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외모·프로의식’ 이유 있는 여자골프 인기

  • 글 이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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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월간헬스조선 12월호(196페이지)에 실린 기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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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4.12.18 10:25

    상전벽해(桑田碧海)다. 국내 여자골프선수들이 초호황을 누리고 있다. 국내 대회를 치를 때마다 갤러리 수와 시청률 기록이 바뀌고 있다. 선수들을 따라다니는 팬클럽의 수와 인기는 요즘 아이돌 그룹과 견줄 정도다.

    대중의 우상인 연예인들조차 여자 프로골프선수에게 매료돼 있다고 한다.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여자 프로골프선수들과 소통하며 끈끈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10년 전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다.

    지난 8월에 열린 MBN 여자오픈 4라운드 18번홀 그린에 운집한 갤러리들./KLPGA제공
    지난 8월에 열린 MBN 여자오픈 4라운드 18번홀 그린에 운집한 갤러리들./KLPGA제공

    1990년대 초만 해도 국내 여자골프는 찬밥 신세였다. 매 대회 우승 선수들의 성적은 오버파로 초라했고, 신문·방송에서는 여자대회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필자가 일하는 신문사에서 주최했던 메이저대회 한국여자오픈은 언더파 우승자에게 5000만원의 보너스를 상금 외에 별도로 지급하겠다는 당근책을 쓸 정도였다.

    총상금이 3000만원인 대회에서 보너스 상금을 5000만원 준다면 밥보다 고추장이 더 많은 격이다. 그래도 언더파 우승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랬던 국내 여자프로선수들이 지금은 골프팬을 몰고 다닌다. 심지어 일본에서 찾아오기까지 한다. 동남아, 유럽, 미국의 팬이 생길 정도로 국내 여자프로골프가 신(新)르네상스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1일 갤러리 수 2만5000명의 의미

    지난 7월 20일 끝난 제주삼다수마스터스에서 놀라운 시청률이 기록됐다. 이 경기를 중계한 케이블 골프채널의 분당 시청률이 2.576%였다. 케이블 채널로서는 대박이다. 미국 PGA투어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오픈이 0.370%를 기록한 것과비교하면 엄청난 관심도다. 지난 6월에 열린 한국여자오픈도 1.864%의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난 10월 26일 남촌골프장에서 끝난 KB금융스타챔피언 마지막 날에는 2만5000명의 갤러리가 운집했다. 국내 남녀대회를 통틀어 최다기록이다. 경기 후 갤러리가 골프장을 다 빠져나간 시간이 오후 9시가 넘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 열기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난 6월의 한국여자오픈 마지막 날 갤러리 수는 2만 명, 10월 초 스카이72에서 열린 미국 LPGA투어 KEB·하나은행챔피언십 마지막 날 갤러리 수는 2만5000명이었다.

    국내 남자골프대회와 비교하면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된다. 올해 열린 여자대회 수는 작년보다 4개 늘어난 26개로, 남자(14개)보다 12개 많았다. 총상금이 24억원이나 늘어 155억원을 기록했는데, 남자대회 총상금(87억원)의 1.8배다. 세계에서 여자골프대회가남자대회보다 규모가 크고 흥행이 잘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은 규모와 흥행 정도에서 남자대회가 여자대회의 10배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돌 스타 같은 팬클럽

    체인지(change·변화)가 곧 찬스(chance·기회)라는 말이 있다. 국내 여자프로골프의 호황은 변화하려는 선수들의 노력의 산물이다. 선수들은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서 변화를 시도했다. 팬이 원하는 게무엇인지 관심을 기울였다. 스타성을 갖추고 스폰서가 원하는 것을 연구했다. 국내에 안주하기보다는 부단히 세계의 문을 두드렸다.

    그 시작이 박세리였고 김미현, 박지은으로 이어졌다. ‘박세리 키즈’로 통하는 신지애와 최나연, 박인비, 김효주까지 세계적인 스타의 대(代)를 이었다.선수층은 갈수록 두꺼워졌고, 어느 선수든 국내외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충만했다.

    스타로 부상한 선수들은 실력 뿐 아니라 언어, 행동, 마음가짐 그리고 외모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며 주가를 높였다. 전문 매니지먼트 회사, 스폰서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스폰서로나선 기업들의 만족도 역시 높았다.
    앞다퉈 골프 마케팅에 나섰다. 세련된 매너와 외모, 프로 의식으로 무장된 선수들은 프로암에서든 골프대회 경기장에서든 늘 팬을 만족시켰다. 이는 팬클럽 결성으로 이어졌다.

    김효주, 백규정, 박인비, 안신애,전인지, 김세영, 김하늘, 허윤경 등 요즘 뜨는 어린 선수들의 팬클럽은 흥행의 또 다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10대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형성된 팬클럽은 대회가 열리는 골프장을 찾아다니면서 응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아마추어 골퍼뿐 아니라 탤런트, 가수, 방송인 등 유명 연예인까지 가세했다.

    지난 10월 13일 열린 박인비 결혼식 사회를 김제동이 봤다. 정동하, 김연우는 축가를 불렀다. 평소 쉽게 만나기 힘든 연예인들이 여자골프선수들과 관련된 행사에 자주 나타난다. 톱스타들이 박인비 결혼식 축가를 서로 부르겠다고 경쟁했다는 후문도 있다.

    개그우먼이자 방송인 박미선은 김효주가 출전하는 모든 대회를 TV중계로 본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김효주와 트위터를 하며 교감할 정도의 광팬이다.

    특히 올해는 1995년 생인 김효주, 백규정, 김민선, 고진영이 뜨거운 경쟁을 펼치고 있어 여자골프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동업자이자 경쟁자로 아름다운 라이벌을 형성해 팬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여자골프선수들이 시청자와 팬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다. 그들은 나만의 스타일, 나만의 표정, 나만의 색깔, 나만의 루틴, 나만의 미소를 만들어낼 줄 안다. 다시 말해 자기관리를 할 줄 안다.

    스타는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이 필요한데 이제는 만들어낼 줄 안다. 미국의 유명 프로골퍼 프레드 커플스는 미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가 타이거 우즈보다 더 존경받는 이유는 철저한 자기관리 때문이다. ‘자선의 대명사’, ‘미국의 신사’, ‘따뜻함’, ‘배려와 매너’ 등 많은 상징어가 따라다니기 때문에 50대를 넘긴 지금도 많은 사람이 그에게 열광한다.

    SBS골프채널 허철영 PD는 “매년 여자대회의 인기와 규모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특정 선수를 좋아하는 팬층이 더 적극적인 행동으로 표현하는 팬덤(Fandom)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명했다.

    당분간 국내 여자프로골프 인기는 더 치솟을 전망이다. 대회를 개최하겠다는 기업이 줄을 섰고, 여자 선수들과 계약하고 싶어 하는 기업이 계속 늘고 있다.

    올해 미국 LPGA투어에 에비앙챔피언쉽에서 우승했고, 한국 투어에서 5승을 거두며 상금왕·대상·최저타수상·다승왕을 확정한 김효주.
    올해 미국 LPGA투어에 에비앙챔피언쉽에서 우승했고, 한국 투어에서 5승을 거두며 상금왕·대상·최저타수상·다승왕을 확정한 김효주.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거안사위(居安思危)’란 말이 있다. 편안할 때 위기를 생각하라는 말이다. 우리 민요 중에 ‘화무십일홍(花十日紅)’이라는 노래도 있다. 아무리 붉은 꽃도 열흘을 못 간다는 의미다.

    국내 여자프로선수들의 인기가 치솟고 있지만 내홍도 있다. 일부 선수들이 선배에게 인사도 하지 않아 틈이 벌어졌다고 한다. 음주운전 파문, 유명인과의 스캔들도 생기곤 한다. 유명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공인이 된 것이고, 더 이상 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칫 관리를 잘못 하면 팬은 금방 떠날 수 있다.

    스폰서 기업의 지나친 외모 지상주의도 문제다. 실력이 톱 클래스인 어느 선수는 스폰서 기업이 성형을 계약 조건으로 내걸자, 이에 반발해 외국 투어로 떠났다. 골프는 룰과 매너가 우선이며 이를 통해 진정성이 전해진다면 분명 팬들은 열광할 것이다.

    내가 잘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 기업의 스폰서십과 팬에 대한 자세가 중요한 시점이다. 언론도 ‘얼짱’,‘모델’, ‘몸매짱’ 같은 자극적인 단어로 기사를 쓰고, 화보로 독자의 눈길을 끌려는 시도를 자제해야 한다.

    개그맨 임하룡씨는 “방송에서 살아남으려면 실력이 있거나 인간성이 좋아야 한다. 그런데 실력은 금방이며 인간성은 정말 오래 가더라”고 했다.모처럼 활성된 여자골퍼의 인기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이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고 계속 스토리텔링을 해야 한다.

    골프코스 설계자 선정한 '세계 100대 골프코스'

    이종현
    이종현


    이종현

    <레저신문> 편집국장이자 골프·여행 칼럼니스트. 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인 시인이다. 《골프장으로 간 밀레와 헤르만 헤세》, 《시가 있는 골프》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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