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아름(30·경기 성남시 거주)
“친구에게 피부 톤을 밝게 해준다는 기초화장품을 추천받아 얼마 전부터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화장품을 바꾼 뒤부터 이마와 양 볼에 여드름이 돋아났습니다. 원래 쓰던 화장품으로 돌아갈까 고민하자, 친구는 자신도 같은 경험을 했으며 한 달 정도가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말했습니다. 친구의 말대로 계속 사용해도 될까요?”
홍씨의 경험은 명현 반응일까?
대다수 전문가들은 명현 반응이 없다고 일축한다. 증세의 악화와 합병증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증상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은 부작용이 일시적으로 가라앉은 것일 뿐, 자신과 맞지 않는 성분을 꾸준히 복용하거나 바르면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약, 건강기능식품, 다이어트 식품을 복용하거나 화장품을 바르는 과정에서 ‘명현 반응’을 경험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특정 성분이 몸에 들어왔을 때 나타나는 예기치 않은 이 반응에 대해 의학계의 해석이 분분하다. 대다수는 부작용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지만, 치유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반응이라는 주장도 있다.
명현 반응의 유래는?
‘명현(瞑眩)’, 한자를 해석하면 ‘어둡고 아찔하다’로 풀이된다. 명현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사서삼경 중 하나인 《서경(書經)》이다. 《서경》 ‘설명(說明)’ 편에 ‘약불명현 궐질불추(藥弗瞑眩 厥疾弗瘳)’하는 구절이 있다. 눈앞이 깜깜하고 어지러울 정도로 강한 약을 쓰지 않으면 중병이 낫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후 다른 유교 경전인 《맹자(孟子)》나 조선 말 의서(醫書)인 《방약합편(方藥合編)》에도 명현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모두 ‘독한 약’을 의미하는 용어로 쓰였다. 현재 사용하는 ‘일시적 이상반응’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한편, 명현이라는 단어가 현재 사용하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일본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1 “명현 반응은 약이 몸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명현 반응이 있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약 복용 후 뒤틀린 몸의 균형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짧게는 3~5일, 길게는 2~4주간 증상이 악화되거나 엉뚱한 반응이 나타나지만, 결과적으로는 완쾌된다는 설명이다. ‘몸에 쌓인 독이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이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은 ▲몸이 나른하게 처지거나 잠이 오는 경우 ▲가벼운 구역감 ▲손·발·얼굴의 부기 ▲변비·설사 ▲발한 ▲여드름·피부발진·습진 등이다.
다만, 명현 반응을 주장하는 쪽에서도 치유 과정의 기전으로 인한 것인지, 오치(誤治, 한의학에서 말하는 오진)에 의한 악화 또는 부작용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감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생한방병원 이형철 원장은 “환자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명현반응이 심하게 나타나면 복용량을 줄이거나 잠시 복용을 멈추고, 이후 견딜 만해졌을 때 다시 본래의 분량대로 복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2 “명현 반응은 부작용일 뿐, 방치하면 큰 위험 초래한다”
현대의학에서는 명현 반응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의학계 내에서도 명현 반응은 없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명현 반응은 약이 몸에 들어갔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서울시 보라매병원 가정의학과 오범조 교수는 “부작용은 부작용일 뿐, 좋은 부작용과 나쁜 부작용으로 구분할 수 없다”며 “몸에 예기치 못한 반응이 나타난다면 그 즉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명현 반응은 착시효과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그 근거로 명현 반응을 체계적으로 증명한 연구가 단 한 건도 없다는 점을 꼽는다. 이와 관련 일본 기타사토대학의 동양의학연구소에서 1945년부터 2009년까지 69년간 의무기록을 모두 검토해 명현 반응의 사례를 정리하려 했지만, 명현 반응으로 꼽을 만한 증상은 1년에 한 건꼴인 70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저 27건은 명현 반응인지 판단이 어려운 증상이었다.
증상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인체 면역시스템이 유해 물질과 열심히 싸운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몸에 유해물질이 들어오면 면역시스템이 가동되는 데 잠시 시간이 걸린다. 이 기간 동안 증상이 나타났다가, 면역시스템이 정상 가동되면서 증상이 사라진다는 설명이다. 한동하한의원 한동하 원장은 “면역력이 떨어지면 언제든 부작용이 다시 나타날 것”이라며 “이를 명현 반응으로 착각하고 장기간 복용하면 위험이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한약과 양약을 가리지 않고 몸에 이상반응이 생긴다면 즉시 약을 중단하고 다른 약으로 처방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명현 반응 믿었다가 ‘날벼락’
지난 3월 명현 반응으로 피해를 입은 환자에게 8200만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피해 환자 A씨는 2012년 한 건강기능식품 업체의 제품을 복용한 뒤 얼굴·팔·다리가 붓고, 피부에 심각한 홍반·발진·각질이 나타나는 등의 부작용을 경험했다.
즉각 부작용을 호소했지만, 그에게 제품을 판매한 업체 직원 B씨는 “얼굴과 몸에서 독소가 빠져나가는 명현 현상”이라며 “병원에 가면 그간 복용한 제품의 효능이 사라질 수 있으므로 계속 복용하라”고 설명했다. 증상이 더욱 악화되자 결국 A씨는 한의원을 찾았고, 한의사의 권유로 복용을 중단했다. 증상은 그제야 잦아들었다. 그러나 이미 대학교를 휴학할 정도로 심각한 다발성 흉터가 얼굴에 남은 뒤였다.
이에 A씨는 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제품 복용을 꾸준히 권유해 A씨의 부작용이 더욱 악화된 데 업체의 책임이 있다”며 A씨에게 치료비 및 위자료 8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