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간, 신장질환 진단을 집에서 간편하게 할 수 있다고 내세우는 약국용 진단 시약들이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 의약안전정책과 김상현 사무관은 "현재 10여 종의 진단용 시약이 약국에서 팔리고 있다. 임신 테스트기처럼 오래된 것에서부터 최근에는 대장암, 간 질환 테스트기까지 나와 있다"고 말했다.
■"종이 한 장으로 대장암 검사 가능"
한 남성이 소변검사지(작은 종이)와 대장암 검사지(큰 종이)를 살펴보고 있다.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spphoto@chosun.com
손바닥만한 종이 하나로 대장질환이 있는 지를 검사해준다는 검사지가 약국에서 판매 중이다.
보령제약 등에서 지난해부터 수입·판매 중인 대장 질환 검사지는 용변을 본 뒤 화장실 변기에 넣으면 30초쯤 지나 대장 질환의 유무를 감별해준다는 제품. 종이에 표기된 3개(상단 1개, 하단 2개)의 직사각형 중 상단과 하단 왼쪽 직사각형의 색깔이 함께 변하면 대장 질환이 의심 된다는 것이 업체의 주장.
이는 대장에 염증이나 용종(폴립), 암이 있을 때 대변에 혈액이 섞여 나오는 것에 착안해 만들어졌다. 김광민 약사는 "대장 내시경보다 훨씬 쉽고 간편해 소비자들의 호응도가 높다"고 말했다.
의사들은 이에 대해 "검사 결과만 맹신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대장 질환 없이 치질만 있어도 대변에 피가 섞여 나올 수 있다. 또 아스피린이나 스테로이드제 등을 복용할 때도 위장관 출혈이 생겨 대변에 섞여 나올 수 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대장 질환이 있는데도 없는 것으로 진단할 수 있다는 점. 건국대병원 소화기내과 이선영 교수는 "이런 방법으로는 혈액이 섞이지 않은 대변만 나오면 대장질환이 있어도 진단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대장 질환이 있어도 출혈이 동반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미국은 대장내시경 검사 비용이 100만~200만원에 달해 다른 검사법을 고려할만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5만~15만원 대에 그친다. 따라서 진단의 정확도가 높고 곧바로 용종을 제거할 수 있는 내시경의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제약회사들은 치질 진단 시약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변 검사지로 간, 신장질환, 당뇨병을 다 안다?
건강검진을 받을 때 소변 컵에 넣어보는 작은 검사지도 집에서 사용할 수 있게 나와 있다. 이를 이용하면 단백뇨 여부, 빌리루빈 수치, 당의 유무 등을 알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신장, 간, 혈당에 문제가 있는 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 업체의 주장. 폭 5㎜에 새끼손가락 길이만한 검사지에는 4가지 성분 시트가 붙어 있어 소변에 담그면 60초 뒤에 색깔이 변한다. 설명서에 나온 대로 색깔 변화를 살펴보면 간, 신장, 혈당 등 문제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제약회사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 역시 허점이 있다. 비타민C를 과다 섭취하거나 항생제 등의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들은 검사지의 색깔 변화가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강소영 교수는 "소변 검사는 겉보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변수가 매우 많다. 집에서 자가 진단한 뒤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판단해 관리를 하지 않다가 심각한 상태가 된 뒤 병원을 찾는 경우를 종종 본다"고 말했다.
■임신 진단 테스트기, 자궁 외 임신은 진단 못해
현재 약국에서 판매 중인 임신 테스트기는 수십 종에 이른다. 임신 테스트기의 정확도는 90~95%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가임 여성들의 배란 일을 정확히 알려준다는 시약도 약국에서 시판 중이다. 여성의 소변을 검사해 황체형성 호르몬의 양이 급격히 늘어나는 지를 알려준다는 제품이다. 계획 임신을 원하는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
하지만 임신 진단 테스트기에도 맹점은 있다. 제일병원 산부인과 김문영 교수는 "임신 테스트기는 비타민 복용, 피임제, 진통제, 항생제 등을 복용해도 비교적 정확하게 임신 여부를 확인해준다. 다만 자궁 외 임신이나 자궁에 종양이 있을 때는 확인되지 않으며, 과음이나 과도한 수분 섭취도 정확도를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심근경색증 위험도도 키트로 확인 가능하다고 주장
돌연사의 주요 원인인 심근경색증은 운동부하검사 등을 제외하면 병원에서 진단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약국에서 팔리는 심근경색증 진단 키트는 뭘까?
이는 심장 근육에 혈액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근육 세포가 죽을 때 방출되는 화학 물질들을 감지해낸다는 것이 업체의 설명이다. 자가혈당측정기처럼 혈액을 약간 뽑아 키트에 넣으면 15분쯤 지나 결과를 알려준다는 것. 약국에서 팔지만 전문 의약품이어서 의사와 상담한 뒤에 구입할 수 있다.
심장 전문의들은 고개를 내젓는다. 신장이 나쁘거나 급성 심근경색증에서는 진단용 키트의 수치가 올라가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
강동성심병원 심장혈관내과 한규록 교수는 "심장질환은 병원에서도 진단이 매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심장질환은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병원에서 제대로 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