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어머니 허리 살피세요

중년 이상이면 어릴 때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이란 동요를 즐겨 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이를 많이 먹으면 꼬부랑 할머니가 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시절이다. 그 때는 대개 50대만 돼도 할머니가 됐기 때문에 허리가 굽어도 나이 탓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70대 ‘꼬부랑 할머니’와 50대 ‘꼬부랑 아주머니’의 허리가 굽은 것은 이유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요즘은 할머니 축에도 못 드는 50대 중·후반에 ‘꼬부랑 아주머니’가 되면 20~30년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 어버이날(8일) 부모님을 찾아뵈면, 어머니의 허리가 어떻게 굽었는지 꼭 살펴보라고 전문의들은 권한다.

◆꼬부랑 할머니와 아주머니의 차이

60대 후반 이후 노인이 허리가 굽는 것을 ‘노인성 후만증’이라고 한다. 전 세계 어느 나라나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허리가 굽는 원인은 대부분 골다공증과 그로 인한 골절이다. 척추 뼈가 엉성해져 조금씩 내려앉으면서 허리가 굽는 것이다. 척추는 옆에서 보면 4곳에 굽어 있다.<그림1> 이 중 흉추부 후만곡 부위, 즉 가슴 쪽 부위의 척추 뼈를 중심으로 앞으로 굽는 것이 노인성 후만증이다.

하지만 ‘꼬부랑 아주머니’의 허리 굽는 증상은 이와 전혀 다르다. 배쪽으로 휘어 있는 ‘요추부 전만곡’ 부위가 반대 방향인 등 쪽으로 휘고, 흉추부 후만곡 부위는 거꾸로 앞(가슴)쪽으로 휘는 것이다. 이를 ‘요부 변성 후만증’이라고 한다. 척추 뼈의 S자 모양이 정상인과 비교하면 거꾸로다. 발생 연령도 40~60대로 ‘노인성 후만증’보다 훨씬 빨리 나타난다.

◆‘꼬부랑 아주머니’의 원인

원인은 생활습관이다. 쪼그려 앉아서 하는 밭일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또 빨래, 걸레질, 음식장만 등 대부분 방바닥에 앉아서 하는 집안일도 원인이다. 요부변성 후만증은 한국, 일본, 중국 등에서만 발견되며, 서양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허리(척추뼈)를 지탱하는 근육은 여러 개 있는 데 이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허리 앞쪽의 ‘복근’과 뒤쪽의 ‘신전근’. 이 두 개가 앞뒤에서 허리를 굽히고, 펴준다. 그런데 쪼그려 앉아 오랫동안 일하면 신전근으로 가는 혈액 공급이 줄어 서서히 근육이 망가진다. 요부변성 후만증 환자의 허리 MRI사진을 보면 신전근이 거의 없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2>

돛대를 지탱하는 앞 돛줄과 뒷 돛줄 중 후자가 끊어지면 똑바로 서 있던 돛대가 앞으로 넘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그림3>

허리가 앞으로 굽으니까 몸이 균형을 잡기 위해 가슴을 내밀게 돼 척추의 S자가 거꾸로 된다. 농촌에서 밭일을 오래 한 50~60대 여성들이 서 있는 자세를 유심히 보면 허리가 앞으로 굽은 대신 가슴을 내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균형을 잡기 위해 무릎도 약간 굽힌다.<사진>

남성들에게는 이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 것은 여성호르몬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수술로도 근본 치료 안돼

‘요부변성 후만증’이 처음 학계에 보고된 것은 불과 20년 전. 1988년 일본의 척추외과 의사인 다케미쓰 교수에 의해서였다. 다케미쓰 교수는 일본 홋카이도 농촌의 농부들 가운데 유난히 허리가 굽어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를 밝히는 연구를 하다 이를 발견했다.

국내에서는 1996년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이춘성 교수팀이 처음 이 병에 대한 논문을 썼다.

요부변성 후만증이 있으면 만성 요통이 생긴다. 일어서거나 걸을 때 몸이 앞으로 굽고, 주방에서 일할 때 싱크대에 팔꿈치를 받쳐야 한다. 이런 여성들의 팔꿈치를 자세히 보면 싱크대에 늘 기대서 부엌일을 한 탓에 굳은 살이 박혀 있다. 또 언덕이나 계단을 오르기도 힘들다. 평지는 그런대로 걸을 수 있으나 언덕이나 계단을 올라가기 힘들다.

약물치료나 물리치료로는 별 효과가 없다. 그동안 국내에서 요부변성 후만증 수술이 꽤 많이 시행됐다. 문제는 수술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 수술이 성공하려면 척추 뼈가 강해야 하고, 엉덩이 근육이 정상이어야 한다. 하지만 요부변성 후만증 환자는 이런 경우가 드물다.

척추 뼈를 바로 세우고, 강력한 금속 지지대로 고정하는 수술을 해도 3년쯤 지나면 다시 허리가 굽는다. 수술시간이 7~10시간으로 길고, 전체 비용이 1000만원 이상 들어가는데도 수술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수술을 줄이려는 분위기다.

최선의 방법은 예방이다. 쪼그리고 앉는 자세를 피해야 한다. 반찬 다듬기 등을 할 때에도 가능한한 의자에 앉고, TV를 볼 때도 방바닥이 아닌 소파에 앉아서 본다. 불가피하게 농촌에서 쪼그리고 앉아 밭일을 해야 한다면 15~20분마다 일어서서 허리를 뒤로 제쳐주는 스트레칭을 해줘야 한다. 그래야 신전근으로 가는 혈액 공급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이춘성 교수는 “집안에서도 방바닥에 쪼그려 앉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가능하면 식탁이나 소파 등 의자에 앉는 생활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시골에서 평생을 농사일을 하면 자식 뒷바라지해온 고향 어머니들이 노인도 되기 전부터 허리가 굽어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수술이 어려울 뿐 아니라, 수술해도 완치가 잘 안 된다. 어버이날에는 어머니의 허리를 꼭 살펴보라”고 당부했다.

/임형균 헬스조선 기자 hy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