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원에서 환자들이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의사나 간호사보다도 더 많이 접하게 되는 것은 `의료장비`다.

의료기관에서 쉽게 접하는 의료장비는 질환검사를 위한 영상장비부터 혈압, 산소포화도, 심전도 등을 측정하는 계측장비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의료장비와 검사결과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탓에 검사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일부 병원에서 타 병·의원 검사결과를 믿지 않고 새로운 검사를 시행하는 것도 이런 풍조의 단면이다. 의료장비 관리 실태를 들여다보고 해결방안은 없는지 찾아보았다.

[상] "다른 병원 검사 결과 신뢰 못해요"

[중] 의무도 기준도 없는 `의료장비 관리`?

[하] 장비관리 촘촘한 선진국들 … 한국 갈길 멀다

▲ 영품원의 영상의료장비 검사 흐름도.<출처=영품원 홈페이지>

정부는 2001년 영상의학검사 관리를 위해 `특수의료장비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료영상품질관리원(영품원)은 특수의료장비 3종(CT, MRI, 유방촬영장비)에 대해 서류검사 및 정밀검사를 각각 1년·3년마다 실시해 시·도,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그 결과를 통보하고 있다.

또 응급의료장비인 자동심장충격기는 복지부에서 직접 품질을 관리감독하고 있다.

하지만 위의 네 장비를 제외하고 복지부에 고시된 나머지 의료장비는 검사 의무가 없다. 즉 병원의 자체적인 정도·품질 관리에 맡기고 있는 셈인데 이들 장비는 오히려 환자의 치료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 때문에 더 큰 위험에 노출돼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최동익 의원은 지난 2014년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부의 `의료장비 현황 신고대상 및 식별부호화에 관한 기준`에 고시된 192가지의 의료 장비 중 지속적인 품질관리를 받고 있는 장비는 컴퓨터단층 촬영장비(CT), 자기공명영상촬영장비(MRI), 유방촬영용장치 등 단 세 개에 불과하다(당시에는 자동심장충격기 미포함)"며 "나머지 189종의 의료장비는 병원의 자율에 맡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2014년 안동에서 일어난 태아 화상 사건(인큐베이터 내부 온도를 올리기 위한 장판 때문에 신생아가 화상을 입은 사건)의 경우, 의료기기(의료장비) 등급분류 기준 중증도의 잠재적 위해성을 가진 `3등급 기계`임에도 불구, 제조연한이 10년이 넘은 것으로 나타나 의료기기 품질관리가 심각하다는 것이 최 의원의 주장이다.

병원 관계자들은 "관리가 되는 3종(CT·MRI·맘모그라피)은 그나마 나은 편이고 그 외 품목들은 관리조차 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특히 진단을 위한 소형 의료기기는 병원이나 장치 관리자가 측정 모듈(독립·분리 가능한 작동체)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아 환자의 생명을 위독하게 할 수 있다고 병원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서울 유명 대학병원 관계자 A씨는 "가령 뇌질환자에게는 SpO2(동맥 내 산소포화도)검사를 빠르게는 5분마다 실시한다. 그런데 진단용 기기가 관리가 안돼 있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처치법이 바뀌는 것이다. 별것 아니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장비 관리 하나로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A씨는 "그런 기계를 관리하는데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라며 "환자의 검사측정 시간이나 정상 작동 여부를 파악하는데 돈이 들겠느냐. 이런 관리마저도 안돼 있다.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 신뢰도 높이는 `정도관리` … 의료기관 인증때만 `반짝`? = 이 중 진단용 의료장비의 신뢰성과 성능을 확보하기 위해 학계와 정부에서는 다양한 품질관리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진단용 의료장비는 단순히 병증을 진단하는 것뿐만 아니라 치료 방법을 결정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더욱 크다.

이를 위해 국내에서는 현재 진단용방사선발생장치 안전관리 검사(국내 4개 검사 기관에서 시행), 특수의료장비 영상품질검사(영품원), PET·PET-CT 정도관리 검사(한국동위원소협회), 표준검체를 활용한 정도관리 검사(임상정도관리협회), 병리과질관리인증심사(대한병리정도관리위원회)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렇게 장비의 품질과 검사 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정도관리`라고 하는데 검사를 담당하는 기관에서의 성적을 비롯해 검체적합성, 적절한 검체 관리, 검사 시간 및 결과 작성 등 진단의 전 과정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중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정도관리를 통과하지 못하거나 `미달` 등급을 받은 병원은 다른 병원들 사이에서 검사 수치를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의료기관 평가 기준 내 `검사체계` 평가 항목 … 병원 관계자들은 "목록에는 정도 관리 규정이 있지만 검사를 제외한 나머지 기간에는 위 사항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도관리`는 평가 `시즌`에만 반짝할 뿐 `비시즌`에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 관계자 B씨는 "정도관리를 잘한다는 대형병원도 그나마 의료기관 인증평가 등 특정한 때에만 특별히 관리가 잘되는 편"이라며 "인증이 끝나고 나면 한동안은 제대로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 병원이 상당수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보건복지부 산하 의료기관인증평가원(인증원)은 지난 2010년부터 의료기관 인증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2013년 이전에는 복지부가, 2013년 이후에는 인증원이 인증평가를 담당하고 있다. 이 중 `검사체계` 항목에 `정도관리를 수행하고 관리한다`는 문항이 들어있는데 위 항목은 앞서 나온 검사기관의 결과를 따른다.

그런데 인증을 받은 병원은 적게는 1년에서 많게는 4년까지 정도관리 및 기기 검사 실태를 서면으로만 제출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2011년부터 2014년까지의 `1주기 의료기관 인증평가`에서는 인증을 받은 이후 매 년 문서 제출만으로 평가를 대신하기 때문에 실제로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도 `구색 맞추기`가 가능했다는 것이 B씨의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지난 2014년 인증원으로부터 의료기관 인증평가를 받은 요양병원 중 일부가 정도관리에서 `미흡` 조치를 받았음에도 인증을 통과했다는 점이다.

인증원에서 발간되는 내부 자료에는 경기도 소재 ○○요양병원 심의에 대해 `기기 정도관리 수준이 미흡하지만, 병원이 개선의 여지를 보이고 있다`는 말과 함께 평가를 통과했다는 언급이 담겨있다. 정도관리를 통과하지 못한 병원은 어림잡아도 10개 이상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를 공개한 병원 관계자는 "이같은 결과(인증 통과)는 요양병원 평가시 미흡점의 수가 몇 개 이하일 경우 `합격점`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4년 기준 요양병원 인증평가는 3개 영역 11개 장 27개 범주로 구성돼 있는데, 27개 범주 중 미달 등급이 5개 이하일 경우에는 인증을 내주고 있는 것이다.

인증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 "정도관리는 기본적으로 학회 혹은 협회의 권고 수준을 다 요구하고 있다"며 "기관마다 결과가 `중`일수도 `하`일수도 있다(정도관리 기준은 평가체계상 `상-중-하`로 나뉜다). 미흡하다는 뜻은 정도관리 상 80% 이하를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증원 관계자는 또 "요양병원에서 그 정도로 하는(매우 세부적인 검사를 하는) 기관이 몇 되지 않는다"며 "실제로 요양병원에 가보면 수혈을 해야 하는 환자가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웬만한 병원들은 바로 큰 병원으로 옮겨 재검 및 수혈을 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기관마다 정도관리가 어느 정도 필요한지는 제각각이다"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병원들의 자정 노력 뿐만 아니라 병원이 정도관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수가 보상 체계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같은 상황에서 진단검사기기 및 인력 포함에 따라 병원의 질을 우수하게 책정할 수 있는지 고민스헙다고 털어놨다. 요양병원들이 대형병원으로 환자들을 이송시키는 풍토가 있는데 단순히 진단검사의학과의 운영만 가지고 해당 병원의 의료 질을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2주기 의료기관 인증평가 기준을 개정하면서 검사실을 (인증 평가 기준에) 포함하려 하니 고민이 많다"며 "병원들에게 가이드(미흡상황을 고치라는 지시)를 주고, 문제가 해결돼야 인증서를 보내고 있다. 또 인증 기관 중 미흡 지적이 나온 기관은 실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