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치료는 '협진의 예술'이다. 정확한 진단, 정교한 수술, 수술 뒤 항암 치료, 치료 받는 기간 중 환자의 신체적·심리적 건강 관리 등이 길게는 몇 년씩 톱니바퀴 돌듯 맞물려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암 치료 경쟁력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것은 각 치료 단계를 담당하는 유능한 의사 덕분이기도 하지만, 암 환자를 효과적으로 진료하고 관리하는 선진적 시스템을 갖춘 효과이기도 하다.
'시스템 암 치료'의 핵심은 '의사 중심 개별진료'에서 '환자 중심 통합진료'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폐암을 예로 들어보자. 기존 진료 체계로는 외래 환자가 호흡기내과, 영상의학과, 흉부외과, 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를 찾아다녀야 하지만, 통합진료 시스템에서는 환자가 있는 진료실에 5개 진료과 교수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진찰하고 치료 계획을 세운다. 따라서 암 환자가 외과 주치의 진료실 앞 복도에서 대기하다가 의사 얼굴을 '3분' 보고 나와 아픈 몸을 끌며 항암 주사실을 찾아가는 모습은 이제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시스템 진료는 의학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서로 다른 진료과목 의사끼리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암이라는 '공적(公敵)'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경험하게 되며, 이런 경험이 쌓이고 학문적으로 연구 분석되면서 우리나라 '암 의학'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내 협진실에서 이 병원 혈액종양내과, 호흡기내과, 영상의학과, 흉부외과 교수로 구성된 협진팀이 폐암 환자(왼쪽 여섯번째)가 참석한 가운데 치료 방
향을 논의하고 있다. / 삼성서울병원 제공
국내 대학병원 중 별도의 암센터를 처음 만든 곳은 1969년 세브란스병원이다. 당시 일본 원조 44만5000달러를 받아 2층짜리 건물을 지어 문을 연 연세암센터는 현재 3개 병동과 외래항암약물치료센터 등을 구비하고 첨단 방사선 치료장비를 보유한 대형 암센터로 발전했다. 연세암센터는 요즘 '한국인에게 발병하는 서구형 암의 최적화된 치료법'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위암·간암·자궁암 등 동양인에게 많은 암에서 유방암·대장암·전림선암 등 서양인에게 많은 암으로 이행하고 있는 우리나라 암 실태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정현철 암센터 원장은 "같은 암에 같은 항암제를 쓰더라도 동양인과 서양인에게 다르게 나타나는 효과와 부작용 등을 비교 분석해 한국인에게 가장 적합한 암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세암센터가 40년 넘게 누적된 진료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한 반면, 삼성서울병원은 2008년 암센터를 열면서 처음부터 '톱 클래스'의 투자를 했다. 삼성암센터는 단일 건물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이다. 심형목 암센터장은 "삼성암센터는 암의 예방·진료·재활·교육·연구를 포괄하는 암 통합 관리·연구 체계를 갖췄다. 이러한 시스템을 운영한 결과, 시술 성적이 단기간에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삼성암센터의 환자 평균 입원일수는 6.8일로 세계 최고 암병원인 미국 MD앤더슨 암센터(7.3일)보다 짧다.
서울성모병원 내 가톨릭암병원은 모든 검사와 진단을 하루에 마치고, 확진 5일 이내에 수술하는 '스피드 진료'를 제공한다. 따라서 암 환자가 진단받은 뒤 치료가 시작될 때까지 느끼는 "몸 안에서 암이 계속 자라고 있다"는 공포가 최소화된다. 세계적인 종양내과 전문의인 전후근 뉴욕대 교수가 한국에 돌아와 암병원장을 맡았다. 전 원장은 대장암·소화기암의 항암화학치료를 직접 맡았다. 서울아산병원 암센터는 암의 종류별로 13개 통합진료팀이 협진한다. 병원측의 설문 조사 결과, 90% 이상의 암 환자가 통합 진료에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암센터는 국내 발병 상위 10개 암종별로 진료센터를 구성했고, 이와 함께 진단검사센터, 양성자치료센터 등 5개 기능별 진료센터를 갖췄다. 각 센터는 전문의와 간호사, 의료기사까지 아우르는 진료팀제로 움직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