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헬스조선 공동기획-나의 희망이야기⑧
난소암 극복한 김선혜(64)씨
남들과 같은 폐경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 몸이 후끈 달아올라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고, 몸이 항상 무거워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었다. 손목이 아파 문고리를 잡고 돌리기도 힘들었다. 병원에서는 골다공증 초기라고 했다. 여성호르몬제와 보신용으로 장어, 보신탕, 개소주를 챙겨먹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1999년 3월. 피곤해서 누웠는데 오른쪽 배에서 계란만한 덩어리가 만져졌다. 호르몬 약을 탈 겸 병원에 갔더니 “대장과 자궁까지 전이된 난소암 3기 말이어서 살 확률은 20% 미만이다”는 말을 들었다. 폐경 전까지 생리주기도 일정했고, 생리통도 없었다. 1남3녀를 낳게 한 건강한 난소였다. 치료 일정이 초 스피드로 잡혀 진단 3일 뒤 수술을 받았다. 군에 있는 막내아들에게는 수술 사실조차 알리지 못했다.
수술 전날 외과의사가 “수술 중 직장에 암이 발견되면 인공장루(腸瘻)를 달아야 할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항문 기능을 대신하는 주머니를 달고 살 수도 있다는 것. 산다고 해도 제대로 살 수 있을지 몰랐다. 차라리 위엄 있게 죽고 싶었다.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버티었더니 남편이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며 애원했다.
7~8시간이 걸린 대수술이었다. 대장의 3분의 2 이상을 잘라냈고, 난소와 자궁, 비장을 모두 제거했다. 다행히도 직장으로는 암이 전이되지 않았다. 수술 후 의사는 “보이는 암은 모조리 제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술 뒤가 더 문제였다. 퇴원까지 13일간은 미음과 물만으로 버텼고, 집에 돌아와서 10일 정도는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 뒤에도 먹기만 하면 토해 조금씩 자주 먹고 화장실을 자주 갔다. 3주마다 한번씩 3일간 입원하면서 항암치료를 받았다. 항암제 독성 때문에 말초 신경염이 생겨 팔다리가 저려오고, 통증이 왔다.
둘째 딸과 막내 딸이 간병을 위해 직장에 휴직계를 냈다. 그렇게 세 번의 항암치료를 받자 정신이 혼미해졌다. 남편에게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병원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호랑이’로 불릴 만큼 불 같은 성격의 남편이 무릎을 꿇고 “날 위해 참아달라”며 간청했다. 그렇게 간신히 여섯 번의 항암치료를 마쳤다.
남편은 몸에 좋다는 아가리쿠스버섯, 장어, 목초액, 칼슘제, 비타민제, 무공해 식품 등을 구해왔다. 식단은 간섭하지 않았다. “마음을 편하게 하라. 몸에 나쁘지 않은 거라면 다 사 주겠다”고 했다. 남편의 사랑을 정말 원 없이 누렸다.
재발의 두려움은 항상 따라다녔다. 등이 아파 잠에서 깨면 “혹시 척추에 암이 퍼진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에 긴장했다. 라디오의 기독교 방송을 들으며, 찬송과 기도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다.
수술 후 1년이 지나자 입맛이 돌아왔다. 교회의 성가대 활동과 농촌 노인 대상 미용봉사를 다시 시작했다. 그때쯤 불가능할 줄 알았던 성생활도 다시 시작했다. 수술 7년째 되던 날, 마침내 완치 판정을 받았다. 얼마 전에는 북유럽 패키지 여행을 12박13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을 이를 악물고 견딘 대가로 주어진 일상이라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
/ 홍세정 헬스조선 기자 hsj@chosun.com
주치의 코멘트
"난소암, 대부분 3기 말 발견"
난소암은 조기 진단이 매우 어렵다. 난소가 복강 내 깊숙이 위치해 초기 자각 증상이 거의 없기 때문. 따라서 난소암은 김선혜씨처럼 복수와 복부 팽만을 보이는 3기 말이 되어서야 대부분 진단된다.
난소암의 예후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인자는 1차 수술의 성공여부. 김 씨는 복강 내 여러 장기에 암이 전이돼 자궁, 난소뿐 아니라 대장의 절반 이상과 비장을 절제했다. 암을 완전히 제거해도 재발 위험이 커 안심할 수 없었다.
특히 3기 말 난소암의 재발률은 3년 내 70%나 된다. 이 때문에 난소암은 환자 및 가족에게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가족간의 신뢰와 환자의 의지가 김 씨의 말기 난소암을 완치로 이끈 결정적 요인이었다. 삼성서울병원 부인암센터는 최근 수술 전 항암 약물 치료, 재발 억제를 위한 항암 약물 치료를 통해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