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병원에서 뇌 수술을 받는 사람도 있을까' 하는 생각은 기우(杞憂)였다. 병원 6층 재활치료실은 이른 아침부터 30여명의 환자와 보호자, 물리치료사로 북적거렸다. 고정식 자전거를 타는 사람, 보행 연습을 하는 사람, 팔 다리 물리치료를 받는 사람…. 그 중 예닐곱 명은 아직 머리에 두른 붕대도 풀지 않은 상태였다. 한 70대 환자는 "쓰러지자마자 병원에서 신속하게 뇌 수술을 해서 생명을 건졌다. 후유증도 거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뇌 수술은 개인병원과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 생명이 걸린 만큼 환자들이 대학병원만 찾지 규모가 작은 개인병원에 가려 하지 않는다. 병원 입장에선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렵다. 뇌경색이나 뇌출혈을 일으킨 환자가 도착하면 30분, 늦어도 1시간 안에 검사를 마치고 수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고가의 장비들을 갖추어야 하며, 신경외과·신경과·마취과·영상의학과·재활의학과 의사들과 전문 간호사들로 팀을 짜야 한다. 그런데도 수가(酬價)는 마땅찮아 웬만해선 돈을 벌기 어렵다. 지금도 뇌수술을 할 수 있는 개인병원이 전국에 5곳 미만인 이유다.
허춘웅 명지성모병원 원장이 뇌졸중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spphoto@chosun.com
"뇌졸중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80년대 초반만 해도 대학병원을 제외하면 뇌 수술 전문 병원이 한 곳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학병원엔 뇌졸중 환자만 옵니까? 신경외과 과장으로 재직하면서 응급실에서 시간이 지체돼 생명을 잃거나 큰 후유증을 남기는 뇌졸중 환자를 너무 많이 봤습니다."
1984년, 여의도성모병원 신경외과 과장으로 재직하던 허춘웅 원장은 대림동에 뇌 수술 전문병원을 개원했다. "당시 일본엔 뇌수술 전문병원이 30곳이 넘었는데, 국내엔 한 곳도 없다는 것이 부끄러워 '총대'를 메는 마음으로 12명의 의사들을 모아 저소득층이 많은 대림동에 개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개원 했는데 생각보다 병원이 잘 됐다. 대학병원 가면 환자가 밀리기 때문인지 택시나 앰블런스 기사들이 환자를 많이 데려다 줬다. 그 때는 대형병원만 찾는 풍조가 지금보다 덜 해 손 쉽게 자리를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허 원장은 명지성모병원을 "미·일·중·소 세계 4강 틈바구니에 끼인 한반도"로 비유했다. 고대구로병원, 여의도성모병원, 강남성심병원, 서울대 보라매병원 등 4개의 대학병원과 인접해 있는 개인병원이라는 뜻이다. 그는 "만약 우리가 부단히 노력하지 않았고, 이들보다 조금이라도 실력이 뒤떨어졌다면 벌써 병원 문을 닫았을 것"이라며 "대학병원들 틈새에서 지금껏 병원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실력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말했다.
"비결이 뭐냐"고 묻자 그는 "돈만 벌면 장비와 인력에 재투자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이 병원이 보유하고 있는 혈관조영 촬영기는 국내에 3대 밖에 없는 최신 기종이다. 최신식 64 채널 CT도 5월 초 설치되며, 대당 15억 원에 달하는 최신식 MRI도 2대나 보유하고 있다. 그 밖의 장비들도 모두 최신 기종이다. 그는 "장비 회사들이 툭하면 새 기종을 선보이면서 가격을 올린다. 대학병원과 맞서려면 장비라도 좋아야 하지 않겠는가? 새 기종이 나올 때마다 장비를 갈아 치웠다"고 말했다. 또 모든 의사를 1년에 서너 차례 외국 학회에 보냈으며, 일본 뇌 수술 전문병원 중 랭킹 5위 안에 드는 '오타 기념병원'과 2004년부터 매년 2차례 '한일 뇌졸중 심포지움'을 열며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120명의 간호사 중 80명이 뇌졸중 전문가 과정을 이수해 '미국 뇌혈관질환 판정기준(NIHSS)'을 내릴 수 있을 정도다. 허 원장은 "대학병원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정말 죽을 힘을 다했고, 이제 그런 실력을 갖췄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힘이 부친다"고 허 원장은 말한다. 병원의 실력을 요모조모 따져 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대형병원만 찾는 환자들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공룡화되고 있는 대형병원에 불만이 많고, 환자에게도 서운한 마음이 있다"고 했다. 허 원장은 "대기업이 설립한 대형병원들이 등장하면서 환자들의 '쏠림 현상'이 심화됐다. 이로 인해 1차·2차·3차 의료기관으로 구분된 진료 체계가 무너져 국민 전체가 손해를 보고 있다. 정부는 말만 내세우지 말고 정말 중소병원을 육성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병의 경중(輕重)에 관계 없이 무조건 대학병원만 찾는다면 환자도 시간적·재정적으로 큰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1969년 가톨릭의과대학을 졸업한 허 원장은 40년째 의사 가운을 입고 있다. 대학병원 과장을 지냈고, 병원도 웬만큼 키웠으니 은퇴를 생각할 만도 한데도 그의 마음은 아직도 욕심과 계획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오는 5월에 200병상 규모의, 국내 최대 규모 뇌졸중 재활병원을 착공한다. 재활병원은 응급실이나 소아병원과 함께 짓는 순간부터 손해를 보는 대표적 시설이다. '돈 먹는 하마'여서 대학 중에서도 연세대만 재활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달리다 보니 세브란스재활병원이나 국립재활병원 등지에선 두 달만 지나면 '강제적으로' 퇴원을 시킨다. 이 바람에 재활치료를 충분히 못 받아 장애로 남는 경우가 많다"며 "신앙적 양심에 따라 지금껏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차원에서 재활병원을 짓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본 병원도 10년 이내에 현재의 230병상 규모에서 600병상 규모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칠순을 바라보는 그는 아직도 뜨거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