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봉석의 앤드롤로지
남자친구의 정액을 삼켰는데 걱정이 된다고 진료를 받으러 오는 젊은 여성들이 있다. 과거에는 정액을 삼키고는 임신을 고민했는데 요즘은 이런 여성들은 보기 힘들고, 성병을 걱정하거나 위장장애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임질균이 후두에 감염될 위험성은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위로 넘어가서 파괴가 되고, 정액의 성분으로 위장장애를 일으키는 경우는 없다.
정액, 피부미용과 혈압조절에 도움된다?!
알아봤자 전혀 쓸데없는 호기심이지만 정액의 맛은 어떨까, 영양은 있을까, 소화는 될까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 정액이 피부미용에 도움이 되거나, 혈압조절이나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고 믿기도 한다. 과연 정말일까?
남성이 사정할 때 나오는 정액의 양은 보통 3~5mL 정도이니 양으로는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다. 정액에는 올챙이처럼 생긴 정자들이 가득하다고 생각해서 입안이나 뱃속에서 오글거리는 느낌이 난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자는 현미경으로 봐야 간신히 보이는 아주 작은 미세한 크기이므로 그런 느낌이 날 수 없다.
정자를 최대한 손실 없이 한꺼번에 질 내로 사정하기 위해서 정액은 끈적끈적한 겔 상태로 분출되고, 사정 후 30분 이내에 액화돼 정자가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임신이 되기 위해서는 한 번 사정 시 정액에는 최소한 1억 마리 이상의 정자가 있어야 한다. 사정 후 음경 밖으로 분출된 정자는 여성의 질 내에서는 4시간 정도 생존하고, 자궁에서는 3일 정도 생존이 가능하다. 즉, 정자가 자궁까지 이동을 하고 3일 이내에 배란이 된다면 임신이 될 수 있다. 외부에 노출된 경우 온도와 습도가 잘 유지가 되면 24시간 정도 생존하지만, 그냥 휴지에 묻어 있는 경우 수분이 증발하여 마르게 되므로 30분 정도만 생존이 가능하다. 입안에 사정해 삼켰을 때는 정자가 위로 들어가는 순간 위산에 의해 바로 파괴된다.
정액에 포함되어 있는 정자의 비율은 전체 정액의 2~3%에 불과하고, 60~70%는 정낭에서, 25~30%는 전립선에서 나오는 분비액이다. 정액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요도에 있는 분비선에서도 사정 직전에 분비물이 나와 요도를 미끄럽게 만들어 정액이 잘 배출이 되도록 한다.
영양학적·미용적 가치 전혀 없어
정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낭액의 성분은 아미노산(amino acid), 구연산염(citrate), 플라빈(flavin), 과당(fr uctose), 포스포릴콜린(phosphocholine),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 단백질, 비타민C 등으로 정자에 영양을 공급하고 에너지원으로 작용한다. 전립선액 성분은 산성인산분해효소(prostaticacid phosphatase), 구연산(citrate), 스퍼민(spermin), 전립선특이항원(prostatic specific antigen), 단백질분해효소, 아연 등으로 정자를 보호하고 운동성과 임신 능력을 돕는다.
정액에는 많은 성분이 포함돼 있지만 80% 이상이 수분이고 에너지로 환산하면 겨우 1kcal 정도에 불과하므로 영양학적 가치는 전혀 없다. 또한 피부미용이나 노화 예방에 관여하는 성분이 일부 있긴 하지만 극소량이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먹는다고 해도 혈압이나 다이어트에는 전혀 효과가 없다.
밤꽃 냄새와 비슷한 정액의 냄새는 전립선액에 들어 있는 스퍼민(spermin)이란 성분 때문이다. 스퍼민의 산성지수(pH)는 7.2~8.0 약알칼리성으로 여성 질의 산성도를 중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정자의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과당이 있어 정액이 달지 않을까 생각하기 쉬운데, 양이 워낙 적어 단맛은 없고 알칼리성인 탓에 약간 비릿하고 씁쓸하다. 오랫동안 금욕을 한 후에는 오징어 냄새가 나고 락스 비슷한 맛이 난다.
자주 먹는 음식에 따라 정액의 맛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고기나 생선을 많이 먹으면 비린 맛이 나고, 과일을 많이 섭취하면 괜찮은 맛이 난다고 한다. 그러나 의학적으로는 믿거나 말거나이니 정액 맛을 좋게 하기위해 일부러 먹지는 말자.
정액에 피 섞여 있다면 병원 가야
정액의 색이 이상하다고 걱정하는 경우가 있다. 정액은 보통 흰색이거나 아주 옅은 회색이 정상이지만 가끔 노랗거나 갈색을 보일 때도 있다. 오랜만에 사정을 하거나 비타민이나 음식·스트레스 등에 의해서 색이 짙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일시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붉은색은 전립선이나 정남의 염증으로 출혈이 되어 피가 섞인 정액으로 비뇨기과를찾아 진료를 받아 보는 것이 좋다.
정액의 맛이나 색이 어떠하든 정액의 맛이나 냄새를 좋아하는 여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건강한 남성의 정액은 특별히 인체에 해로운 것은 아니지만, 구강 섹스를 통해 성병에 감염될 수 있다. 특히 잇몸이 약하거나 출혈이 있는 경우 피해야 한다.
이왕 정액에 관한 쓸데없는 얘기를 하는 김에 또 다른 쓸데없는 궁금증 하나. 여성의 질에서 나오는 분비물인 질액은 어떨까? 여성의 질액은 단순한 체액이다. 성적 자극이나 흥분에 의해서도 분비가 증가되지만 땀과 마찬가지로 평소에도 분비된다. 약한 점성이 있어 질 점막을 매끄럽게 해서 성 행위를 도와주고, 특별한 성분은 없어서 색은 투명하고 맛도 없고 냄새가 나지 않는다. 약간 시큼하게 느껴지는 건 질에 상재하는 유산균에 의해 산성을 띄기 때문이다. 질염이 심할 경우 생선 썩는 비릿한 냄새가 나고 우윳빛을 띤다.
통풍 잘되는 속옷 입으면 정자 건강에 도움
건강한 정자와 풍부한 정액을 생성하기 위해서는 음주·흡연·스트레스·과로 등을 피한다. 통풍이 잘 되는 속옷을 입어 음낭을 시원하게 하고, 규칙적인 운동, 신선한 채소나 과일과 닭 가슴살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좋다.
초여름날 밤꽃이 핀 풍경은 무척 아름답다. 밤꽃이 피기 시작하면 산 전체가 눈이 내린 듯 하얗게 변해 장관을 이루고 사방에서 풍기는 진한 밤꽃 냄새에 정신이 아득해지기도 한다. 밤꽃 향은 불안감, 우울증 등의 감정 완화에 효과가 있다고 하고, 냄새는 야릇하지만 밤꽃의 꽃말은 ‘진심’이다.
이화여대 의과대학부속 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이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의학박사)했으며, 미국 샌프란시스코 UCSF에서 연수했다. 이대 동대문병원 기획실장·응급실장·병원장 등을 역임했다. 비뇨기과 건강 서적 《남자는 털고, 여자는 닦고》를 출간하는 등 비뇨기질환에 대해 국민들이 편견 없이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도록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