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건강검진땐 왜 혈액·소변검사 안하죠?

생후 9개월 된 아기를 둔 전모(30)씨는 최근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무료로 시행하는 영·유아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편지를 받았다. 보험공단이 아기 건강까지 챙겨주는구나 싶어 흐뭇한 마음으로 직장에 하루 휴가를 내 아기를 데리고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찾았다. 그러나 검진은 5분 만에 끝났다. 병원에서는 A4 용지 5장 분량의 부모 설문지를 작성케 했으며, 의사는 아기의 키·몸무게·머리둘레를 잰 뒤 "이상 없다"고 했다. 전씨는 "검진을 해준다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너무 간단해서 아쉬웠다. 이럴 줄 알았다면 휴가까지 내고 받으러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7년 11월부터 '영유아 건강검진 제도'가 시작됐지만 영유아 검진에 대한 부모들의 오해로 불만이 많으며, 이 때문에 참여율도 저조한 편이다. 영유아 검진은 기본적으로 아이의 발육 상태를 체크하기 위함인데 검진의 이런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들이 "검진을 한다면서 사진도 찍지 않고 피도 안 뽑느냐"고 불만을 터트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에 대해 일산병원 소아청소년과 정희정 과장은 "영유아 시기엔 특정 질환보다는 성장 이상, 발달 지연 등이 가장 흔한 건강 문제다. 따라서 아기들은 구태여 소변·혈액검사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부모들이 알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시행 중인 영유아 검진은 생후 4개월부터 만 5세까지 아이들의 성장 발달을 무료로 검사해주는 제도다. 검진은 모두 7회에 걸쳐 이뤄지며, ▲진찰·문진 ▲신체 계측 ▲발달평가·상담 ▲안전사고 예방 ▲건강교육(영양·수면) ▲취학 전 준비 ▲구강검진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키, 몸무게, 머리둘레 측정은 영유아의 발육지연이나 과체중, 소두증 또는 대두증을 조기 발견하기 위한 것이며, 발달검사는 정신지체나 자폐증, 뇌성마비 등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다.

또 청각 문진이나 시력검사는 난청이나 선천성 백내장, 약시 등을 조기 발견해 치료할 수 있도록 해준다.

건강보험관리공단 건강검진부 윤이영 차장은 "영유아 건강검진은 질병의 예방이나 조기 발견뿐 아니라 발육 체크, 건강 교육 등 영유아에게 꼭 필요한 항목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특히 영유아 사망원인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육아지도는 매우 유용하므로 부모들이 이 검진을 적극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영유아 사망 원인은 1위 교통사고, 2위 암, 3위 익수사고, 4위 선천 기형, 5위 추락사고다.

한편 이 제도는 시행 1년이 넘었지만 수검률이 대상자의 3분1 수준에 그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이 지난해 영유아 건강검진 수검률을 조사한 결과 만 6세 미만 영유아 228만8678명 중 약 37%가 검진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단이 지난해 수검률이 낮은 이유를 분석한 결과 ▲시행 첫해여서 제도를 잘 모르는 부모가 많고 ▲맞벌이 부부들은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기 힘들며 ▲혈액검사나 X-선 검사가 없어 효과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는 부모가 많기 때문으로 나왔다.

공단 내부적으로는 이 중에서도 검진의 효과에 의문을 품는 부모가 많은 것을 수검률이 낮은 가장 중요한 이유로 보고 있는데 우리보다 영유아 건강검진을 먼저 도입한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서도 소변·혈액검사는 하지 않는다. 일산병원 정희정 과장은 "특별한 질환이 없는 영·유아에게 소변·혈액검사를 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별 의미가 없으며, 설사 이런 검사를 하더라도 검사 과정에서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고 말했다.

올해 영유아 건강검진 대상자는 235만여명. 자세한 정보는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 민원마당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