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한 켠에 쌓아둔 와인 2년 내에 마셔라

  • 글 김동식 (와인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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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7.03.03 09:00

    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지난 설날, 와인 두 병을 선물로 받은 40대 주부 김 모씨에게 고민이 하나 생겼다. 주량이 약한 그는 매년 명절 때 받은 와인선물을 거실 한 켠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던 것. 병수가 늘어나자 ‘저 와인들은 다 온전할까. 혹시 상해서 마시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다.

    급한 마음에 당장 인터넷 검색에 나섰다. 다들 2만~5만 원대 와인이다.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지만 댓글로 올라온 테이스팅 평가는 아주 좋은 편이다. 한마디로 ‘가성비 높은 와인’이라는 것. 지인들은 이 선물을 고르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발품을 팔았을까. ‘그 성의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맛있게 마셔야 한다. 결코 상해서 버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와인은 오래될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발효와 숙성이 잘된 와인은 마시기에 부드럽고, 밸런스도 잘 맞기 때문이다. 아무리 초보자라도 한 모금 마셨을 때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처럼 편안하고 구수한 느낌을 단박에 받을 수 있다.


    스페인 한 와이너리 저장고 오크통 속에 담겨 숙성 중인 ‘핑구스 와인’
    스페인 한 와이너리 저장고 오크통 속에 담겨 숙성 중인 ‘핑구스 와인’

    와인 맛 정점 지나면 서서히 퇴화

    그렇다면 김씨가 설 선물로 받은 모든 와인이 이 경우에 해당될까. 그 답은 ‘아니오’다. 착각이다. 변화무쌍한 와인은 적당히 숙성되었을 때 맛이 가장 좋다. 병에 담은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서 맛과 향이 정점에 달한다. 제 맛을 한창 뽐내다가 서서히 퇴화되는 사이클을 가지고 있다.

    일단 와인이 병에 담기고, 유통 과정을 거쳐 소비자 손에 넘어가면 보관 방식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여러 상인의 손을 거쳐 배로 운송된 와인일 수 있고, 최초로 구입한 소비자가 일정한 온도 유지가 어려운 실내에서 장기간 보관해 맛이 변할 수도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하고, 아파트 중심의 주거형태에서는 전용 와인셀러를 사용하지 않는 한 적정 보관 온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자칫 마실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 담근 지 오래된 신 김치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아무리 때깔 좋은 ‘묵은지’라도 적당히 익었을 때가 맛있는 법.

    김 씨의 와인은 과연 얼마 동안 실온 보관이 가능할까. 또 가장 마시기 좋은 타이밍, 즉 맛의 정점은 언제쯤일까. 일반 소비자들이 와인을 구입하면서 판매 사원에게, 스스로에게 던지는 의문이다.

    문제는 정답을 찾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것. 경험 많은 전문가를 제외하고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이 세상에는 수만 가지의 와인이 존재한다. 각 와인마다 숙성기간 등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 와인은 병에 담기는 순간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때문에 맛과 향이 조화를 이루면서 수십 년 혹은 100여 년 넘게 서서히 숙성이 진행된다. 반면 1년 이내 마셔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등 와인의 수명은 그 성질과 유형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와인 종류별 최적 수명
    와인 종류별 최적 수명

    산도-당도 구조 좋으면 장기보관 가능

    그렇다면 와인의 수명을 결정짓는 대표적인 요인은 뭘까. 가장 먼저 포도 품질을 꼽을 수 있다. 즉 수확한 포도가 신맛과 단맛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야 숙성 기간이 길어진다. 와이너리들이 포도를 수확하기 전 온 신경을 세워 체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포도 껍질이나 씨, 줄기 등에서 발견되는 탄닌 성분 역시 숙성을 통해 떫은 맛이 부드러운 맛으로 변하게 된다. 이 외에도 알코올과 당도, 산도 등이 와인의 밸런스와 함께 보존 연한에 중대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숙성 기간은 포도 품종이나 떼루아, 기후에 따라 기본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와 함께 와인 양조 방식이나 구조, 생산연도(빈티지), 보관 상태 등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와인이 최정점에 도달했을 때 마시면 보다 깊은 풍미와 복합미, 잔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정점이 지난 와인의 경우 구조감이 사라진 밍밍한 맛에 실망할 수 있어 보관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상한 와인을 마셨을 경우 자칫 배탈이나 두드러기라는 복병을 만날 수 있다. 좋은 와인을 잘 선별해 마셔야 하는 이유다.


    칠레 콜차구아 밸리에 자리 잡은 비냐 몽그라스 와이너리 오크 숙성 모습
    칠레 콜차구아 밸리에 자리 잡은 비냐 몽그라스 와이너리 오크 숙성 모습

    10년 이상 장기숙성와인 1% 불과

    사실 세상의 와인 중 90% 정도는 와이너리에서 출고된 지 1~2년 이내에 마시는 것이 좋다. 갓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 신선함이 최대 장점인 보졸레누보의 경우 생산된 지 6개월 이내에 마셔야 한다. 실제 프랑스 정부는 다음해 8월 말 이후 와이너리 판매를 금지시킬 정도로 빠른 소비를 권장하고 있다. 나머지 10% 중에서도 10년 이상 장기 숙성이 가능한 고급 와인은 1% 정도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르도 와인 기준으로, 화이트나 로제 와인의 경우 최적 수명은 3~4년으로 짧아 빨리 마시는 것이 좋다. 반면 레드 와인은 8~10년, 구조가 단단한 그랑 크뤼 와인은 15~20년 정도 보관이 가능하다. 스파클링 와인의 최적 수명은 4년 정도로 보는 것이 적당하다.

    한편 와인 보관 가능 기간은 화이트보다는 레드가, 레드보다는 스위트 와인이 훨씬 더 길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이는 탄닌과 당분 영향 때문으로, 보르도 소테른의 샤토 디켐의 경우 최소 100년까지 보관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랜드 하얏트 인천 이상준 수석 소믈리에는 “와인 효모는 살아있는 생명체로 주변 온도에 매우 민감해 숙성 기간을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다”며 “보통 소믈리에들은 레드와인의 경우 탄닌 산도가 얼마만큼 남아 있느냐 따라 기간을 측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포도 품종에 따라서도 숙성기간을 예측할 수 있는데, 보통 까베르네 소비뇽, 시라(쉬라즈), 네비올로(바롤로, 바르바레스코), 말백 등 만생종은 오래 두고 마시기에 적당하다”고 강조했다.


    김동식 와인칼럼니스트
    김동식 와인칼럼니스트
    김 동 식
    국제 와인전문가 자격증 (WSET Level 3)을 보유하고 있다. ‘와인 왕초보 탈출하기’ 등 다수의 와인 칼럼을 썼다. 서울시교육청 등 에서 와인 강의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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