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Q&A⑪] 박교수가 만난 백세인/ 젊어 아내 맘고생 시킨 남편…

특히 장수 부부를 만나는 경우가 그렇다. 남편들이 죽어라 가족을 위해 일만 한 경우는 나이 들어서 아내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반면, 젊은 시절 여기저기 다니면서 내 로라하고 다녔던 남편들은 아내들에게 꼼짝 못하고 지내는 것을 자주 본다.

전남 곡성군 죽곡면 봉정리 마을에서 만난 허병동(가명·92) 할아버지는 의관을 곱게 차려입고 계셨고, 말씀도 조리있게 잘하셨다. 젊어서 명주 장사 한다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소리 한가락을 부탁 드렸더니 조금 망설이는 듯 부인의 눈치를 보다가 춘향가 한 대목을 멋들어지게 뽑았다.

“야, 향단아!” 월매의 소리를 어찌나 구성지게 하던지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소리를 하는 영감을 쳐다보는 할머니 눈빛이 곱지 않아서 질문을 던졌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바람 많이 피워서 속상하셨겠구만요” 하였더니, 할머니는 푸념 섞인 답을 했다. “모르는 것이 약이여. 갈쳐 주겄소?” 뭔가 있기는 있었을 터.

할아버지에게 그동안 할머니 고생시킨 것에 대해 사과하시라고 권하자 할아버지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할머니 가까이 앉더니 “여보, 그동안 고생시켜서 미안허네”하고 비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할머니는 고개를 홱 돌려 버리더니 “인자, 그런 말 허면 뭣해” 하고는 금새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 두 분 나란히 앉아서 손잡고 기념사진 한 장 찍으란 걸 끝내 거절했다. 젊어서부터 남편에게 맺혀 있던 원망과 서운함이 오십~육십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한 평생 같이 살아갈 부부간에 저런 응어리가 없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