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모(21·여)씨는 PC방에서 일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았다. 이씨는 담배를 피우지 않을 뿐더러 가족 중에도 흡연자가 없다. 이런 오씨의 혈중 코티닌 수치는 2897ng/mL. 일반적인 비흡연자는 1ng/mL 이 정상이며, 5ng/mL 이상이면 담배 연기에 노출된 것으로 본다.
오후 6시부터 밤 11시까지 5시간 동안 일하는 오씨는 근무시간 내내 10명 이상의 PC방 고객과 직원들이 피우는 담배 연기에 노출된다. 눈이 따갑고 가래와 기침이 나오고 숨쉬기가 답답하다고 오씨는 하소연한다. 담배를 입에 대지도 않은 오씨는 간접흡연 때문에 하루 1~2갑의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와 비슷한 정도로 니코틴 등 유해물질에 노출되고 있다. 담배 속의 니코틴은 몸 안에서 대사과정을 거쳐 무해한 '코티닌(cotinine)'으로 바뀌어 소변으로 배출된다.
(위)원창연 헬스조선 PD cywoon@chosun.com
(아래)EU에서 시판중인 한 담배갑에 등장한 간접흡연 피해 사진./ 보건복지가족부 제공
간접흡연의 폐해는 담배 연기에 노출돼 눈이 따갑고 옷에 냄새가 배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일부 전문가들은 "간접흡연은 담배로 저지르는 간접적인 상해 또는 살인"이라고 주장할 정도이다.
간접흡연의 피해가 가장 심각한 곳이 작은 식당(150㎡ 미만)이다. 단국대의대 예방의학과 권호장 교수의 '근로자의 직장 내 간접흡연 피해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간접흡연의 평균 노출 시간은 하루 5시간30분 이상이며, 장소로는 작은 식당, 술집(카페), 큰 식당, PC방, 사무실 순이었다.
간접흡연의 폐해를 심각하게 경험하고 있지만, 마땅히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고객이 담배를 피워도 참는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자리를 피하는 방법으로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요청하는 경우는 큰 식당(28.6%)에서는 비교적 많았으나, PC방이나 술집(카페)에서는 0%, 작은 식당에서는 1%에 불과했다.
간접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폐암, 심혈관계 질환, 당뇨병 등 매우 광범위하다. 미국 환경보호청의 1992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매년 3000명이 간접흡연에 의한 폐암으로 사망한다. 미국 환경보호청(EPA)과 국제암연구기구(IARC)는 '간접흡연' 자체를 인체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의 히라야마 박사팀이 남녀 26만명을 16년 간 장기 추적 조사한 결과 담배를 하루 14개비 피우는 남편과 함께 사는 부인의 폐암 발생 위험은 비흡연자 남편을 둔 부인보다 42%, 20개비 이상 피우는 남편을 둔 부인은 92%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대한폐암학회에서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폐암 환자 중 흡연 경험이 없는 선암 환자가 1338명으로 주로 흡연자들에게 발생하는 폐암 중 편평상피내암(274명)보다 5배 정도 많았다.
영국의학저널에 실린 간접흡연과 심장질환의 관계에 대한 연구결과를 보면 비흡연자라도 흡연자과 함께 살 경우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증 등에 걸릴 위험이 30%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하루 담배 1갑을 피우는 사람이 심장병에 걸릴 위험의 절반 수준이다.
간접흡연은 어린이들에게는 더 심각하다. 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처는 올해 초 미국 샌디에이고대 조르그 매트 교수팀의 연구결과를 인용, 부모가 집밖에서 담배를 피워도 자녀의 소변에서 코티닌이 매우 높게 검출된다고 밝혔다. 흡연자의 몸, 옷, 머리카락 등에 묻은 니코틴이 집에서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것이다.
간접흡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환풍기 설치, 금연·흡연구역 분리 등의 방법이 동원되기도 했으나, 이는 효과가 없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도 2006년 간접흡연 보고서에서 '환기시설과 흡연석의 구분이 간접흡연의 노출로부터 보호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단국대 권호장 교수는 "비흡연자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통상적인 환기장치가 담배연기 속 미세분진이나 가스상의 물질들을 제거하지 못하고, 담배 연기를 건물 전체에 분포시킨다"고 말했다. 결국 해법은 '금연'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건당국과 지방자치단체, 환경단체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서울시와 환경운동연합은 공동으로 '클린(clean) 택시 캠페인'을 시작한 데 이어 이달부터 '담배 연기 없는 식당' 캠페인을 펼칠 예정이다.
정부도 올해 중에 간접흡연의 피해를 줄이는 방법을 마련할 방침이다. 국민건강증진법은 1000㎡ 이상 사무실과 식당, PC방 등 대중이 이용하는 시설에 대해 1/2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토록 하고 있으나, 보육시설이나 학교, PC방 등 어린이·청소년 이용이 많은 시설의 경우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보건복지가족부 건강증진과 신승일 과장은 "절반을 금연구역으로 해도 나머지 공간에 담배연기가 흘러가기 때문"이라며 "법적인 규제에 앞서 흡연자들이 스스로 금연하는 것은 물론 최소한 다중 이용 시설에서만이라도 금연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