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암' 갑상선암 오해와 진실
"일부는 빨리 퍼지나 진행 예측 어려워 초기에 수술 받아야"
"선생님, 갑상선암 수술을 꼭 해야 하나요?"
요즘 유명 대학병원 갑상선암 전문의들은 진찰하는 시간보다 환자 질문에 대답하는 시간이 더 걸릴 정도이다. 갑상선암 환자 상당수가 수술을 꺼려하며 "온순한 암이라 크기가 작으면 수술을 안 해도 된다고 들었다" "수술하지 않고 암이 커지는지 관찰하면서 살면 안되는가" 등의 질문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홍석준 서울아산병원 내분비외과 교수는 "갑상선암 수술을 받으라고 하면 '왜 해야 하나', '꼭 해야 하나'에 대해 긴 설명을 요구하는 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갑상선암은 아주 천천히 자라고, 악성도가 떨어져 갑상선암으로 사망할 일은 없으니 치료하지 않고 경과만 지켜보면 된다는 주장이 퍼지면서 나타났다.

최근 인터넷 카페에서는 갑상선암 수술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홍 교수는 "암 수술을 안 하고 버티겠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수술 시기가 늦어질 수는 있지만 갑상선암도 엄연한 암이므로 결국에는 수술해서 절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가 수술하기 싫다고 버티는 암
갑상선암은 환자가 밀려 진단이 돼도 대학병원에서 수술받으려면 평균 3~6개월은 기다려야 한다. 이 암은 '거북이 암'이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자라는 속도가 늦은 편이고, 다른 부위로 잘 전이되지도 않고, 수술받으면 대부분 완치된다. 이 때문에 의사들은 "늦게 수술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으니 불안해 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대부분 환자들은 "갑상선암도 암이며, 큰 병원에서 하루라도 서둘러 수술을 받고 싶다"고들 했다.
그러나 최근 그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환자들이 "지름 1㎝ 미만인 작은 갑상선암은 시간이 흘러도 생명을 위협하지 않으니까 수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해린 강남차병원 유방·갑상선암센터 교수는 "기다려도 된다는 것을 수술을 영구히 안 해도 된다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갑상선암은 수술할 필요가 없다고 착각하거나, 거꾸로 다급하게 수술받으려고 하는 등 올바른 이해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갑상선암 전문의들의 공통적인 설명은, '갑상선암도 초기 수술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수술이 밀려 있어 진단 즉시 수술하기 어렵다. 다행히 대부분은 암이 워낙 천천히 자라서 길게는 1년까지 기다려도 초기암 단계를 벗어나지 않으므로 괜찮다'는 것이다.

◆"수술하지 말라는 건 80년대 이야기"
갑상선암의 병기를 결정하는 기준 중 하나는 암덩어리의 크기이다. 이는 재발률 등 수술 후 치료 결과를 예측하는데 도움이 된다. 갑상선암은 초음파 등 진단장비가 좋아지면서 1㎝ 미만의 초기 암 상태에서 진단되는 비율이 전체의 70~80%를 차지하고 있다. 미세암 발견이 많아지면서 치료 기술도 발전했고, 이에 따라 1㎝ 미만 일 때가 1㎝ 이상 일 때보다 치료 결과가 확연히 좋다는 것이 증명돼 있다.
1980년대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갑상선 암의 80%를 차지하는 갑상선유두암 중에서 크기 1㎝ 미만을 '갑상선미세유두암'으로 분류하며, 암이면서도 양성 종양과 비슷하므로 굳이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박정수 강남세브란스병원 외과 교수는 "그것은 진단 기술이 발전하지 않아 1㎝ 미만 갑상선암을 제대로 진단해 내지 못했던 과거 이야기이다. 요즘은 암의 크기가 작다고 해서 수술 없이 암의 경과를 지켜보면 안 된다는 것이 전세계 의학계의 공통 결론"이라고 말했다.
◆영상검사만으로는 부정확
갑상선암 전문의들이 말하는 수술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1㎝보다 작아도 그 중 40~ 80%는 갑상선을 둘러싼 피막을 벗어났거나 주변 림프절로 퍼져 있다. 림프절로 전이되면 사망률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치료 후 재발 확률과 폐, 간 등 다른 장기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갑상선 초음파나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은 정확도가 10%에 불과해 수술해서 열어보기 전까지 림프절로 전이됐는지 알기 어렵다. 즉, 갑상선암 수술은 치료와 더불어 '정확한 진단'이라는 목적도 있다.
둘째, 갑상선암은 진행이 느린 '거북이암'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부는 빨리 진행한다. 문제는 갑상선초음파, 세포검사, 조직검사 등으로 암의 진행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갑상선유두암을 방치하면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가 잘 듣지 않는 미분화암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셋째, 암을 지니고 살면 환자가 심리적으로 불안해 한다. 실제로 일본 고베의 구마병원에서 갑상선암을 수술하지 않고 장기 추적한 결과 조사 대상의 30% 정도가 '불안' 등의 이유로 결국 수술을 택했다.
홍석준 교수는 "갑상선암의 진행 정도에 따라 수술 결과가 확연히 달라진다. 암의 싹을 미리 제거해야 생존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1㎝ 미만은 한쪽 갑상선만 절제"
갑상선은 나비 모양으로 좌엽, 우엽으로 구성돼 있다. 지금까지 어느 쪽이든 암이 발생하면 갑상선 전체를 제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1㎝미만 암에서는 갑상선암이 있는 쪽만 떼어내려는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갑상선 피막이나 주변 조직 침범, 림프절 전이, 반대 쪽에 암일 가능성이 있는 양성 결절이 있는 경우에는 양쪽 모두 제거해야 한다. 갑상선을 한 쪽만 제거하면 성대손상 등 합병증이 덜 오고,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되고, 갑상선호르몬제도 소량만 먹을 수 있다. 그러나 남아있는 갑상선에 암이 재발될 확률이 5~20% 정도 있다. 반면, 양쪽 모두 떼어내면 부갑상선 손상, 후두신경 손상 등 합병증 가능성이 높지만 재발률은 떨어진다.
박해린 교수는 "최근 한 쪽만 떼어내도 치료 성적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면서 미세암까지 갑상선을 양쪽 모두 떼어내는 것은 지나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는 가능하면 갑상선을 다 떼어내지 않고 관찰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