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호르몬요법 심장병 위험 경고, 그 후 5년

미국 국립보건원의‘여성건강선도연구(WHI)’결과가 발표돼 세상을 뒤집어 놓은 지 만 5년이 지났다. 폐경 여성을 위한 여성호르몬 치료가 유방암, 뇌졸중, 심장병 등의 위험을 높인다는 것이 WHI의 핵심.

심장병과 뇌졸중까지 예방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호르몬 치료가 거꾸로 심장병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를 놓고 의학자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서로 싸웠고, 환자들은 어떤 의사 말을 믿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최근 방한한 국제폐경학회 데이비드 스터디(David Sturdee₩영국 버밍햄대) 회장과 한국폐경학회 김정구(서울대) 회장을 동시에 인터뷰했다.

- 폐경학회는 처음부터 WHI의 오류를 지적했는데….

“호르몬 치료를 받는 여성은 대부분 50세 전후인데, WHI는 평균 63세 여성을 대상으로 효과와 부작용을 검증했다. 이것이 가장 큰 오류며, WHI 연구팀들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현재 50~59세 여성을 대상으로‘KEEPS 연구’가 진행 중인데, 이 연구가 마무리 되면 호르몬 치료의 효과와 부작용이 보다 분명해 질 것이다.

한편 WHI 결과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성에게 적용하는 것은 더 무리다. 아시아 여성은 미국 여성보다 덜 뚱뚱하며 담배도 덜 피우므로 WHI와 유사한 연구를 하더라도 심장병 위험이 낮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스터디)

- 한국 여성은 호르몬 치료로 인한 심혈관 질환 위험보다 유방암 위험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호르몬 치료가 유방암을 증가시킨다는 것은 WHI 이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다. 때문에 호르몬 치료를 실시할 때는 효과와 잠재적 위험을 저울에 올려 놓고 생각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폐경 증상이 있는 여성은 실(失)보다 득(得)이 많기 때문에 호르몬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스터디)

“미국은 인구의 약 0.12%, 한국은 0.03%가 유방암에 걸린다. 미국의 약 4분의 1 수준으로, 호르몬 치료를 받은 한국 여성은 그만큼 유방암 걱정을 덜 해도 된다. 대신 유방암보다 훨씬 위험한 대장암을 예방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WHI에 따르면 호르몬치료를 받으면 유방암은 24% 증가되지만 대장암은 44% 감소된다. 한국인 암 사망률에 대입하면 유방암은 1만 명당 1.3명 증가하지만 대장암은 2.4명 감소한다. 대장암에 비해 유방암의 조기 발견율 및 완치율이 훨씬 높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암 예방을 위해서라도 호르몬 치료를 받는 것이 더 좋다.”(김)

- WHI 이후 호르몬 치료 환자는 얼마나 줄었나?

“미국에서 약 30% 감소했다. 그러나 현재는 바닥을 치고 조금씩 상승하는 추세다. 지난 4월 미국 타임지에서 WHI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 놓는 등 학계의 움직임이‘긍정’쪽으로 바뀌고 있어 환자는 다시 늘 것으로 보인다.”(스터디)

“한국에선 약 20% 정도 감소했다. 한가지 재미 있는 조사 결과가 있다. 최근 폐경기가 지난 한국 여의사들을 조사했더니 65%가 호르몬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김)

- WHI 이후 석류 등 여성호르몬이 풍부한 천연 식품을 찾는 환자가 늘었다.

“석류 100개를 먹어야 호르몬제 한 알 효과를 볼 수 있다. 식품은 대안이 될 수 없다.”(김)

“WHI 이후 대체요법 제품이 많이 등장했으나 성분이 불분명하며, 중금속이 들어 있는 것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스터티)

- 폐경 증상 완화뿐 아니라 회춘(回春) 목적으로도 여성 호르몬제 사용이 가능한가?

“‘현재로선 모른다’가 정답이다. 여성 호르몬은 여성을 여성답게 만들고 피부도 매끄럽게 하지만 폐경 증상도 없는 여성에게, 오로지 회춘 목적만으로 썼을 때의 효과와 부작용은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았다.”(김)

- 조기 폐경을 겪는 여성이 늘고 있는데 곧바로 호르몬 치료를 받아야 하나? 호르몬 치료 기간이 길어지면 부작용도 더 커지는 것 아닌가?

“모든 여성은 정상 폐경 연령까지 여성 호르몬을 갖고 있어야 하므로 조기 폐경이 생기면 즉시 호르몬을 보충해야 한다. 그것은 여성의 신체적인 당연한 권리다. WHI조차 젊어서부터 호르몬 치료를 하면 심혈관질환 위험이 증가하지 않는다고 분석하고 있다.”(스터디)

/ 글·사진=임호준 헬스조선 기자 hjl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