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엄지발가락은 안녕하십니까?

입력 2017.02.16 05:30   수정 2017.03.13 15:08

[DR.박의현의 발 이야기] ①
엄지발가락은 직립 보행의 산물, 문학 속에서 인간다움 상징하기도
최근 신발 원인 무지외반증 많아… 방치하면 관절 등 몸 전체 '흔들'

박의현 연세건우병원 병원장
박의현 연세건우병원 병원장
미국과 한국이 참전했던 베트남전쟁(1960~1975년) 당시 미국의 젊은이들은 징집을 피하기 위해 엄지발가락을 스스로 절단하는 행동을 저질러 당시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들은 굳이 왜 통증도 가장 큰 엄지발가락을 절단했을까? 스페인 극작가 라파엘 알베르티의 대표작 '프라도 미술관에서 보낸 전쟁의 밤'에서 노파들이 서로 우월함을 다투며 상대를 조롱하는 대목이 나온다. 한 노파가 "난 너처럼 엄지발가락 뼈가 튀어나오지 않았고 발에 티눈도 많지 않다"라고 말하며 본인이 더 우월함을 주장한다. 더 나은 인간의 기준이 온전한 엄지발가락인 셈이다.

흔히 발을 '제2의 심장'이라고 부르는데, 이에 견주어 엄지발가락은 '관상동맥'이라고 할 수 있다. 엄지발가락은 보행 시 체중을 받치고 이동시키는 기능을 해 정상적인 보행을 가능케 한다. 엄지발가락에 질환이 생기면 보행 불균형도 문제지만, 체중부하가 불균형하게 이뤄져 무릎 및 척추질환이 생길 수 있다.

엄지발가락에 생기는 가장 심각한 질환이 바로 알베르티의 연극에서 '엄지발가락 부위 뼈가 튀어난다'고 표현된 무지외반증이다. 무지외반증은 선천적 혹은 후천적 요인으로 인해 엄지발가락 부위가 돌출되는 것으로, 특히 엄마가 무지외반증일 경우 딸에게도 쉽게 발견된다. 2007년 스페인 유전의학연구소가 발표한 어느 연구에 따르면 무지외반증 환자의 54% 이상이 유전적 관련성이 있다고 한다.

최근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무지외반증은 잘못된 신발 선택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신발을 고를 때는 발 폭에 맞추는 것이 중요한데, 신발의 디자인이나 몸매를 고려하면 문제가 생긴다. 특히 하이힐의 경우 체중의 80%가량이 발가락에 쏠리면서 엄지발가락 뿌리 부분이 튀어나와 무지외반증 발병의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무지외반증은 발병 후 치료를 하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변형이 진행돼 전체적인 발가락 변형과 탈구를 야기한다.

무지외반증에 걸리면 발 바깥쪽으로 걸음을 걷는다. 그러면 발목이 잘 삐고, 이런 사람은 안쪽 무릎에 관절염이 잘 생긴다. 당연히 안 좋은 자세로 허리디스크가 생길 확률도 높다. 현재 인공관절 수술 환자 10명 중 4~6명은 무지외반증이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무지외반증의 유일한 치료법은 수술이다. 교정기로 무지외반증을 완치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정형외과학, 족부관절학 교과서 어디에도 무지외반증이 교정기로 치료가 된다는 표현은 없다. 교정기의 의학적 명칭은 '보조기'며, 완치보다는 악화를 막고, 변형을 지연시키기 위한 것이다. 보조기로 완치를 바란다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인류가 4족(足)에서 2족으로, 나무 위에서 땅으로 내려와 직립 보행을 하면서 맞게 된 가장 큰 변화는 엄지발가락 관절의 방향이다. 네이처지 보고에 따르면 원시 인류 엄지발가락은 나무를 잡기 편한 모양이었기 때문에 뛰기엔 부적합한 형태였다. 직립 보행을 시작하고 손으로 도구를 사용하면서 점차 현재의 모양을 갖추게 됐다.

만약 우리가 엄지발가락 질환을 간과하거나 경시해 발의 퇴화가 온다면 우리 스스로가 퇴화를 초래하는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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