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발굴 ②

유방암 환자들에게 ‘완치’란 없다. 물론 생존율과 완치율이 높아져 가슴에 있던 종양은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수술로 인해 가슴이 완전히 사라져버리거나 모양이 일그러져서 평생 스트레스로 고통받으며 ‘가슴이 없다’는 장애를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성호르몬이 줄어들기 때문에 월경이 불규칙해지고 얼굴이 달아오르며 머리카락이 빠지는 등 여성호르몬과 관련된 각종 부작용을 겪어야 한다.
명의발굴 두 번째 주인공인 서울대병원 유방내분비외과 한원식 교수는 이런 문제를 안타깝게 여겼다. 그래서 그는 가슴 모양은 보존하면서 암조직을 떼내는 수술법을 국내 처음으로 도입했다. 유전체 연구 등을 통해 항암치료와 호르몬치료의 비중을 줄일 수 있는 방법도 적극 모색 중이다.
癌제거와 유방복원 동시에… ‘암성형술’ 최초 도입
유방암 환자의 60%는 ‘부분절제’가 필요하다. 가슴 전체를 떼내는 게 아니라 암 덩어리가 있는 가슴 일부만 제거하는 수술이다. 부분절제술을 할 때 중요한 것은 재발되지 않도록 유방 조직을 폭넓게 떼내는 것이다. 유방 모양을 보존하기위해 최소한의 조직만 떼내면 눈에 보이지 않던 암조직이 남아 재발이나 전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범위하게 떼내면 떼낼수록 좋은데, 그럴수록 유방 모양이 심하게 망가진다는 게 문제다. 유방이 함몰되거나 사과를 갉아먹은 것처럼 빈 공간이 생긴다. 유두가 변형되고 유방이 내려앉거나 삐뚤어진다. 차라리 가슴을 완전히 제거해 버리면 보형물이나 지방이식 등으로 재건할 수가 있지만, 부분절제술 후에 모양을 복원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지방이식 등의 방법도 딱히 효과 없어서 대부분 일그러진 가슴을 안고 살아야 했다. 결국 부분절제술의 관건은 반비례 하는 두 요소인 ‘가슴 모양 유지’와 ‘재발 방지’를 얼마나 융합하느냐다.
젊은 명의를 추천한 現 명의 한원식 교수는 해결법으로 ‘암성형술’을 택했다. 성형외과적 기술을 암수술에적용한 것으로, 이탈리아·영국 등 유럽 등지에서 시행한 기법이다. 한 교수가2009년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원래 모양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암조직도충분히 크게 떼낼 수 있다.
암성형술에는 성형외과에서 하는 ‘유방축소술’을 적용한다. 큰 유방을 작게 만들 때, 모양을 동그랗고 예쁘게 유지하면서 크기만 축소해야 한다. 피부를 절개하고 피부 밑 지방과 유선조직을 제거할 때, 제거한 부분 주변의 조직을 끌어당겨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조직을 떼낸 자리가 움푹 파이지 않고 평평하게 유지되며 주변 부분의 크기가 줄어든다. 이처럼 유방암 수술 시 암조직을 떼내 움푹 파인 자리에 주변 조직을 끌어당겨서 봉합하는 방법으로 메우면 함몰되거나 일그러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크게 때냈어도 주변 조직을 당기기만 하면 되므로 걱정 없다. 크기가 줄어드는 게 문제지만, 이 또한 다른 쪽 유방을 성형수술해서 맞추면 된다.
한교수는 최근 2년 반(2012년~2014년 5월) 동안 시행한 1809건의 유방암 수술 중 1101건의 부분절제술을 했으며, 이중 41%(452건)는 암성형술을 했다.

항암치료 필요한지 확인하는 검사법 개발 중
유방암 환자들이 치료 과정에서 두려워하는 것은 수술보다 항암치료다. 수술은 일회성이기 때문에 한 번만 참으면되지만, 항암치료는 수개월 지속되고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항암치료는 수술한 후에 남아 있을 수 있는 미세한 암세포가 몸 곳곳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치료다. 몸에서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세포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방식인데, 대부분의 치료약이 암세포와 정상세포를 구분하지 못해 입 주위나 머리카락, 내장세포 등 빠르게 분열하는 정상세포를 함께 파괴해 버린다. 그래서 머리카락이 빠지고 구토, 설사를 하며 만성피로에 시달린다.
문제는 우리나라 의학 기술로는 항암치료가 꼭 필요한 사람을 완벽히 가려내는 게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방암환자 대부분이 항암치료를 받는다. 한원식 교수는 “다수의 연구에 의하면 항암치료가 필요 없는 사람에게 항암치료를 한 경우가 많았고, 항암치료가 필요 없는 사람은 수술과 호르몬치료만 받아도 충분히 재발을 막을 수 있었으며항암치료가 아무 효과를 내지 못했다”며 “항암치료를 받은 사람 중 90%가 항암치료가 필요 없는 경우였으며, 실제효과 본 사람은 10% 미만이라는 연구가 많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 교수는 항암치료가 꼭 필요한 사람과 필요 없는 사람을 구분하는 국내 기술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미국에는 유전자를 이용한 검사가 수년 전 개발됐다. 암환자의 암세포 속 21개 유전자 중 몇 개가 어느 정도로 활성이 돼있는지 확인하고, 그 점수를 매기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점수가 높으면 재발 위험이 높으므로 항암치료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국내 환자도 필요하면 암세포를 추출해 미국으로 보내 검사 받게 하면 되지만, 한번 받는데 4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투병기간중에 받는 항암치료 비용보다 비싼 것이다.
한원식 교수는 미국과 비슷한 검사를 국내에서 개발해 검사 비용을 100만원 이하로 낮추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암세포 조직의 DNA와 RNA의 염기서열을 빠른 시간안에 분석, 암세포를 만들어 내고 활동하게 만드는 유전 정보를 한 번에 알아내는 ‘차세대 유전체 해독 기술(NGS: Next Generation DNA Sequencing)’을 유방암 연구에 적용하는 방식을 연구 중이다. 한 교수는 “3년 안에는 임상에서 적용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뇨약 이용해 항암효과 높이는 임상 연구 진행
한원식 교수는 항암치료를 줄이면서 다른 방법으로 항암효과를 증폭시킬 수있는 방법도 찾고 있다. 항암효과가 있다는 게 알려진 당뇨병 1차치료제를이용하는 것이다. 이 약은 부작용이 가벼운 소화불량 정도밖에 없고, 값이매우 싸다. 이 약을 먹은 일반인은 암이 덜 발생했다는 보고가 여럿 있다.
한 교수는 “실제로 동물이나 세포를 대상으로 실험해 보면, 유방암과 대장암에 대한 항암 효과가 굉장히 큰 것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한원식 교수는 실제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실험을 진행 중이다.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은 호르몬치료만, 한쪽은 호르몬치료와 당뇨병 약 투여를 함께 하는 것이다. 200명을 대상으로 하는 게 목표이며, 현재 100명 정도에게 시험해 봤다. 한 교수는 “만약 당뇨병 약이 실제 유방암환자에게 항암 효과가 있다는 게 알려지면, 항암치료를 줄이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방암 발병 위험률 예측 도구 만들어
한원식 교수는 국립암센터, 서울의대 예방의학교실 등과 1994년부터 2007년까지 유방암 환자 4601명과 건강한 일반인 4647명을 분석해 ‘한국인 여성의 개인별유방암 발생률 예측 도구’를 만들고 지난해 7월 발표했다.
한 교수는 “이를 이용하면 자신이 유방암에 얼마나 취약한 상태인지 파악할 수 있어서 주의를 기울이거나 검진을 좀더 자주 해볼 수 있다”며 “위험도가 정상인에 비해 두 배 이상이면 검진을 더욱 자주해야 하고, 1.5~2배는 주의해야 하며 1.5배 이하는 안심해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초경 시기가 언제였는지, 폐경인지, 출산·모유수유·피임약 복용·운동 등을 했는지 여부를 따져서 점수를 매긴 후 이를 모두 곱하는 방식이다.
50세 전후로 나누어 자신의 유방암 위험도를 계산해 볼 수 있다. 한 교수는 “미국의 위험예측도는 있었지만 한국인에게는 맞지 않아서, 사실상 한국인이 자신의 위험도를 알 길이 없었다”며 “이는 우리나라 여성의 특징을 고려해 만든 최초의 위험예측도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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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연구 모두 능한 ‘멀티 플레이어’
논문 개수·업적 세계 최고 수준
외과 의사의 기본은 수술이기 때문에, 외과의 상당수는 수술법 자체에만 관심이 많다. 그런 점에서 한원식 교수는 ‘멀티 플레이어’ 외과의라고 볼 수 있다. 한 교수는 외과의는 잘 하지 않는 기초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다.
연구실에서 세포·동물 실험을 하다 당뇨병 약이 항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해 최근 임상실험에 나섰다. 외과의가 기초연구에 발을 들이려면 수술하고 남는 시간을 투자해야 하므로 상당한 열정과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암의 근본을 알아내기 위해 유전체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발표 논문 개수나 업적, 연구 정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외과의답게 유방암 수술에서 생길 수 있는 미용적 문제를 줄이는 ‘암성형술’을 국내에 도입, 보편화하는 데 노력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