조기 발견이 쉽지 않다. 한 교수는 "최근에는 학교에서 혈액 검사를 한 후 간 수치가 높아 병원을 방문하는 어린이를 보면 대부분 뚱뚱하고 지방간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아이가 비만이면 일단 지방간을 의심하고 검사시키라"고 당부했다. 병원에 데려가면 혈액 검사를 통해 간 효소 수치 등을 알아보고 간 초음파 검사를 통해 간에 지방이 쌓여있는지 확인한다. 이런 검사에서 이상이 나타나면 간 조직검사를 통해 지방간 여부를 최종 확인한다.
◆무조건 굶기면 지방간 악화
고 교수는 "자녀가 지방간이면 무조건 다이어트부터 시키려는 부모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이어트로 식사량을 줄이면, 아동의 몸은 간 등에 이미 축적돼 있는 체내 지방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물을 통해 조금씩 들어오는 탄수화물만 계속 쓰게 된다. 따라서 지방은 간에 그대로 쌓여 있게 된다. 또 에너지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인체는 '비상 상황'으로 여겨 몸에 들어오는 영양소(지방)를 모두 간에 저장해 두려고 한다.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굶어서 살을 빼면 지방이 아니라 근육부터 빠지게 된다. 몸에 체지방 비율이 높아지면 당뇨병, 고혈압 등을 일으키는 인슐린 저항성이 심해져 지방간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방간은 운동으로 치료해야
성장이 끝나는 만 17~18세 이전이 아니라면 칼로리 제한을 통한 체중 감량을 하지 않아야 한다. 한 교수는 "비만 아동이라 해도, 국내 어린이 10만명의 나이별 평균 체중과 키를 조사해 만든 '체질량 지수(BMI) 백분위수'에 대입해 99% 이상의 초고도비만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체중 감량을 권하지 않는다"며 "대부분의 아동은 체중을 유지하면서 운동만 해도 지방간은 충분히 호전된다"고 말했다.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는 숨이 차지만 대화는 가능한 강도로 20~30분 정도 실시하며, 4~6주 뒤부터는 60분 정도로 시간을 늘린다. 고탄수화물, 포화지방, 콜레스테롤이 많이 함유된 음식은 피하고 고단백 저칼로리 음식을 먹어야 한다. 사탕, 요구르트 같은 단순당은 섭취가 빨라 비만을 초래하는 직접 원인이므로 삼가야 한다. 비만 아동에게 권장하는 음식과 삼가야 할 음식을 어린이가 쉽게 이해하도록 '신호등 식이요법'으로 정리한 가이드라인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