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약 과다처방
감기환자엔 평균 4.73품목
美·日의 2~3배 많이 처방

고혈압 환자 김모(53)씨는 경기도 성남지역 한 가정의학과 의원에서 처방을 받아 하루 세 번, 한 번에 열 알씩 약을 복용해 왔다.
우연한 기회에 아는 약사에게 무슨 약인지 물었더니 고혈압약 4정, 당뇨병약 2정, 고지혈증약 2정, 소화제 1정, 두통약 1정이었다. 깜짝 놀라 인근 대학병원에 갔더니 혈당과 콜레스테롤 수치는 정상이라며, 혈압약 2정만 처방했다. 영문도 모른 채 수개월 간 쓸데 없는 당뇨병약, 고지혈증약, 두통약을 복용해 왔던 것이다.
병의 종류에 상관 없이 습관적으로 소화제나 제산제를 처방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전혀 상관 없는 약을 처방하는 의사들이 많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서울의 한 내과는 단순 감기로 온 윤모(30)씨에게 해열진통제 2품목, 콧물약 1품목, 기침가래약 2품목, 소화제 1품목, 제산제 1품목 등 모두 7가지 종류의 약을 처방했다.
지방의 한 종합병원에선 고혈압, 당뇨병, 무좀 등이 있는 김모(45)씨에게 병과 직접적 관계가 적은 제산제, 진통제, 혈액순환촉진제, 비타민제 등을 포함 무려 28종 84정을 30일치 처방 했다.
이러다보니 우리나라 의사는 OECD국 의사 중 약을 가장 많이 처방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1~3월 병·의원 처방 건당 약 품목 수를 집계한 결과 평균 4.13품목으로 나타났다. 이는 OECD국 평균(2.6품목)보다 1.5품목 많다.
종합병원(3.3품목)보다 동네 의원(4.24품목)이 더 많았고, 전체 처방의 60%에 소화제나 제산제가 들어 있었다. 암 등 중증 질환보다는 감기 같은 가벼운 질환, 성인보다는 소아·청소년에게 더 많은 약이 처방 됐다.
과별로는 이비인후과(4.48품목)가 가장 많은 약을 처방 했으며, 내과(4.4품목), 가정의학과(4.3품목), 일반의원(4.23품목), 외과(4품목) 등 감기환자를 주로 진료하는 과에서 처방 품목 수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우리나라 의사의 감기 환자 1인에 대한 처방 약 품목 수는 평균 4.73품목으로 미국(1.61품목)이나 일본(2.2품목)보다 2~3배 많았다.
약을 많이 복용하면 병이 빨리 낫기보다 부작용이 생길 위험이 더 커지고, 환자와 국가가 부담하는 약값이 더 든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삼성서울병원 손기호 약제부장은 “진료 과정에서 확실한 진단이 안되면 이약 저약을 많이 집어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덕성여대 약대 김성철 외래교수도 “약 가짓수가 많다고 일괄적으로 ‘문제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떤 약의 조합인지에 따라 부작용 문제 등 위험성이 뒤따를 수 있다”고 했다.
심평원 측은 “처방 되는 약 품목수가 많아지면 약물 이상반응과 상호작용 등으로 인해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커지고, 약값도 올라가는 부작용이 있다. 불필요한 약 처방을 줄이기 위해 각 병원의 처방약 수를 인터넷을 통해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정시욱 헬스조선 기자 sujung@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