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8시 경희대동서신의학병원 2층 국제진료센터. 교수와 간호사, 국제 진료센터 코디네이터, 행정직원 등 7명이 테이블에 앉았다.
이슬람 전통 복장을 한 강사 움바로바 루피니소씨가 테이블에 인체 해부 모형을 놓고 각 장기의 이름과 인사법 등을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로 말하면 병원 관계자들이 큰 소리로 따라했다. 루피니소씨는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통역사로 병원 직원이 서울 이태원 이슬람사원을 통해 어렵게 초빙했다고 한다.
경희대동서신의학병원 이형래(왼쪽 두번째) 교수 등 병원 직원들이 움바로바 루피니소(맨 왼쪽) 강사로부터 중동과 이슬람문화에 대해 배우고 있다. / 경희대동서신의학병원 제공
루피니소씨는 "중동 여성 환자들에게는 손목 윗부분이 드러나는 옷을 주면 안돼요. 이슬람 여성들은 다른 남성에게 잘 보이면 안됩니다. 남자 의사 선생님들 조심하셔야 해요"라고 말하자 웃음이 터졌다.
국내 의료계의 해외 환자 유치 활동이 열기를 더해 가고 있다. 정부가 '글로벌 헬스케어'를 신성장 동력 산업의 하나로 선정하면서 의료계는 물론 지방자치단체, 여행업계들까지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해외환자 유치 전에 나선 병원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지역은 중동(中東)이다.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이 '중동 스터디 그룹'을 만든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형래 교수는 "자율적인 스터디 그룹을 통해 말과 문화를 배우고 있다. 중동 환자를 유치하려면 먼저 그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터디 그룹 멤버인 이금주 영양건강관리센터장은 "중동 환자들을 위해 양고기·쇠고기·닭고기로 만든 환자식을 개발 중"이라며 "한식과 중동 음식을 조화롭게 섞은 퓨전 음식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측은 최근 국내 이슬람 사원으로부터 원내에 이슬람 기도실을 설치해주면 사원이 적극 나서 중동 환자를 유치하겠다는 제안을 받고 이를 검토 중이다.
해외환자 유치를 위해 구성된 한국국제의료서비스협의회는 지난 9일 중동 카타르를 방문해 설명회를 열었다. 카타르가 한국을 의료관광 대상국으로 선정하면 한국에서 치료받는 카타르 국민들은 자국 정부로부터 의료 비용을 지원 받는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이영호 외국인 환자 마케팅 케어팀장은 "카타르 보건부장관이 4월쯤 방한키로 했는데, 양국 간 의료서비스 협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개원가에서도 중동 관심이 뜨겁다. 최근 중동에 직접 방문해 실태조사를 한 임찬영 이안안과 원장은 "중동은 햇볕이 강해 익상편이나 백내장이 많다. 이들 질환에 대한 수술을 특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국 마케팅 회사로부터 해외환자 유치에 대한 컨설팅을 받은 예송음성센터 김형태 원장은 "올해부터 해외환자 유치가 본격화될 전망인데, 1~2년 뒤 외국인들은 한국의 몇 개 대표 병원만 기억할 것이다. 그 뒤에는 이 경쟁에 뛰어들기가 어려울 것이므로 지금 어떤 전략을 마련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러시아도 주요 관심 대상지역이다. 극동러시아 지역에서는 작년에 2500여 명이 외국 병원을 찾아 치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브란스병원은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블라디보스톡 부근 아르쫌시의 부시장 등 유력 인사 30여 명을 초청, 건강검진과 온천 체험, 산업체 시찰 행사를 진행했다.
한국관광공사 정진수 전략상품개발팀장은 "연해주와 극동 러시아 주요 도시들과 의료관광 양해각서(MOU)를 맺을 계획이다. 앞으로 이 지역에서 10만 여명의 환자를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국제의료서비스협의회 회원사인 6개 병의원과 한국관광공사는 지난 5일 일본 도쿄에서 의료관광 설명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50여 개 여행사의 상품기획자와 한국 여행사의 일본 지사가 참여했다. 일본 측에서는 미용, 성형, 한방, 건강검진 등에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병원 관계자는 "아직 공개하긴 힘들지만 상당히 구체적인 수준의 대화가 오고갔다"고 말했다.
지난달 아름다운나라 피부과·성형외과가 모두투어인터내셔널, 서울 강남구와 손잡고 개발한 메디컬 스킨케어와 제주도 관광을 묶은 패키지 상품을 이용해 중국인 18명을 입국시킨 적도 있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14만 명의 해외환자를 유치할 경우 1조 3000억 원 이상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