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進化)란 생물 집단이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변화를 축적해 집단 전체의 특성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새로운 종의 탄생을 야기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시스템의 진화기능은 내외부 여건 변화에 따른 충격에 대응 체계를 갖추는 것으로 지속가능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큰 변화는 주로 외부에서 기인하는데,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조직은 상대적 경쟁우위를 확보하게 된다. 향후 병상 수는 적지만 높은 성과를 내는 병원이 생겨나고, 유사한 규모의 병원 그룹 내에서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지속가능한 병원이 될 수 있는가는 시스템이 얼마나 유연하게 변화에 대응하는가와 직결된다.
진화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하려면,
첫째, 외부 환경 변화를 해석하고 그 정보를 조직에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채널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2~3년마다 환경과 내부역량을 분석하고 중장기 발전전략을 수립했다. 하지만 최근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병원장 직속 혁신조직을 상설화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 정책, 기술, 고객, 경쟁 등 환경 변화를 빠른 속도로 따라잡고, 국내외 의료계의 트랜드 변화를 반영하려는 것이다. 환경 변화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언제,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둘째, 변화를 적시에 실행할 제도를 갖추어야 한다. 방향을 알면서도 변화하지 않고 분석 결과를 참고 자료 정도로만 활용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변화의 실행 속도를 높이려면 의사결정 체계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모 대학병원 컨설팅 시, 전략과제의 실행을 포함한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서 조직 변경이 선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만 조직 변경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결국 구성원 합의와 법인 승인에 약 2년이 소요되었고 결과도 처음 계획에 비해 불완전했다. 이렇듯 아무리 좋은 계획도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면 의미가 퇴색된다. 적시에 실행하려면 의사결정 체계의 정비 등 사전 준비가 필수적이다.
셋째, 변화를 위한 실행 초기에는 구성원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경영진의 노력이 필요하다. 진화는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한다. 자원 대비 효과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므로 조직 내에 불균형적 진화가 일어난다. 특히 진료특성화 영역 선정 시 불협화음이 생기는 수가 많다. 하지만 그런 불균형은 일시적인 현상이며 더 높은 수준의 균형으로 가는 과정이라는 공감대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때 리더의 명확한 방향제시와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특히 초기의 작은 성공 경험은 지속적인 진화를 위한 기초를 만들지만, 실패 경험은 변화에 더욱 큰 걸림돌이 되어 조직 분위기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진화기능에서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내부 여건 변화에 대한 대응이다. 갑작스러운 우수 인력의 유출로 인한 공백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주요 인력이 유출되는 경우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사전에 갖추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단기 성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병원은 스타 의사가 요구하는 인력, 장비, 공간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하지만 조직의 투자 의사결정은 달라야 한다. 해당 의료진이 없더라도 장기적인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것이라면 가치가 있지만, 단지 개인의 효율성과 편의를 위한 것이라면 투자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한 사람을 보고 투자했는데 그가 떠나버리면 시설과 장비가 무용지물이 된다. 경영진은 개인을 보고 투자해서는 안 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스템에 투자해야 한다.
평가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팀장은 일정 기간 동안의 실적으로 평가받지만 팀 리더로서 시스템 업그레이드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도 중요하다. 따라서 팀장급 보직자 평가 시에는 리더로서 시스템에 대한 기여도를 반영해야 한다. 평가에 반영한다는 것은 조직 차원에서 중요하게 본다는 시그널을 주기 때문에 지속적인 변화를 위한 조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기여한다.
진화를 위해서는 변화를 신속하게 인지하고, 필요한 조치를 적시에 실행하고,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기고자 : 삼정KPMG 박경수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