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호텔에 개원한 초호화병원을 둘러보니

병원 문을 열자마자 부드러운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며 황금빛 색채가 시선을 잡아 끈다. 황금색 벨벳 카펫과 톤을 맞춘 소파는 고급스러운 느낌이 더했다. 벽면은 이태리 산 미러 타일. 피아노를 지나 벽에 걸린 그림 사이로 은은한 아로마테라피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병원이라기보다는 고급 부띠끄 같았다.

국내 최초로 호텔에 병원이 들어섰다.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는 2004년 12월 노화방지센터인 라끄리닉드 빠리(노화방지센터)가 문을 연데 이어 지난 7월 초 예치과와 자생한방병원이 진료를 시작했다. 고운세상 피부과와 서울 수면센터도 7월 안으로 개원할 전망이다.

명실상부한 ‘호텔 병원’은 100%로 예약제 운영, 개인별 맞춤 공간 등을 통해 일반병원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받고 싶어하는 이들의 기호를 적극 반영했다. 

호텔 6층에 자리한 예치과의 경우 빽빽하게 놓여있는 여러 개의 병상 사이를 오가며 진료하기 마련인 일반 치과와는 달리 철저히 고객지향적이다. 로열(Royal), 크라운(Crown), 프레지던스(Presidence), 엠베서더(Ambassador) 룸이란 이름으로 각 방을 구분해 치료기구와 세팅 장비를 달리했다. 환자는 대기실에서 기다릴 필요가 없이 병원에 와 자신이 예약한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신만을 위해 마련된 원룸 원베드의 개인 공간을 차지할 수 있다.

마치 내 집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호텔 병원들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차별화 전략이다. 자생한방병원은 각 진료실마다 TV, 소파, 노트북 컴퓨터, 화장대, 헤어 드라이기 시설을 마련해 개인공간을 통해 편하게 쉬고자 하는 이들로 하여금 특별한 기분을 내게 했다. 

오픈 한지 얼마 되지 않은 탓인지 이곳을 찾는 환자는 하루 평균 5명 내외다. 그러나 이처럼 환자를 적게 진료하는 것도 호텔병원의 전략 중 하나다. ‘특별한 서비스’를 감당할 수 있는 소수정예에게만 서비스를 하겠다는 것이 이들 병원의 의도. 이를 위해 자생한방병원은 한 사람 당 1시간 정도의 치료시간 무료 동맥경화, 전자파 치료 등 본원에 비해 여유로운 치료를 제공한다. 

병원들을 찾는 경로는 호텔에 방문했던 국내외 투숙객의 입 소문을 타고 왔거나 기존에 이 병원의 서비스를 즐겨 이용했던 단골 고객들이다. 호텔 입점 전부터 명품 병원이란 브랜드를 지닌 이 병원들은 호텔 내 입점을 이유로 특별히 비싼 치료비를 받고 있지는 않다고 설명한다. 자생한방병원 관계자는 “치료비가 강남이나 분당 본원과 큰 차이가 없다”며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일부 치료비는 본원보다 싼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예치과 관계자도 “이를 뽑거나 충치를 제거하는 등의 일반 치료는 일반 병원과 똑같다”고 부연했다.


그렇다면 호텔들은 왜 병원을 입점하게 됐을까. 신라호텔은 설문조사를 통해 메디컬 센터에 대한 고객들의 수요가 높다는 점을 파악, 작년 말 본격적으로 국내 명품 병원을 대상으로 이 곳으로의 입점을 제의했다. 명품쇼핑 등으로 멀티 기능을 보강하는 등 세계 럭셔리 명문 호텔들의 설립 추세도 이러한 변화에 한 몫 했다. 


신라호텔 측은 “스파와 노화방지 클리닉, 피트니스를 이용하며 미용과 건강을 관리하는 고객들에게 메디컬 서비스가 부가됨으로써 더욱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병원측은 호텔 내 입점으로 어떤 효과를 누릴까. 비싼 임대료와 낮은 접근성이라는 악조건을 생각해볼 때 이러한 병원 측의 결정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병원도 기업인 만큼 입점 계획 단계서부터 몇 가지 사항을 철저히 따졌다. 

첫째, 호텔 내 오픈 시 상류 VIP 고객층을 보다 많이 확보할 수 있다. 사생활 보호가 절실히 필요한 상류층의 경우 장충동의 높은 고지에 위치해 있는 신라호텔은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다. 즉 낮은 접근성이 사생활 보호로 직결된다는 설명이다. 피부관리나 자세 교정 등 이들 병원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애초부터 가격이 비싸 상류층 이외의 고객들에게서는 수요를 이끌어내는 것이 어려웠다. 

둘째, 세계적 병원이 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 병원들은 이 호텔에서 최근 개최되고 있는 한미 FTA를 비롯 외부행사들이 이 호텔에서 열리는 점에 주목, 병원 브랜드가 해외 손님들의 입 소문을 타고 국외로 번져나가기를 노리고 있다. 시카고 중국 등에 지사를 갖고 있는 고운세상피부과나 내년도 LA에 병원을 설립할 계획이 있는 자생한방병원 등은 모두 국외로의 병원 홍보에 등한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덧붙이자면 샴 쌍둥이 분리 수술 성공으로 유명해진 싱가포르 래플스(Raffles) 병원처럼 세계적 병원으로 거듭나려 하는 게 이들 병원의 포부다.

셋째, 수익보다는 고객 서비스를 강조하는 홍보로 자사의 브랜드 파워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병원 측은 호텔 고객을 위한 프리미어 서비스에 일조, 적자가 나지 않는 선에서 호텔 고객들에게 배려하려 한다고 밝혔다. 또 “병원도 수익을 올리면서 세계적으로 특화된 호텔 서비스에 부응해 국내 호텔 발전에 기여하려 한다”고 병원 측은 강조했다.

기껏해야 개장한 지 열흘 남짓한 호텔과 병원의 궁합이 ‘찰떡궁합’으로 이어질 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