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대표적 약화사고는 항생제 `설파닐아미드(Elixir Sulfanilamide) 사건`과 수면제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 사건`이다. `설파닐아미드`는 동물실험도 거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사용된 탓에 미국에서 1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탈리도마이드`는 사망자와 기형아 출생 등 전세계에서 50만명 이상이 피해를 봤다. 이들 사건은 세계 각국이 의약품의 의학적 효능와 안전성을 검증하는 `의약품 제조판매 허가제도`를 정립하는 계기가 됐다.

이제 의약품실사상호협력기구(PIC/S) 가입과 한-미 FTA 시행에 따른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 도입 등 세계가 하나의 품질관리 권역으로 묶이고 있다. 국내·외 의약품 제도 변천과정과 그것이 제약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총 10회에 걸쳐 조명했다. <편집자 주>

① 우리나라의 의약품 안전관리 정책 [상] GMP, DMF, 국가출하승인제 [하] 의약품 품질관리제도와 약사감시제도

② 국내외 품목 허가제도 [상] 미국과 유럽의 품목허가제도 [중] 아시아 국가의 품목허가제도 [하] 우리나라의 품목허가제도

③ 한미 FTA와 허가-특허 연계제도 [상] 미국의 허가-특허 연계제도 [하] 우리나라의 허가-특허 연계제도

④ 우리나라의 약가 결정 및 조정 제도 [상] 약제의 상한금액 결정 기준 [중] 기존에 등재된 의약품에 대한 상한금액 조정 기준 [하] 약가 우대 정책

우리나라는 한-미 FTA발효로 인해 지난 3월15일부터 허가-특허 연계제도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허가-특허 연계제도는 의약품에 대한 제약사의 권리를 보호하고 신약 개발을 위한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는 소위 에버그리닝(Evergreening)으로 불리는 `허가-특허 연계제도의 악몽`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에버그리닝은 오리지널 약물을 개발한 제약사가 다른 제약사의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해 가장 먼저 제네릭(복제약)을 개발해 또 다른 특허권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에버그리닝은 후발 제약사의 진입을 방해해 `초대형 제약사만 배부른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제약산업 발전의 암적인 행위로 꼽힌다.

제약사간 독점적 이익 침해나, 납득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특정 의약품에 대한 권리 독점에 악용되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써야한다.

현재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는 대부분 자연스럽게 의약품에 대한 허가-특허 연계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1993년 캐나다가 허가-특허 연계제도를 도입했고 2002년 중국, 2004년 호주 등이 허가-특허 연계제도를 도입·시행 중이다.

허가-특허 연계제도를 이해하려면 이 제도의 특징과 함께 제도가 도입된 1980년대 당시 미국 제약업계의 상황을 알아야한다.

# 허가-특허 연계제도의 시작, 볼라-로슈(Bolar-Roche)사건 = 허가-특허 연계제도 도입의 단초가 된 대표적 사건은 지난 1984년 발생한 볼라-로슈(Bolar-Roche)사건이다. 이 사건은 의약품 특허기간 만료 후 제네릭 의약품 판매허가를 받기위해, 특허기간이 끝나지 않은 특허발명을 제네릭 의약품에 시험적으로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된 최초의 사건이다.

당시 볼라(Bolar)사는 로슈(Roche)사의 특허권이 만료된 후 제네릭 의약품을 판매할 목적으로 로슈가 보유한 의약품 특허가 만료되기 6개월 전에 FDA허가 신청에 필요한 실험을 진행했다. 양측은 각각 `단순히 허가를 받기 위한 시험이었기 때문에 특허권 침해가 아니다`라는 주장과 `로슈가 보유한 특허를 이용해 해당 의약품을 생산했으니 특허권 침해`라고 주장하며 팽팽히 맞섰다.

이 사건은 지방법원에서 특허 존속기간 중 의약품을 판매한 것이 아니고 특허권 존속기간 중 볼라가 이익을 얻은 바 없고 해당 특허를 이용한 생산행위가 있었다 하더라도 로슈 측에 직접적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이 같은 결과에 불복한 로슈가 제기한 항소심에서 법원은 "미국 특허법상 `오락이나 호기심 충족이 아닌 철학적 진리탐구`의 목적이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특허권의 시험 실시를 허락하고 있다"며 "볼라의 경우 영리를 목적으로 로슈의 특허권을 이용한 실험을 실시했기 때문에 이는 명백한 특허권 침해"라고 판시했다.

이 같은 엇갈린 판결을 계기로 의약품 판매허가를 위한 특허발명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느낀 미국 의회는 `해치-왁스만법(Hatch-Waxman Act)`을 입법하고 `제네릭 의약품 허가에 필요한 실험을 하기 위해 특허발명을 실시하는 것은 특허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명문 조항을 특허법에 추가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허가-특허 연계제도는 지난 1984년 미국에서 제네릭 의약품 생산에 따른 특허권 침해 소송을 거치면서 태어난 `Hatch-Waxman법`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Hatch-Waxman법은 크게 `특허권 보호를 통한 신약 개발 투자 유도`와 `제네릭 의약품 조기출시를 통한 소비자의 저가 약품 선택권 확대`라는 두 가지 목적을 갖는다. 기능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 법은 크게 다섯 가지 기능을 갖는데 각각 특허권자에게 유리한 기능 3가지 제네릭 회사에 유리한 기능 2가지로 구분된다.

# 안전성·유효성 확보돼도 특허침해 의약품은 허가 불가 = 특히 이 법은 제네릭이 특허목록(오렌지북)에 등재된 의약품의 특허를 침해할 경우 판매허가를 유예한다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인 재산권의 침해에 대한 보호방식과는 달리 `의약품에 대한 특허권` 침해의 경우 국가가 `허가 단계`에서부터 특허를 보호해 주는 것이다. 국가가 허가-특허 연계제도를 통해 과도하게 특허권자를 보호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Hatch-Waxman법`의 다섯 가지 기능>

분류

NO

내용

특허권자에게 유리한 기능

1

의약품 판매-허가 과정에서 특허권을 행사하지 못한 기간에 대한 특허 존속기간 연장

2

자료 독점제도 도입

3

의약품 특허목록(오렌지북) 등재 의약품 특허 침해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판매허가 유예

제네릭 회사에게 유리한 기능

4

최초 허가 제네릭의약품에 대한 180일 간의 독점권 부여

5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약식허가제도(ANDA) 도입

그럼에도 1984년 Hatch-Waxman법과 허가-특허연계제도 도입은 미국 시장 내 제네릭의약품의 시장점유율을 크게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오리지널 약물을 보유한 기업의 입장에서는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오리지널 특허권자와 제네릭 개발사간에 `역지불(Revere Payment) 합의`를 통해 서로의 이익을 보장하는 부작용이 생겼다. 허가-특허연계제도로 인해 특허침해 소송이 제기되더라도 특허권자와 제네릭의약품을 생산하는 회사가 합의해 소송을 종결하는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역지불 합의란 제네릭의약품 생산 회사가 특허소송이 제기된 의약품 출시를 포기하고 특허권자로부터 일정한 이익을 받기로 하는 합의를 말한다. 이는 특허권자가 제네릭의약품 생산자에게 일정부분의 경제적 이익을 주고 제네릭의약품의 시장 진입을 늦추는 결과를 낳아 소비자의 의약품 선택의 폭 제한 후발 제약사의 성장가능성 차단 등의 문제를 양산한다.

역지불 합의에 대한 문제는 지난 2013년 6월 미국연방대법원이 "역지불 합의는 특허권자와 제네릭의약품 생산 회사의 합의로 제네릭의약품의 시장 진입을 늦추고 경쟁을 없애는 담합행위"라고 판시한 바 있고 우리나라 대법원도 지난 2013년 동아제약과 GSK간의 역지불 합의가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결과를 내 놓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