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이웃] 독거노인등 100명에 무료 치료 선물

마당 한편의 화장실을 다녀오는 데도 전귀순(81) 할머니는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5m도 안 되는 거리이지만 지팡이 없이는 몸을 제대로 가눌 수도 없다. 20년을 넘게 괴롭혀 온 천식과 왼 무릎의 관절염 탓이다. 천식 약을 들이마시고서야 할머니는 “다리라도 성해서 편하게 다녀봤음 소원이 없겠다”고 겨우 말문을 열었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 단독주택 내 두 평 남짓한 월세방. 어른 두 명이 겨우 몸을 누일 만한 이곳에서 할머니는 4년째 혼자 살고 있다. 남편은 기억에서 아스라하다. 37살 때 병으로 여의었다. 떡 장사를 하며 두 딸을 키웠지만 의정부에서 호떡 장사를 하는 큰딸, 몸져누워 있는 강원도 둘째 딸 모두 할머니를 모시고 살 엄두를 못 낸다. “자식들 얘기해 뭣해. 이렇게 근근이 살다가 가는 거지.” 방앗간에서 다리를 다쳐 장사를 그만둔 뒤론 모은 돈도 약값에 탕진하고 30여 년을 혼자 살아왔다.

한낮이 됐는데도 방 안엔 냉기가 돌았다. 10분을 앉아있으니 외투를 입고 있어도 몸이 오슬오슬 떨렸다. 난방시설이라곤 전기장판이 전부. 기름보일러는 안 쓴 지 오래다. 한 달 정부 보조금 32만원으로 생활하는 데 기름값 6만~7만원은 할머니에게 큰 부담이다. 방 한구석엔 관절염·고혈압·당뇨·천식약이 한 소쿠리 가득했다. 병원에서는 오래전부터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권했단다. 할머니는 “당장 수술비며 간병비며…. 그냥 약으로 버티는 것이라도 감사해야지”라고 말했다.
공릉 가정봉사원파견센터 김경아(26) 사회복지사는 “우리 복지관에서 돌보는 독거(獨居)노인 82명 중 대부분이 관절염, 중풍, 백내장 등 퇴행성 만성 질환을 앓고 있지만 꾸준한 치료나 수술 등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못 받고 있는 노인들이 많다”고 했다.

자식을 못 낳은 ‘죄’로 이혼당한 뒤 47년을 혼자 살아온 김귀녀(가명·76·서울 휘경1동) 할머니. 석 달 전 밤에 화장실을 가다 쓰러졌다. “10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난 뒤엔 이런 식으로 병원에 실려가는 게 한두 번이 아니야.” 그때부터 할머니는 요강을 방안에 들여놨다. 중풍으로 마비된 오른쪽 팔다리는 쓰질 못해 경로당에 갈 때면 왼쪽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다리를 끌며 다닌다. 오른쪽 눈도 잘 감기지 않아 눈물이 줄줄 흘러 눈 밑이 짓물렀다.

이훈남(가명·82·서울 풍납동) 할아버지는 일어서면 소변을 지릴 정도로 전립선염을 심하게 앓고 있지만 수술은커녕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있다. 수술비 100만원은 할아버지에겐 너무 큰 부담이다. 2.5평짜리 단칸방은 벗어놓은 옷가지며, 반찬 그릇, 재떨이, 휴지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가족과 연락은 하느냐고 묻자 할아버지의 고개가 푹 수그러든다. 아내는 25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외아들은 몰래 이민을 가버렸다. 할아버지는 “나도 미국에 가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 김용년(47) 회장은 “독거노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가난과 턱없이 부족한 의료서비스 지원”이라며 “특히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비 지원 체계가 없어 문제”라고 했다. 현재 정부에서 경로연금 지급을 받는 사람은 65만명이다.

가천길재단 이길여(李吉女) 회장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월 평균 소득 50만원 미만 노인의 65.7%가 3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며 “치료비가 없어 고통받는 독거노인과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재단의 기본정신인 박애와 봉사를 실천하기 위해 ‘노인 100명 무료 치료 및 수술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 정아연기자 hotaru@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