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알아야 이긴다… "환우들께 투병 경험 나눠드립니다"

의사가 아닌 환자들이 질병에 대한 책을 내는 시대가 왔다.

질병 치료 과정에서는 환자들이 전문가인 의료진들로부터 일방적으로 정보를 받는다. 하지만 이런 고정관념을 깨는 사례가 하나 둘 생기고 있다.

환자들이 환우회(患友會) 활동이나, 국내외 병원이나 학회의 인터넷 홈페이지 탐방, 전문서적 공부 등을 통해 나름대로 지식을 쌓고 이를 책으로 펴내기 시작한 것.

환자들은 책에서 치료 과정에서 겪은 병원과 의료진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도 하고, 국내외 최신 치료법에 대한 환자들의 궁금증도 자세히 풀어 동병상련(同病相憐)을 실천하고 있다.

최근 파킨슨병과 제1형 당뇨병에 대한 책을 낸 김영동, 진철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인터뷰 도중 노(老) 장군은 오른손을 가볍게 떨었을 뿐 나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꼿꼿한 자세를 잃지않았다. 6ㆍ25와 월남전 참전,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뒤 한국자동차보험, 동부고속 사장 등을 역임한 김영동(78)씨는 어쩌면 생의 마지막 전투가 될 지도 모르는 파킨슨병과 투병 중이다. 2005년 10월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그는 2년 3개월 동안 투병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한 책 ‘파킨슨병 이제 두렵지 않다(마음풍경)’를 최근 펴냈다.

파킨슨병은 이 병에 걸린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가 팔과 고개를 떨면서 힘들게 걷는 모습이 TV로보도돼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질환. 뇌의 도파민이란 신경전달 물질이 부족해져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 정확한 원인이나 치료법은 아직 잘 모른다.

전문가들이 파킨슨병에 대해 쓴 책은 더러 있으나, 자신의 투병 경험을 담은 책을 낸 것은 김씨가 처음이다. 그는 자비 2000여 만원을 들여 책 6000부를 인쇄해 환자와 가족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그는 51세 되던 1981년 간암 수술을 받고, 투병기 ‘지웠다 다시 쓴 이름’을 낸 적도 있다.

“왜 환자가 책을 썼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경험에 비춰 보면 파킨슨병 초기 환자는 이 병에 대한 상식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나도 파킨슨병에 대한 궁금함을 풀고 싶었지만 국내 서적은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김씨는 “이 병에 대한 정보를 애타게 찾는 환우들을 위해 책을 내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그의 책은 파킨슨병을 진단 받고 투병 생활을 하면서 겪은 고통 등을 솔직하게 담고 있다. 파킨슨병에 대한 상당한 지식도 배어 있다. 미묘한 대목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약 복용에 대한 의사와의 견해 차이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무슨 병이든 의사의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지만 특히 파킨슨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보다 정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같은 병임에도 환자 개개인의 증상에 따라, 나이와 치료 기간에 따라 약의 종류와 그 복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가 중증환자 2명으로부터 약 복용 경험을 들어봤더니 두 사람이 하나같이 의사의 약 처방이 과도하거나 적절치 못했다는 견해를 토로하였다.’ 다만 그는 ‘환자가 오만하게도 의사가 해야 할 일까지 거론했는데, 그것이 전적으로 옳은 견해라고는 볼 수 없다’는 입장도 밝혀두고 있다.

그는 매일 아침 5시30분쯤 침대에서 눈 뜨자마자 스스로 개발한 스트레칭을 20여분간 실시한다. 파킨슨병이 진행되면서 겪어야 하는 과정은 생생하다. 진단 10개월쯤 됐을 때 그가 경험한 대표적인 증상이 ‘걸음걸이의 문제, 배뇨ㆍ소화장애, 손 떨림’등이었다.

‘걷기가 힘들고 보폭이 짧아지고 넘어질 것만 같다. 발등이 자주 붓는다. 잘 때 다리가 자주 경직되고, 통증이 심할 때도 있다. 잘 때 침을 흘리고, 배뇨 횟수가 4회로 늘었다. 글쓰기가 힘들고, 글씨가 점점 작아진다. 일상 동작이 너무 느리고, 미세한 동작은 잘 안 된다. 마룻바닥에 넘어지면서 왼쪽 손목을 다쳤다.’

또 밤에 3~4회 이상 화장실에 갔다 와야 하고, 1~2회 찾아오는 다리 경직 때문에 깨야 하는 것이 미안해 부인과 각 방을 쓰게 된 사실도 솔직하게 얘기하고 있다. 치료 과정에서 어떤 부분이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도 세세하게 비교하고 있다. 2005년 10월의 상태를 100으로 보고 2006년 8월의 상태가 좋아졌으면 100미만, 100은 동일, 나빠졌으면 100이상으로 비교한 대목이다. ‘옷 입고 벗을 때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해 넘어질 것 같아 늘 불안을 느낀다’(100→100), ‘동작이 느리고 불편해진다’(100→110).

그는 2년 여간의 투병생활을 바탕으로, 앞으로 8년간 투병 계획도 짜놓고 있다.

“변비와 다리 경직, 어지럼증, 우울증 등이 더 심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서 세운 계획입니다. 떨림이나 경직이 심하게 와서 집에 머물기 힘들면 아무래도 요양원이나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므로 이 때를 위해 경제적인 준비도 사전에 해두려고 합니다.”

그는 “지금도 파킨슨병 진단 2년 전부터 이런저런 증상이 나타났을 때 늙어서 그런 것이겠지 하고 흘려 보낸 세월이 얼마나 아쉬운지 모른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병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진행을 최대한 늦출 수는 있었을 텐데…. 병을 알아야 이길 수 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파킨슨병 이제 두렵지 않다’는 전국의 교보문고 안내데스크에 가면 누구나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김영동씨가 제안하는  파킨슨병 환자가 꼭 지켜야 할 4가지

-낮에는 절대 눕지 말 것.(낮에 눕지 않는 것만으로도 약효 유지 시간이 길어진다.)
-매일 산책하며, 30분 이상 걷도록 할 노력할 것.
-밤 9시30분에 무조건 잠자리에 들 것.(자는 동안 뇌에서 도파민이 생산된다. 잠이 안오면 누워서라도 휴식을 취하라.)
-아침 기상과 동시에 실시하는 스트레칭을 거르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