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국대학교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김재헌 교수
의학적으로 통증은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경고 신호'다. 손가락이 불에 닿으면 뜨겁다는 통증을 느껴 즉시 손을 떼게 만드는 것과 같이 우리에게 이로운 방어 기제다. 하지만 이 경고 시스템이 고장 나, 불이 꺼진 뒤에도 사이렌이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 크게 울려 퍼진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런 질환 중에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바로 마취통증의학과에서 가장 까다로운 질환으로 꼽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의 본질이다.
신경의 오작동이 만든 '유령 통증'
CRPS는 크게 1형과 2형으로 나뉜다. 1형은 명확한 신경 손상이 확인되지 않음에도 발생하는 경우로 전체의 90%를 차지하며, 2형은 사고나 수술 등으로 실제 신경이 손상된 후 나타난다. 유형은 다르지만 환자들의 고통 양상은 동일하다.
환자들은 ‘살을 송곳이나 칼로 찌르는 것 같다’, ‘화끈거리는 불덩이가 살 속에 들어 있는 것 같다’, ‘얼음을 올려놓은 것 같이 시리다’와 같은 다양한 양상의 통증을 호소한다. 심지어 부드러운 붓끝이 살갗에 닿기만 해도 비명을 지르고, 입고 있는 옷이 스치거나 밤에 덮는 이불이 닿기만 해도 통증을 심하게 느끼고 잠에서 깨기도 한다. 여름에 우리를 시원하게 해주는 선풍기 바람이나 에어컨 바람만 쐬어도 통증이 발생해서 한여름에 무더위로 고생하는 환자들도 많다. 이는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 회로가 비정상적으로 예민해져, 뇌가 가벼운 접촉조차 생존을 위협하는 거대한 충격으로 오인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굳어가는 관절과 변하는 피부, 몸이 보내는 적신호
단순한 근육통이나 통증은 휴식을 취하면 점차 완화되지만, CRPS는 시간이 갈수록 통증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고, 처음 발생한 부위에서 번지는 경우도 있다. 심한 경우, 한쪽 팔이나 다리에서 시작한 CRPS가 사지로 번져 팔,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는 환자도 있다.
주요 증상은 ▲부상이 회복된 후에도 통증이 줄지 않고 오히려 심해짐, ▲옷깃이 닿거나 스치기만 해도 비명을 지를 정도의 극심한 통증, ▲통증 부위의 피부색이 붉거나 푸르게 변하고 온도가 수시로 변하거나 반대쪽(정상부위)와 비교해서 만져보면 온도가 높거나 낮음, ▲통증 부위에 식은땀이 나면서 축축하거나, 정상부위에 비해 땀이 나지 않으면서 건조한 경우, 또는 통증 부위가 부어 있는 양상 ▲통증부위의 털이 가늘어지거나 굵어지는 변화나 손/발톱의 변화, 피부가 얇아지거나 궤사되는 등의 병변, 또는 해당 부위의 근력이 약해지고 관절이 뻣뻣해지는 증상 등으로, 이 중 여러 가지가 동시에 발생한다면 지체 없이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를 찾아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신체 변화는 교감신경계나 신경의 변형으로 인해 혈액 순환과 피부 조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다. 이를 방치하면 심각한 통증뿐 아니라, 통증 부위의 근육이 위축되고 관절이 굳어 영구적인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치료의 핵심, 뇌에 각인된 통증의 기억을 지워라
CRPS 치료의 골든타임은 발병 후 3개월 이내다. 이 시기를 놓치면 통증은 단순한 '신호'를 넘어 척수와 뇌의 회로 자체를 변형시킨다. 즉, 통증의 원인이 사라져도 뇌가 스스로 통증을 만들어내는 '만성 통증 뇌'로 바뀌는 것이다.
따라서 조기 진단과 함께, 초기부터 강력한 중재 시술이 필요하다. 다양한 종류의 신경 차단술을 통해 과도하게 흥분된 신경을 진정시키고, 필요한 경우 케타민을 포함한 각종 약물주입요법이나 척수 자극기 삽입술, 척수강내약물주입펌프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특히 척수 자극기는 통증 신호가 뇌로 전달되기 전, 척수 단계에서 전기 자극을 통해 통증을 상쇄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최근에는 말초신경이나 후근신경절에 대한 자극술도 시행되고 있다.
재활은 고통스럽지만 멈출 수 없는 과정
많은 CRPS 환자가 아프기 때문에 통증 부위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고, 또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이는 치료를 방해하는 가장 위험한 선택이다. 통증 부위를 쓰지 않으면 뇌는 그 부위를 '죽은 조직'으로 인식해 통증 회로를 더 강화할 수 있다. 당장에는 통증 부위를 움직이지 않으니 통증이 덜한 것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통증은 심해지고 악화될 뿐 아니라 범위도 확장되어서 기존에는 아프지 않던 곳까지 번지는 양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거울 치료(Mirror therapy)나 점진적 자극 노출과 같은 재활 훈련은 고통스럽더라도 함께 병행하는 것이 좋다. 가볍고 일상적인 통증 자극에 익숙해지는 것은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다. 처음에는 본인의 손이나 아주 부드러운 천으로 통증 부위를 문지르는 것부터 시작해, 뇌에 "이 감각은 위험한 것이 아니다"라는 신호를 반복해서 주입하고 이러한 자극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환자의 심리적 안정이다. CRPS는 결코 환자의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병이 아니다. 내가 만나본 CRPS 환자들 중에는 유도선수, 북파공작원, 군인 등 참을성이 대단하고 몸을 잘 단련해 오신 분들도 많았지만, CRPS의 심각한 통증을 이겨내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적극적인 치료 및 운동과 함께, 가족과 의료진이 환자의 고통을 실체로 인정해 주고 지지할 때, 뇌의 통증 회로는 비로소 안정을 찾기 시작한다. 극심한 통증이 동반되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전문가와 함께 한 걸음씩 나아간다면, 지옥 같은 통증의 굴레를 끊고 일상의 평온을 되찾는 날이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다.
* 본 칼럼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름조차 낯설어 진단과 치료가 늦어지기 쉬운 희귀난치질환. 건국대병원의 각 분야 전문 의료진이 각 질환의 특징과 진단, 최신 치료 방향을 알기 쉽게 전합니다. 막막한 투병의 길 위에서, 건국대병원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이정표가 되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