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과 문턱이 한층 낮아지면서 내친 김에 화장품까지 피부과에서 구입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금까지 여성들은 화장품을 사기 위해 백화점이나 화장품 전문점을 찾았지만 이제는 피부과에서 진료나 마사지를 받으면서 제품까지 팩키지로 함께 구매하고 있는 것이다.
‘코스메슈티컬’이란 화장품(코스메틱)과 약품(파머슈티컬)의 합성어로, 일반 화장품에 치료라는 기능성을 접목시킨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연 평균 12%씩 성장하고 있는 코스메슈티컬 올해 세계시장 규모만 해도 57억 달러(5조5000억여원)를 내다볼 정도로 화장품 업계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화장품 업계의 블루오션
아름다운나라피부과, 고운세상피부과, CNP 피부과, S&U피부과, 예인 피부과, 모델로 피부과 등 체인화된 많은 피부과 전문병원들도 뒤를 바짝 추격하면서 시장 자체도 더욱 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소형 한의원, 맑은얼굴 참진한의원, 함소아 한의원처럼 고급에스테틱클리닉을 표방하는 한방 피부과도 출사표를 던졌다.
여기에 헐리우드 스타들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다양한 해외 코슈메슈티컬 브랜드까지 성공적으로 국내에 진출하면서 뜨거운 각축전을 펼치고 있다. 프레데릭 브랜트라는 피부과 의사가 개발한 미국의 ‘닥터 브랜트’, 위스콘신 대학의 예방의학 교수인 마이스너 박사가 개발한 ‘셀렉스-C’, 최진실을 모델로 앞세운 ‘3LAB’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강남의 유명 백화점을 위주로 까다로운 ‘웰루킹(well-looking)족’들을 사로잡고 있다.
한편, 기존 화장품 업체들도 제약사들과 협력해 신제품을 출시하거나, 이미 출시된 제품에 코스메슈티컬적 이미지를 더하고 있다. 기능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화장품 회사 엘리자베스 아덴이 보톡스 제조업체인 미국의 알레간사와 공동으로 ‘프리베이지’라는 이름의 안티 에이징 에센스를 개발한 것이 이런 흐름을 잘 보여주는 예다.
‘닥터 화장품’이 급속하게 늘어나는 배경에는 한국콜마와 같은 화장품 전문기업의 역할도 한몫을 한다. 한국콜마는 2005년 한해만 해도 총 347건의 기능성화장품 승인을 얻음으로써 태평양을 제치고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회사측 관계자는 “기미, 주근깨, 주름, 미백, 아토피 등과 같은 문제성 피부에 대한 제품개발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기능성 화장품이 다수를 차지한다”며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임상시험을 실시하고, 샘플테스트도 거치는 등 엄격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집으로 피부과 의사를 데려 오세요
닥터 화장품이 급부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비자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그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첫째, 피부 문제를 노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사람들의 증가다. 서울 강남의 한 피부과 개원의는 “요즘 사람들은 피부과 가기를 슈퍼마켓 가는 정도로 예사롭지 않게 여긴다”며 “피부에 생기는 고민거리들에 대해 어디까지나 ‘고칠 수 있는 문제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인식 전환도 깔려 있다”고 설명한다.
둘째, 의사들이 만든 화장품이라는 신뢰감이다. 여드름이 심해서 몇 년 전부터 피부과 화장품을 고집해오고 있다는 박영하(34, 주부)씨는 “내 피부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는 의사나 피부관리사들이 카운셀링하면서 제품을 권하다 보면 신뢰감이 생겨 제품을 사게 된다”고 말한다. 해외 코스메슈티컬 브랜드의 광고 문구인 ‘Take the doctor home with you(집으로 의사를 데려 오세요)’라는 말처럼, 집에서도 피부과 의사가 진료하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셋째, 성분의 차별화다. OEM방식으로 제품을 제조하고 있는 화장품 업체의 관계자는 “제품의 목적이 문제 피부에 대한 치유·보조적 효과가 크다 보니, 일반 화장품보다 피부에 유용한 성분을 고농도, 고함량 사용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초 코엑스에서 열렸던 2006년 서울국제화장품미용박람회 참석자 433명을 대상으로 ‘코스메슈티컬 제품을 구매하는 이유에 관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의 40%가 ‘피부문제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피부 안전성’이 34%로 2위를 차지했고, ‘고급스럽고 깐깐한 이미지’(12%), ‘빠른 피부 문제 해결 능력’(10%) 등이 뒤를 이었다.
‘닥터 화장품’ 과연 닥터들이 만드나?
간혹 피부과 병원에서 자체개발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처방은 피부과에서 내리고, 개발은 화장품 전문기업이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다. 화장품은 다양한 성분들을 단순히 섞는 차원이 아니라 안전성, 안정성, 피부침투력 등을 꼼꼼히 따지는 과학이기 때문이다.
제조 방식을 보면 제조사에서 개발한 뒤 고객사(피부과)들에게 소개해서 제품화되는 경우가 있고(ODM), 고객사가 먼저 제시한 특정 컨셉의 제품을 제조사가 받아들여 개발하는 경우도 있다(OEM). 개발기간은 보통 1개 제품에 평균 3개월 정도가 걸린다.
코스메슈티컬 화장품은 의사들이 만든 화장품이라는 차별성을 내세워 높은 가격을 받고 있다. 이지함화장품에서 나오는 수분 에센스의 경우 35㎖에 3만7천원으로, 가격은 국내 화장품과 비슷하지만 용량은 3분의 2밖에 되지 않는다. 차앤박화장품의 자외선차단제는 60㎖에 4만2천원으로 수입 브랜드와 맞먹는 가격이다. 해외의 닥터 화장품은 랑콤이나 에스티로더 같은 기존의 수입 브랜드보다 20~30%정도 더 비싸다.
영동세브란스 병원 피부과 유욱 교수는 “오랫동안 현장에서 진료하면서 얻은 노하우가 제품에 스며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반 화장품에 비해 성능 대비 가격 측면에서 터무니없이 비싼 경우가 많다”며 “소비자들은 의사가 만든 화장품이라는 ‘신뢰’와 그로 인한 ‘가격 부담’ 사이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