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약부터 항암제까지…毒에서 藥을 구하다

입력 2018.01.19 17:30

뱀·전갈·독거미·꿀벌 등 다양한 동물의 독은 인간에게 매우 치명적이지만, 때때로 약이 되기도 한다. 최근 제약업계에서는 자연산 독극물에서 새로운 치료제를 찾는 ‘보물찾기’가 한창이다. 독으로 약을 개발한 사례를 모아봤다.

독약

기원전부터 사용된 봉독(蜂毒)
독을 약으로 사용한 사례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160년 무렵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중국의 의학고서 ‘마왕퇴의서(馬王堆醫書)’에는 벌의 침, 봉독을 사용하는 방법이 기록돼 있다. 꿀벌의 독침에 함유된 성분은 강력한 소염진통 효과가 있어서 동양뿐 아니라 인도·이집트·그리스 등에서 통증 치료로 널리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봉독에는 40여종의 성분이 함유돼 있다. 주성분인 멜리틴(Melittin)은 혈액순환을 높이고 면역기능을 강화한다. 그다음으로 많이 함유된 아파민(Apamine)은 관절염의 부종을 줄이는 호르몬 분비를 촉진한다.
과거에는 벌침을 직접 쏘여 치료제로 활용했다. 이로 인해 호흡곤란, 어지러움, 구토, 설사, 졸음, 혼미, 저혈압 등 갖가지 부작용이 발생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멜라틴·아파민 같은 성분을 별도로 분리해 각종 통증질환과 디스크질환, 신경통, 오십견, 류마티스관절염 등의 치료제로 사용하기 위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살무사 독, 난제였던 혈압조절 원리 밝혀
뱀독은 봉독보다 더 과학적으로 연구됐다. 실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을 받은 대부분의 독극물 약제는 독사에서 추출한 것이다. 뱀독은 전갈·독거미의 독보다 분석이 간편하다. 독거미나 전갈의 독에는 약 1000종의 펩타이드가 섞여 있는 반면, 독사의 독액에는 20~30가지 성분만 들어 있다. 다른 동물에 비해 독사가 내뿜는 독액의 양이 많다는 점도 뱀독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된 이유다.

미국 FDA가 동물의 독을 약으로 승인한 첫 번째 사례는 1981년 살무사 독에서 추출한 캡토프릴(Captopril)이다. 캡토프릴은 고혈압치료제다. 살무사 독은 먹잇감의 혈압을 급작스레 바닥까지 떨어뜨려 죽인다. 1960년대 후반 영국의 약리학자인 존 베인 박사는 살무사 독액에서 ‘안지오텐신전환효소(Angiotensin-Converting Enzyme, ACE)’의 작용을 방해하는 펩타이드를 발견했다. 혈액 중의 ACE는 콩팥에서 물과 소금을 배출해 혈압을 유지하는 효소다. 사실 그 전까지는 인간의 혈압이 어떻게 일정하게 유지되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존 베인 박사의 연구로 혈압유지 원리가 밝혀졌고, 이는 고혈압치료제 개발로 이어졌다. 1975년 캡토프릴이 개발됐고, 6년 후 실제 고혈압 환자에게 사용됐다. 이후 캡토프릴을 비롯한 ACE억제제는 다른 계열의 고혈압약이 나오기 전까지 한때 고혈압 환자에게 가장 많이 처방되는 약이었다.

도마뱀·오리너구리의 독, 당뇨병치료제로
미국 남서부의 뉴멕시코·애리조나주 사막에는 힐러몬스터(Gila Monster)라는 도마뱀이 서식한다. 50cm 크기의 이 도마뱀이 갖고 있는 독은 신진대사 이상을 유발한다. 매년 많은 사람이 도마뱀에 물려 메스꺼움·고열 등에 시달리다 실신·사망한다. 그런데 이 독에 포함된 ‘엑센딘4(Exendin4)’라는 성분은 인슐린 분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인슐린 분비가 제대로 되지 않는 제2형 당뇨병 환자 치료에 효과적이란 뜻이다. 연구자들은 엑센딘4를 바탕으로 ‘엑세나타이드(Exenatide)’라는 펩타이드를 합성했다. 미국 FDA는 엑세나타이드를 당뇨병치료제로 승인했다.

최근에는 이 성분이 소화를 늦추는 작용을 한다는 점이 발견돼 비만치료제로도 연구되고 있다. 호주에 서식하는 오리너구리 독 역시 당뇨병치료제로 연구가 한창이다. 오리너구리 수컷은 서로 싸울 때만 이 독을 분비한다. 이 독에는 인슐린 분비를 늘리고 혈당을 낮추는 성분이 포함돼 있다.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를 자극하는 ‘GLP-1’이라는 물질과 비슷하다. 다만, GLP-1보다 인슐린이 더 오래 작용한다고 호주 연구진은 설명했다.

전갈·코브라·말미잘 독 연구 한창
이밖에도 전갈·코브라·말미잘 등의 독을 이용해 암·류마티스관절염·건선·천식·다발성경화증 치료제의 개발이 한창이다. 자연에는 1억 종류가 넘는 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거미를 예로 들면 지금까지 4만6000종의 독거미가 발견됐는데, 이 거미들이 생산해내는 독성분만 2200만 종류에 이른다고 한다.
현재 개발에 가장 근접한 것은 클로로톡신(Chlorotoxin)을 이용한 항암제다. 클로로톡신은 전갈의 독이다. 클로로톡신은 건강한 세포는 무시하고, 암세포에만 들러붙는 특징이 있다. 과학자들은 이런 특징을 이용해 항암제를 클로로톡신과 붙이는 연구를 하고 있다. 클로로톡신이 암세포를 찾아가게 하고, 옆에 붙어 있던 항암제가 암만 골라 없애도록 한다는 것이 연구의 핵심이다. 이 연구는 현재 2상 임상시험을 통과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동남아시아에 서식하는 뱀(Tropidolaemus wagleri)의 독에는 ‘트로와글렉스(trowaglerix)’라는 성분이 포함돼 있다. 이 성분은 심뇌혈관질환을 예방하는 항혈소판제로 활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대만에서 관련 연구가 진행 중이다. 연구진은 아스피린 등 기존 항혈소판제의 부작용인 과도한 출혈이 없다는 점에 기대가 크다.
코브라 독인 코브라톡신(Cobratoxin)은 천식과 다발성경화증 치료제로, 카리브 해안에 사는 융단열말미잘(Stichodactyla Helianthus)의 독은 류마티스관절염 및 건선 치료제로 연구가 활발하다. 원뿔달팽이(Cone Snail)의 독은 신경계를 마비시키는 효과가 있는데, 이를 개량해 신경통증 치료에 활용하는 방안도 연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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