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방식, 암·심장병 예방 효과 논란

야채를 많이 먹고 지방 섭취를 줄이는 ‘저지방식’이 건강에 좋다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 역학(疫學)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같은 결과는 의학과 역학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 받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대규모 조사 결과여서 더욱 논란이 되고 있다.

NIH 연구팀은 50~79세의 폐경기 여성 4만8835명을 8년간 추적 조사했다. 이 가운데 1만9541명은 음식물의 총 섭취량 중 지방질 성분을 20% 이하로 줄이도록 통제한 ‘저지방 식단’ 그룹이며, 나머지 2만9294명은 원하는 음식을 맘껏 섭취하도록 한 비교그룹이었다.

연구결과는 뜻밖이었다. 핵심 비교 대상이었던 유방암 발병률의 경우, 저지방 식단 그룹은 1000명당 42명, 비교그룹은 1000명당 45명으로 통계학적으로 차이가 없었다. 직장암 연평균 발병률은 오히려 저지방 식단 그룹이 0.13%로 비교그룹의 0.12%에 비해 약간 높게 나왔다.

심장병 발병률에서도 저지방 식단 그룹의 연간 평균 심혈관질환(CVD) 발병률은 0.86%로, 비교그룹의 0.88%에 비해 차이가 없었다. ‘저지방 식단이 암 발생률을 줄인다’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기획된 대규모 연구조사가 전혀 의외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이밖에도 “야채·과일·곡류(Grain) 등 저지방 식단 그룹과 비교 그룹간에 체중 감량 면에서 큰 차이가 없으며,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당뇨에 걸리기 쉽다는 이론도 맞지 않다”고 결론 내려 기존의 상식들을 송두리째 뒤엎고 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미국암협회의 마이클 선 박사는 “암협회 차원에서는 앞으로 저지방 식단을 권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록펠러 대학교 줄리스 허쉬 교수도 “이번 연구는 혁명적”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오랫동안 저지방 식사를 권장해 온 딕 오니쉬 박사는 “이번 조사 대상 여성들이 충분한 수준으로 섭취 지방을 줄이지도 않았고, 충분한 양의 야채와 과일을 먹지 않았다”며 “식이요법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조사에 8년이란 기간은 너무 짧다”고 비판했다.

특히 실험에 참가한 여성 중 저지방 식단 그룹은 전체 음식 섭취량에서 지방의 비율을 20% 이하로 유지하도록 기획됐지만, 실제 실험 시작 1년 뒤 이를 지킨 참가자는 31.4%, 6년째는 14.4%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 연구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론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국내 학계도 의견이 엇갈린다. 강남차병원 외과 박해린 교수는 “음식을 바꾼다고 체질까지 바뀌진 않는다”며 “야채나 과일 등을 많이 먹는 저지방 식단으로 바꾼다고 해도 유방암 발병 위험이 감소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서울대병원 외과 노동영 교수는 “아무리 많은 돈을 들인 대규모 조사라 해도 완전하진 않다”며 “소득수준의 증가에 따른 식단의 변화로 유방암 등이 급증하는 우리나라의 현실만 보더라도 이번 연구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가톨릭중앙의료원 라이프스타일센터 김경수(가정의학과) 소장은 “음식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하나의 연구만 보고 결론 내리는 것은 성급하다”며 “좀 더 후속적인 연구결과들을 지켜볼 필요가 있으며, 확실한 결론이 날 때까진 고지방식품의 섭취를 줄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 최현묵기자 seanc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