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이웃] 앉지도 못하던 환자 일어섰다

머나먼 여정이었다. 김준구(48)씨가 28일 인천 길병원에서 인공 엉덩이 관절 수술을 받는 데까지는 7년이 걸렸다. 울릉도에서 이곳에 입원하기까지도 곡절의 연속이었다. 이날 오후 병원 9층 입원실을 찾아 김씨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말을 붙였다. 통증이 심한지 찡그리면서도 그는 “정말 걸을 수 있게 됐느냐”고 물었다. 문병 온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이 대답했다. “일주일만 지나면 뛰어다닐 겁니다.” 김씨는 “7년간 외딴 섬에서 혼자서만 끙끙 앓던 병인데… 너무 고맙다”고 했다. 수세미 머리에 아직 마취가 덜 풀린 듯한 표정의 김씨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 했다. “‘두 발’을 다시 찾은 생애 최고의 선물”이라고도 했다.

가천의과학대 길병원과 공동으로 ‘저소득·독거노인 100명 무료 수술 행사’를 벌이고 있는 헬스조선닷컴(www.healthchosun.com)’에 김씨의 사연이 접수된 것은 보름 전쯤이다. 울릉도 보건의료원 정만진 원장이 “인공관절 수술만 받으면 걸을 수 있는 40대 후반 남성이 3년 동안 집 안에 누워만 지내니 꼭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호소했다. “노인이 아니어서 신청 대상이 아닌 줄 알지만 가족도 친척도 없어 옆집 팔십 노인에게 오히려 병 수발을 받는 사연이 딱합니다. ‘예외적으로’ 수술을 해 줄 수는 없나요.”

아내와 이혼한 뒤 1988년 혼자 울릉도에 건너간 김씨는 지금껏 오징어잡이 배를 타며 생계를 꾸려왔다. 홀로 사는 뱃사람의 유일한 낙은 술이었다. 7년쯤 전부터 다리와 엉덩이가 아팠지만 병원에 갈 마음의 여유도, 돈도 없었다. 그러다 3년 전쯤 아예 주저앉아 버렸다. 양쪽 허벅지 뼈 윗부분에 피가 통하지 않아 뼈 세포가 모두 죽는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 진단이 내려졌다. 인공관절 수술을 해야 하지만 1000만원이 넘는 수술비가 없어 진통제로 견뎌왔다고 했다.

길병원과 헬스조선닷컴은 김씨를 수술하기로 결정했다. 김씨의 인천행을 위해 울릉군청에선 보호자 겸 간병인으로 직원을 배정했고, 여객선 ‘선플라워호’는 김씨 일행에 대해 뱃삯을 면제해 줬다. 길병원은 포항에 앰뷸런스를 보내 병원까지 김씨를 후송했다.

26일 인천 길병원에 입원한 김씨는 정밀 검사 결과 양쪽 엉덩이 관절이 닳아서 아예 흔적도 없었다. 오른쪽 허벅지뼈는 2㎝, 왼쪽 허벅지뼈는 4㎝가 닳아서 짧아져 있었다. 정형외과 문도현 교수는 “이 상태로 어떻게 3년이나 견뎠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28일 아침 8시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양쪽 엉덩이 관절 모두를 갈아끼우는 수술을 받았다. 집도한 문 교수는 “수술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당장 내일부터 걷기 연습을 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평생 걷지 못하고 누운 채 짧은 인생을 마치는 줄 알았는데…”라며 눈물을 떨어냈다.

이날 길병원에는 길병원-헬스조선닷컴의 도움으로 무료 수술을 받은 정연수(66)씨 등 5명이 꽃을 사들고 찾아와 이길여 회장과 의료진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역시 인공무릎관절수술을 받은 서규만(63)씨는 김준구씨에게 “나는 벌써 걸어다닌다. 김 선생도 조금만 지나면 잊고 지냈던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길병원과 헬스조선의 이번 행사를 통해 지금껏 8명이 수술을 받았으며, 21명이 수술을 하기 위한 수술 전 치료를 받고 있다. 앞으로도 병명에 관계없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치료받지 못하고 고통받는 노인을 100명까지 무료로 수술해 줄 예정이다. 신청은 헬스조선닷컴에서 계속 받는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 탁상훈기자 if@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