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여행기 ②]​ 모허 절벽에서 인생 카타르시스를 느끼다

입력 2018.11.01 08:00

헬스조선 비타투어의 아일랜드-스코틀랜드 트레킹 답사 여행기 ②

아일랜드인이 ‘거인의 정원’이라 믿고 있는 모허절벽. 이 절경은 오직 트레킹으로 모허절벽을 걸어야만 볼 수 있다. /헬스조선 DB

정말 제대로 바람 맞은 날이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거친 자연을 만나는 이번 답사 여행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바람. 사나운 대서양에서 들이닥치는 미친 듯한 강풍은 가슴과 얼굴을 아프도록 때리고 몸을 비틀거리게 한다. 그 바람 속에서 평생 잊히지 않을 ‘인생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

킬케니의 밤엔 ‘킬케니 드레프트’

전날, 트레킹을 끝내고 옛 아일랜드의 수도이자 아일랜드인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소도시 킬케니(Kilkenny)로 이동했다. 옛 아일랜드 왕의 성이 있고, 성당과 중심 광장이 있는 전형적 중세 도시. 내년 이 여행 참가자는 오전에 킬케니 시내 관광을 하고 모허절벽으로 이동해 트레킹을 하게 되는데, 마음이 바쁜 답사 여행자는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여기까지 와서 킬케니를 못보고 떠나는 게 아쉬워 저녁을 먹기 전 잠깐 시간을 내, 손바닥만한 킬케니 시내로 나섰다. 성을 중심으로 나 있는 방사형 도로 가에 작은 각종 관공서와 은행, 상점, 호텔, 레스토랑, 까페, 펍들이 자리 잡고 있다. 성에서 100m 정도 떨어져 있는 강가에는 펍과 카페가 집중적으로 몰려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날은 일요일 저녁. 몇몇 식당과 술집을 제외하곤 대부분 불이 꺼져 있고, 그나마 영업하는 식당과 술집에도 손님이 많지 않았다. 금요일이나 토요일이었다면, 아니 일요일만 아니었더라도 이 작은 도시가 얼마나 아름답게 살아났을까? 뻐걱거리는 문 사이로 새어나오는 따뜻한 불빛과 흥겨운 음악과 취객들의 왁자한 흥분. 더블린 같은 대도시가 아닌 서로서로 아는 얼굴들로 이뤄진 작은 중세 도시의 아이리시펍은 또 얼마나 느낌이 있었을까? 그러나 기대했던 아일랜드에서의 첫날 저녁은 분위기 없고, 맛도 없는 스테이크와 그 유명한 ‘킬케니 드레프트’로 만족해야 했다.

킬케니 아이리시펍에서 먹었던 킬케니 드레프트와 저녁 스테이크. /TNC여행사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이 나라는 음식이 별로다. 전날 글랜달록 호수 트레킹을 마치고 점심을 그 동네서 꽤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대표 메뉴 ‘피시앤칩스’를 먹었는데 솔직히 그저 그랬다. 우리나라 아이리시펍의 그것이 더 맛있는 것 같았다. 1710년 킬케니의 프란시스 수도원 양조장에서 만들기 시작했다는 킬케니 드레프트는 킬케니 여행자라면 반드시 맛봐야할 ‘특급 명물’. 킬케니 사람은 기네스와 라이벌 의식이 대단하다는데, 그럭저럭 훌륭했다. 그러나 기네스를 대체할 맛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잔 경험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다음 잔은 기네스를 주문했더니 여지없이 ‘NO’라는 말이 돌아왔다.

버렌국립공원에는 석회암 대지 위를 걷는 낯선 경험이 기다리고 있다. /헬스조선 DB

거인의 높고 단단한 벽, 모허절벽

모허절벽 가는 길에 석회암 대지로 유명한 버렌국립공원 트레일 답사를 했다. 아주 좁은 시골길을 지나 도착한 버렌국립공원 트레일은 약 90~95%의 석회암 조각들 사이에 5~10%의 흙과 풀이 점점이 박힌, 우주적 느낌이 나는 대지였다. 야트막한 산과 까마득한 지평선이 모두 돌로 뒤덮인 광경은 나름대로 장관이었다. 걷는 것이 쉽지 않아 손님 일정에는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으나 새로운 느낌을 원하는 걷기 여행자는 한번쯤 걸어 봐도 좋을 듯 했다.

높이 200m에 이르는 까마득한 수직 절벽이 장장 8km에 펼쳐져 있는 모허절벽은 아일랜드 최고의 관광지. 욕심 많은 거인이 자기 정원에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시끄러워 담장을 높이 쌓았더니 해가 들지 않는 겨울이 찾아왔다는 어릴 적 동화는 아일랜드 유미주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거인의 정원’이 원작. 작가가 모허절벽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아일랜드인은 대지를 가두어 둔 모허절벽이 아이들을 격리시키기 위해 쌓은 ‘거인의 정원’이라고 믿고 있다.

모허절벽을 찾는 사람은 대부분 8km 절벽의 중간 지점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절벽을 관광한다. 전망탑이 있고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아일랜드 최고의 절경이 펼쳐져 있어 버스는 끊임없이 관광객을 쏟아놓는다. 그러나 명색이 걷기 여행인데 버스 타고 와서 ‘관광’을 즐길 수는 없는 일. 절벽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나 있는 11km 트레일을 북에서 남쪽 방향으로 답사하기로 했다.

모허절벽 트레일을 시작하거나 끝내는 포인트. 더 걸을 수 있지만 보통 트레커들은 여기에서 걷기를 끝마친다. /TNC 여행사

장관 너머 또 다른 장관

잘 닦인 평탄하고 한적한 길로 접어들었다. 마치 구름처럼 푹신한 길이다. 왼쪽은 양떼가 풀을 뜯는 넓은 초원, 오른쪽은 거친 바람이 불어오는 대서양이다. 정면에서 불어오는 강풍 때문에 자꾸 고개를 숙이고 걷게 된다. 트레일은 아주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지면서 바다 쪽으로 절벽이 조금씩 나타난다. 그렇게 얼마간 걷자 저 멀리 높은 언덕 위에 대형 아일랜드 국기가 펄럭인다. 그곳이 전망대인 줄 알고 제법 숨 가쁘게 언덕을 올랐더니 갑자기 눈앞에 거대한 수직 절벽이 펼쳐진다. 높이 200m, 8km의 해안절벽이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숨이 멎을 것 같아 한동안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점입가경이었다. 길은 좁아지면서 더 벼랑 곁으로 붙었고, 절벽이 조금씩 높아질수록 더 아찔한 장관이 펼쳐졌다. 마치 아이맥스 영화관의 초대형 화면에 클라이맥스 부분이 끝도 없이 크레센도(점점 강하게) 되는 느낌이었다. 그러잖아도 온 신경을 집중해 아슬아슬 낭떠러지 길을 걷는데 온몸을 때리는 미친 듯한 바람은 수시로 몸을 휘청이게 했다. 장관과 감동이 지나치니 오히려 힘들고 괴로웠다.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 들 즈음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지고 전망대가 나타났다.

대서양을 마주한 높이 200m, 8km의 해안절벽 위를 걷는 중. 바로 옆이 천길 낭떠러지였다. 위험을 알리는 안내판은 여행자들에의해 익살스럽게 변해있었다. /헬스조선 DB

전망대를 지나자 벼랑 끝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띄워 트레일이 나 있어 길도 편하고 사람들도 많았다. 북쪽 트레일에선 거인의 높고 단단한 벽을 때리는 거친 바람과 나만 존재했는데, 이곳엔 사람이 너무 많아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허는 모허였다. 한 모퉁이 돌때마다 또 다른 장관이 앞을 가로막았다. 욕심 같아선 손님들도 11km를 다 걸어 북쪽 트레일의 그 감동을 만끽하게 하고 싶었지만 본 행사 때는 안전한 남쪽 코스만 걷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60대 70대 손님이 대부분이라 너무 위험하기 때문. ‘자격 심사’를 엄격하게 해서 몇 명이라도 북에서 남으로 전 코스를 다 걷게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남쪽 끝까지 트레킹을 마치니 마치 멍석말이를 당한 것처럼 온 몸이 뻐근했다. 앞바람을 맞으며 걷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 바람을 등지면 한 발을 들어 올리면 바람이 다른 한 발을 옮겨주지만 앞바람이면 그 힘을 온 몸으로 견뎌내야 한다. 건장한 성인을 휘청이게 할 정도의 강풍인데다 혹시라도 발을 헛디딜까 온 신경을 집중해서 걸었으니 온 몸이 안 아프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다. 아참! 오전에 버렌국립공원 트레킹까지 합하면 총 21km를 걸었구나! 몸은 죽을 것같이 힘든데 마치 강력한 히로뽕을 맞은 것처럼 마음은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하루를 보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모허절벽 트레일의 남쪽 끝에서 트레킹을 마쳤다. /헬스조선 DB​
※ 헬스조선 비타투어의 아일랜드-스코틀랜드 트레킹 답사 여행기는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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