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여, 자궁경부암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될 날이 멀지 않다. 매년 전세계 50만 명의 여성이 그 덫에 걸리고, 25만 명은 목숨을 잃게 되는 자궁경부암을 예방하는 백신이 실용화를 눈 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성인 절반 이상이 성 접촉에 의해 일생에 한번은 감염되는 것이 인간유두종바이러스(Human Papilloma Virus·HPV)다. 100여 가지 유형이 있는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대개는 별 이상 없이 지나가지만, 이중 좀 센 놈을 만나면 성기 부근에 사마귀가 생기고, 더 독한 놈을 만나면 여성은 자궁경부암에 걸린다. 자궁경부암의 70%는 HPV16형이나 18형 때문에 생긴다. 바로 이 바이러스 감염을 막아 줄 백신이 곧 등장하는 것이다.
과연 이 백신이 자궁경부암 발생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인지, 경쟁적으로 개발해 온 두 제약사, GSK와 머크의 책임자들에게 물었다.
GSK사의 휴 보거트 백신 담당 부사장은 2006년 ‘서바릭스(GSK의 자궁경부암백신 이름)’의 3상 임상시험이 끝나면 유럽에서는 머크사보다 먼저 자궁경부암 백신을 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주에 3상 임상 시험 결과 일부를 이미 발표한 머크사를 의식하는 듯 했다.
현재 GSK는 14개국 3만 여명을 대상으로 3상 임상시험 중이며, 여기에는 한국 여성도 300여명 참가한다. 2004년 11월 의학저널 ‘란셋’에 발표된 바에 따르면, GSK 백신은 북미와 브라질의 15∼25세 여성 1113명이 참가한 2상 임상시험에서 HPV 16형과 18형 감염에 의한 자궁경부암을 100% 예방하는 효과를 나타냈다.
“자궁경부암 예방에만 집중하는 GSK의 백신은, 자체 개발한 면역보조제 ‘ASO4’를 첨가해 면역 반응의 효율을 훨씬 높인 것이 특징입니다. 더 강력한 면역력을 오래 지속할 수 있다는 얘기죠.” ASO4를 안정적으로 공급 받기 위해, 그 성분에 대한 특허를 갖고 있는 바이오벤처 회사를 아예 합병했다는 것이 보거트 부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또한, 백신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존의 효모 대신 바클로바이러스를 이용하는 신기술을 도입했기 때문에 생산 효율도 더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GSK 백신과는 달리 ‘머크 백신은 성기사마귀 원인균인 HPV 6형과 11형에 대해서도 효과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보거트 부사장은 불리하게 여기지 않았다.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자궁경부암 예방에만 집중하는 것이, 비용·효과 면에서도 합리적이고 마케팅 전략을 짜기에도 유리하다”고 그는 잘라 말했다.
“해부학적 구조상 점막이 풍부한 여성에게서 HPV가 더 잘 증식하며, 자궁경부암은 여성에게만 생기는 만큼, 여성 특히 아직 성 경험이 없는 청소년기의 여성에게 접종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보거트 부사장은 설명했다. 물론 남성도 HPV에 감염되고 성 접촉을 통해 여성에게 옮기지만, 가장 효율적인 예방법은 여성에게 백신을 접종해 ‘방어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렉 실베스터 머크 백신본부 선임 의료실장은 ‘가다실(머크의 자궁경부암백신 이름)’이 13개국 1만2000명을 대상으로 한 3상 임상시험에서 100% 자궁경부암 예방 효과를 나타냈으며, 빠르면 내년 미국에서부터 시판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출시 될 가능성이 큰 만큼 그의 기대가 역력했다. 머크사는 곧 한국에서도 추가적으로 3상 임상시험을 실시한다.
“머크의 백신은 자궁경부암 예방뿐만 아니라, 성기사마귀를 일으키는 HPV 6형, 11형에도 90% 정도 예방 효과가 있습니다.”
성기에 나는 사마귀가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지만, 치료가 쉽지 않은데다 자궁경부암을 조기 발견하기 위한 자궁경부세포진검사(pap smear)에서 이상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암 발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추가적인 검사를 하다보면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실베스터 실장은 “한번에 성가신 사마귀까지 예방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 아니냐”며 “혹시 암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덜고, 별도의 검사비도 아낄 수 있어 비용 절감 효과가 결코 적지 않다”고 말했다.
백신의 안전성에 대해서도 실베스터 실장은 확신하고 있었다. “지난 25년간 간염 백신을 생산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이미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된 면역보조제와 효모균을 이용한 생산 방법을 고수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남성에게도 효과적인 백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HPV는 드물지만 남성 성기에도 암을 일으키고, 무엇보다 남성이 HPV에 감염되면 고스란히 파트너 여성에게도 바이러스가 옮아가는 만큼, 궁극적으로는 남성에게도 쓸 수 있는 백신으로 개발할 계획입니다.” 실제로 머크사는 지난 4월 ‘란셋’에 발표한 2상 임상시험 결과에서 남자 청소년에게도 성기사마귀 예방 효과가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
두 회사 백신 모두 6개월 동안 세 차례 주사를 맞아야 한다. 현재로선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HPV에 대한 면역력이 평생 지속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정확한 효력 지속 기간은 앞으로 임상시험이 더 진행돼 봐야 알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추가 접종이 필요할 수도 있다. 백신의 덕을 톡톡히 볼 수 있는 대상은 아직 성 경험이 없거나, HPV에 감염되지 않은 젊은 여성들이다. 두 회사의 백신은 ‘예방’ 백신이지, 이미 감염된 것을 치료하는 ‘치료’ 백신은 아니기 때문이다. 15년 이상 치료 백신 개발을 위해 노력해 왔지만 지금까진 모두 실패했다.
/이지혜기자 wigrac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