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 토지면 외곡리의 비탈 속에 있는 단독집의 한 백세인 할머니를 찾아 산길을 올라갔다. 자신이 토끼띠(1903년생)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시는 고염록 할머니는 지금도 바늘 귀를 직접 꿰고 바느질을 하고 계셨다. 촘촘하게 바느질하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그 나이에도 시력이 그렇게 밝고, 청력이 좋아서 대화를 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같이 살고 있는 여든이 넘은 아들은 오히려 거동이 불편하고 청력이 나빠 말귀를 잘 못알아 들었다. 고 할머니는 지금도 광주에 있는 딸네 집에 다녀오실 정도로 정정하다. 10남매를 낳아서 지금 8남매가 살고 있다고 할머니는 함박 웃음을 지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통령이 백세인들에게 하사한 명아주 지팡이를 개봉도 않고 벽에 걸어 놓고 있던 것이다. 그 지팡이는 대통령이 실제 쓰라고 보내준 것인데, 이 할머니에게 그것은 장식품일 뿐이었다.
많은 백세인들을 만났을 때 다들 대통령의 장수 지팡이를 쓰면서 자랑을 했는데, 쓸 필요가 없어 벽에다 걸어 놓기만 한 경우는 이 할머니 한 분뿐이었다. 이처럼 대부분의 백세인들은 70~80대 자식들보다 더 정정하다. 드시기도 더 잘 드신다.
흔히 상상하는 늙고 병든 100살 노인들이 아니다. 이런 현상은 미국과 일본의 백세인 조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수많은 만성질환에 시달릴 노년기를 잘 극복하고 결승점에 도달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즉 삶과 질병의 치열한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역학 조사를 마치고 나오던 차에 할머니께 한 가지 여쭈었다.
“영감님 생각 안 나세요?”
“뭣이 생각나. 십년이나 공방 새우고, 야단만 쳤는데.”
백살이 돼도, 죽은 남편에 대한 서운한 마음은 그대로였다. 사람이 늙는다는 것은 겉모습이지, 마음은 그대로인 것을 왜 모르고 살까. 젊으나 늙으나 항상 서로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할머니를 통해 새삼 되새겨진다.
(박상철·서울대 체력과학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