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代 외과의사 가족의 건강법

한희철 前춘천제일병원장
한원곤 강북삼성병원장
한윤대 신촌세브란스병원 레지던트

의료계 대표적‘3D 업종’인 외과의사는 의사 중에서도 가장 건강을 상하기 쉽다. 절대적인 근로시간부터 다른 과 의사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수술 결과에 따라 사람 생명이 좌지우지되는 탓에 스트레스도 가장 많이 받는다.

'당연히’ 폭음을 즐기게 되고, 담배의 유혹에도 상대적으로 쉽게 빠진다. 그러면서도 자기 몸 챙길 시간이 없다. 최근 끝난 메디컬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와 ‘하얀거탑’에서 주인공 외과 의사들이 암과 같은 중병에 걸린 상황설정도 충분히 현실성 있다.

3대째 외과의사 집안을 일궈온 한희철(89) 전 춘천제일병원 원장은 그래서“의사도 환자가 될 수 있으니 절대 건강에 자만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아들 원곤(57)씨는 강북삼성병원 원장이며, 손자 윤대(28) 씨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일반외과 레지던트다.
3대는 모두 연세대 의대 동문이기도 하다.

한 전 원장은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환자들을 누구보다 많이 만나지만 정작 자신이 환자가 되리라곤 생각 못하는 이들이 외과의사”라며 “아들과 손자에게 ‘나처럼 건강에 배신 당하기 전에 관리하라’고 당부한다”고 말했다.

키 170㎝, 몸무게 80㎏. 한 전 원장은 약간 비만한 것을 제외하면 나이답지 않게 건강했다. 혈색도 좋았고 걸음걸이도 문제 없었다. 기억도 또렷해 모처럼의 모교 나들이에서 50년 전 대학 지도교수의 이름을 줄줄 외웠다. 단지 한쪽 입술을 움직이는 것이 약간 부자연스러웠다. 그런 그가 “건강에 배신 당했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960년 고향 춘천에 개인병원을 개원한 한 전 원장은 34년간 정말 쉬지 않고 일했다. 매일 새벽 병원에 출근해 밤 늦도록 빡빡한 수술 일정을 소화해 냈고, 병원 문을 닫고 파 김치가 된 몸과 마음은 먹고 마시는 것으로 달랬다. 타고난 식성 탓에 음식은 가리지 않고 많이 먹었고, 한 자리에서 소주 두 세 병이나 양주 한 병 정도는 너끈히 비웠다. 20년 전인 그의 나이 69세까지의 일이다.

1987년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입이 돌아갔고, 눈도 잘 감기지 않았다. 얼굴을 움직이는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체력저하와 과로 등이 원인인 안면신경마비(구안와사)였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느낌이었다. 상심한 나머지 한 달 동안 바깥출입도 삼갔다. 자신도 건강을 잃고 ‘불쌍한’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절감했기 때문이다.


한 전 원장은 당장 술부터 끊고 건강검진을 받았다. 다행히도 혈압이 약간 높은 것을 빼면 큰 문제는 없었다. 혈압을 관리하기 위한 식이요법으로 짠 김치도 가급적 삼가고 소금을 넣지 않고 김이나 생선을 구워 먹었다. 함경도 출신인 그가 그토록 즐겨먹던 가자미식해도 딱 끊었다. 운동은 등산을 선택했다.

매일 아침 춘천 집 앞 봉의산을 올랐고, 주말엔 전국 산이란 산은 다 가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산도 좋고, 그 곳에서 만나는 사람도 좋았다. 눈앞에 펼쳐진 초록들을 보면 마음까지 시원해지고 건강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6개월 전 건강검진 결과, 고혈압과 과체중 외에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치고 “꽤 정정하시다”는 것이 아들 한 원장의 의견이다. 한 전 원장은 얼마 전 “비만과 고혈압 가족력이 있어 아들에게 ‘식탐(食貪)은 자학(自虐), 절대(絶對) 소식(小食)!’이란 글귀를 적어줬다”고 말했다.

아들 한원곤 원장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식성이 좋은데다 업무상 저녁 술자리가 워낙 많아서…. 그러나 ‘건강에 자만하지 말라’는 아버님 말씀을 항상 명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헬스클럽 다닐 시간조차 내기 어려운 한 원장은 바쁜 시간을 쪼개 단전호흡을 하는 것으로 건강을 관리한다. 시간이 나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집에서는 베란다에서 하는데 약간 차고 신선한 공기가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3분 정도 무념무상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으면 몸의 독소가 배출되면서 정신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과 의사를 육체 노동자라고 흔히들 얘기하지만 그 어느 과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정신 노동자이기도 하다.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해 오래 전부터 혼자서 웃는 훈련을 해 왔는데 그것도 내 건강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 내내 크게 웃거나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사무실에 혼자 있을 때는 더 크게 소리를 내 웃는다고 했다.

하루 서너 시간도 못 자고 힘들게 일하는 레지던트 1년 차 아들에게 한 원장은 “지금 당장은 따로 시간을 내서 건강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으니 먼저 마음을 다스리라고 얘기한다. 특히 항상 긍정적으로 살고, 화내지 말고, 욕하지 말라고 당부한다”고 말했다.

/ 홍세정 헬스조선 기자 hsj@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