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서비스산업 활성화 방안의 일환인 '건강관리서비스 활성화' 정책을 두고, 제도를 추진하기 전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와 민간 업체가 제공할 수 있는 비의료행위로서의 건강관리서비스간 경계부터 정해야 한다는 의료계 안팎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29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정부의 건강관리서비스 활성화 방안의 문제점과 대책 토론회'를 의협 3층 회의실에서 열고 건강관리서비스 관련 정부 정책에 대해 의료계 내외 전문가와 의견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건강관리서비스 활성화 방안은 헬스케어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고자 이명박 정부 당시부터 입법 추진됐던 것으로 의료민영화 논란에 부딪혀 좌절된 바 있다. 현 정부는 이를 입법이 아닌 가이드라인 제정으로 선회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우려를 사고 있다.

이날 주제 발표를 맡은 이정찬 의정연 책임연구원은 건강관리서비스를 의료행위로 볼 것인지 비의료행위로 볼 것인지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정찬 연구원은 "의사의 포괄적 관리하에서 이뤄지는 서비스 제공이 아닌, 민간 건강관리서비스 기관 개설을 통한 서비스 제공은 유사의료행위가 만연할 가능성을 준다"고 지적하고 우리나라가 건강관리서비스 활성화를 위해 참고해야 할 사례들을 제시했다.

그는 "미국, 일본,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의 해외사례를 보면 의사 주도하에서 만성질환자에 대한 생활습관과 신체활동에 대한 포괄적인 건강관리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며 건강관리서비스가 의사들의 영역인 의료행위에 포함됨을 시사했다.

이정찬 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선도적으로 건강관리서비스를 활성화 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일본,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의 국가다.

미국은 민간보험이 매우 활성화된 나라로, 현재 민간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건강관리서비스 회사에 위탁을 통해 건강관리서비스를 일부 제공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1차의료기관의 만성질환 관리 역할과 보상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 또한 마련해두고 있다. 포괄적 일차의료(Comprehensive Primary Care, CPC)나 만성질환관리서비스(Chronic Care Management Services, CCM) 등이 대표적인 예다.

CPC에 참여하는 1차의료기관은 포괄적 건강관리를 수행하고 매월 환자 당 정액 관리비 20달러를 보상받는다.

CCM 역시 1차의료기관 의사가 복합상병을 보유한 환자를 대상으로 포괄적 관리 계획을 수립하고, 매월 20분 이상 비면접 환자관리를 수행하면 42달러 가량을 보상받을 수 있는 제도다.

일본은 특정건강검진, 특정보건지도 사업 및 생활습관병 지도관리료 운영 등을 통해 의료기관 중심의 생활습관병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영국 역시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인센티브(Quality and Outcomes Framework, QOF)를 통해 만성질환관리 질적 향상을 위해 GP(General Practitioner)에게 의료서비스 제공을 맡기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를 운영중이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경우에도 GP를 대상으로 한 흡연, 영양, 알코올, 신체활동과 같은 건강행동 위험요인을 관리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 'SNAP(Smoking, Nutrition, Alcohol and Physical Activity)'이나 Lifescripts 등을 개발 및 보급해 전국민의 건강증진에 있어 1차의료의 역할을 극대화 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용민 의정연 소장은 정부의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 제정안 추진이 "의료인이 아닌 일반에게 의료서비스 제공 권한을 주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며 건강관리서비스에 있어서 의사들의 할 수 있는 역할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간에게 건강관리서비스 영업을 허용하는 것은 의사의 고유영역에 포함되는 만성질환 관리 등의 의료행위를 민간 업체에게 떼어주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이용민 소장은 "건강관리서비스 활성화 가이드라인 제정은 국민 건강권 보호보다는 서비스 산업 선진화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라며 "의료를 영리시장에 대폭 열고, 의료의 영역은 치료에만 한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민간 사업자에게 건강관리서비스 제공의 권한을 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의료행위로, 혹은 건강관리서비스로 볼 것인지 경계부터 구분하는 것이 선결과제라는 점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토론에 참여한 김대중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먼저 "의료 서비스가 치료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옮겨갈 필요 있고, 지금 추진되는 건강관리서비스와 같은 의료서비스 모형이 우리나라 현실에서 얼마나 적합하고 유효한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건강관리서비스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그러나 김대중 부연구위원은 곧 건강관리서비스의 어디까지를 의사의 영역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하고 앞으로 더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대중 부연구위원은 "건강관리서비스는 의료와 비의료행위의 경계가 모호한 부분"이라며 "때로는 건강관리를 받을 때 의사의 진단과 처방이 필요없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제한적이긴 하지만 이미 의사 개입 없이 건강관리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에 대해 무조건 금지하려고 하면 과도한 규제라는 이야기가 나와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대중 부연구위원은 "따라서 일본처럼 의사 개입이 없는 형태로 민간 사업자가 건강관리서비스 사업을 운영하려고 하면 행정기관이 해당 사업 영역의 의료행위와 비의료행위를 구분 및 판단 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